2014.04.16 11:23
일년에 한번씩은 다시 읽어보는 제인 오스턴의 작품, 그중에서도 제일 유명한 오만과 편견에서 나오는 프로포즈장면들이 갑자기 생각나네요. 주인공 리지를 정말 열받게했던 콜린스씨나 다시 씨의 첫번째 청혼.. 리지가 제일 화가 났던 부분중 하나가 두 사람다 '받아들여지리라는걸 ' 굉장히 당연히 했기때문이었던 것 같아요. 그런걸 보면 제인오스턴의 세계에서는 음, 청혼이란 마구 긴장하면서 누울자리를 보고 하되, 결과는 확신치 못하고 해야하는 것인가라고 보면, 제인과 빙리씨의 청혼장면은 둘다 결과를 확신하면서 하는 장면같았죠. 그러고보니 엠마의 ..누구더라 이름이 기억이 안나다니!, 그 목사도 '확신'을 갖고 청혼했다가 거절당하자 엄청나게 화를 내었었죠. 그러니까 어느정도 courtship이 완성된 시점에서 하는것인데, 그걸 어느 시점으로 하느냐는 오스턴의 '좁고 정형화된' 세계에서도 무지 헷갈려들 하는것 같아요.
2014.04.16 11:29
2014.04.16 11:37
오만과 편견에서의 두 청혼에 리지가 화가 난 이유는 둘 다 자기 정도의 조건을 가진 남자면 당신은 오케이하겠지하는 뻔뻔한 태도를 드러내서였다고 보았는데요. 조건을 운운하지 않고 결혼을 청할만큼 당신을 좋아한다는 식으로 접근했으면 리지도 그렇게 열내지는 않았겠죠.
2014.04.16 13:14
좀 다른 얘기인데 불문학 전공자라서 영문학에 어둡긴 하지만 오스틴이건 뭐건 18-19세기 영국 연애소설을 보면 괴리감이 심합니다.
사드 후작이나 '위험한 관계'처럼 대놓고 음란한 책들은 그렇다 쳐도 심리분석 위주의 연애소설도 프랑스 작품들은 인물들의 품행이 궤를 달리하거든요.(표현수위 말고 내용수위)
19세기 초반에 나온 '아돌프' 같은 책을 보면 20대 초반의 젊은 주인공이 나도 연애 한번 해야겠다 생각을 하고 둘러보다가 주변에 덕성,정절로 이름높은 유부녀(미녀)가 있는 걸 보고 그 여자를 유혹하기 시작합니다. 두세 달 유혹해서 결국 그 여자가 넘어오고 관계도 가지게 되지요. 그런데 '연애 한 번 해야지'에서 그 유부녀와의 섹스까지가 두세 쪽만에 해결됩니다.(영국소설이라면 키스하는 데 200쪽은 걸릴지도 ㅠ.ㅠ) 책 처음부터 치면 20쪽도 안 된 시점이고요. 그 다음에는 정복했으니 헤어지려고 하는데 그게 맘대로 안 되는 이야기입니다. 18세기 작품인 '클레브 공작부인'을 보면 국왕이 바람을 피우니까 왕비도 대놓고 바람을 피우는 이야기로 시작하고,('대놓고'가 중요합니다.) 당시 소설들을 보면 평민도 아닌 귀족, 왕족들도 남편은 물론이고 부인네들이 바람 피우는 게 그다지 추문도 되지 않습니다. '정절'을 지키는 여인네들도 종종 등장하지만 그건 그 세계에서 정말 희귀종 별종 취급되고 당연히 몇십쪽 안되어 무너집니다. 당장 '삼총사'에서 왕비와 버킹검 공이 어떤 관계인지는 다 아시잖아요. 대통령이 집무실에서 유부녀랑 섹스하다가 복상사한 나라이기는 하지만...
물론 거꾸로 성모럴의 압력이 더 강하기 때문에 영국 연애소설이 흥미로운 점은 분명히 있죠.
아무튼 뱅자맹 콩스탕의 '아돌프', 일독을 권합니다. 김석희 선생님이 번역하신 판본이 있으니 그냥 믿고 보면 되지요.
2014.04.16 16:33
autechre님/ 아, 정말 흥미가 동하는데요. 꼭 읽어보겠습니다. 프랑스와 영국의 그런 차이는 사실 그이전 (14-16세기)에도 있었던 것 같아요. 예를 들면 Maitres titre (음 스펠링기억안납니다) 같은건 정말 프랑스적 표현이고, 영국에서 왕이 '공식정부'를 인정하는 일은 사실 드물었죠. 어떤면에서는 프랑스인들이 자기들의 그런면을 더 sophisticated하다고 여기는 분위기였었던것 같아요. 어디였더라.. "배우자를 사랑한다니, 거참 고약한 취향이구만.."이런 구절을 다 읽은 기억이 나는걸요. 그건 그렇고, 왕비가 '대놓고' 바람을 피우기는 현실에서는 좀 힘들었을거에요. 왕손의 핏줄이 바뀔수도 있으니까요. 그래서 주인공의 비롯하여 거의 전캐스트가 바람을 피우던 삼총사에서도 주 줄거리가 왕비의 바람덮기 였을지도 모르겠어요 :)
2014.04.16 21:12
Diotima / 핏줄 문제는 중요하겠네요. 근데 프랑스는 그런 게 워낙 엉망진창이지 않나요.^^ 삼총사에서도 핵심은 (국왕도 리슐리외도 알고 있는) 외도의 '물증'을 숨기려는 것이죠. 리슐리외가 그 물증을 정치적으로 이용할 수 있으니. 물론 삼총사의 경우 확실히 대놓고 피운 건 아니라고 봐야겠지만요.
귀족의 경우 적어도 소설만 보면 공작부인 따위가 대놓고 젊은 남자랑 노는 게 그냥 일상이었고요.(대규모 파티에서 젊은 남자랑 붙어다니기 따위)
근데 아무래도 이쪽으로 개념이 없고 느슨하다 보니 영국소설에 비해 감정적, 성적 긴장감은 확연히 떨어지죠. 그래서 프랑스 소설이 드라마에 약한 건지도 모릅니다.^^ 아... 그리고 1835년에 나온 고티에의 '모팽 양'도 강추입니다. 번역도 훌륭하고요. 프랑스 소설치고는 '그녀는 언제, 누구랑(남자랑 여자랑?) 잘 것인가?'라는 호기심이 끝까지 유지되는 드물게 흥미진진한 작품이죠.
그냥 지금의 우리 세대와 거의 같은거 아닌가요? 내적 확신은 갖고있되 그걸 태도로 나타내는건 매너가 아니라는거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