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읽은 책들

2015.07.05 17:37

컴포저 조회 수:972

1.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싶은 이야기 - 무라카미 하루키

오쓰카 에이지 스토리 작법 책을 읽던 도중 후천적으로 글쓰기를 체습한 사람의 예로 하루키를 들었는데(물론 하루키의 부친이 일본 근대문학에 꽤 조예가 깊어 그에게도 영향을 끼쳤겠지만요), 이 책을 읽다보면 그가 현재의 명성을 거저 얻은 게 아니라는 게 느껴집니다.

도쿄에서도 달리고, 보스턴에서도 달리고, 일본 잡지와 취재기획으로 그리스 아테네에서도 달리고... 심지어 풀코스를 넘어 이틀 연속 100km마라톤에 3종 철인 경기까지 나가니... 방에 틀어박혀 술마시며 글을 쓰는 습관으로는 소설을 쓸 수 없다고 생각하는 그의 말이 참 와닿았습니다.


2.
달려라 메로스 - 다자이 오사무

위 하루키 수필에서 잠시 언급되는 단편입니다. 악한 왕에게 사형선고를 받지만 조건을 내걸고 대신 목숨이 담보로 잡힌 친구가 형장의 이슬로 사라지기 전에 동생의 결혼식을 지켜본 뒤 다음날 해가 지기 전에 돌아가서 죽어야하는 메로스의 여정을 그려낸 이야기. 원전은 신화로 따로 있지만 다자이가 각색을 했다고(?) 하는군요. 이 단편을 알고난지 며칠 후 교보문고 일본문학 코너에서 잠시 읽다보니 뭐랄까 가슴이 뜨거워 진다고 할까요. 감정이 북받쳐와서 잠시 먼 산을 응시하고 눈물샘을 말리게 되는...



3.
우리가 사랑을 말할 때 이야기하는 것들, 대성당 - 레이먼드 카버

카버가 죽기 전 하루키가 그를 초대하기 위해 일부러 침대까지 구입했다는 일화가 있습니다. ...만 저는 솔직히 버드맨을 보기 전까지 카버에 대해 제대로 안 적이 없어서, 이번 기회에 읽어보면서 뭐랄까 .. 좀 더 일찍 읽었어도 좋았지만 30대에 읽으니 정말 딱이다 싶은 현실적이고도 암울한 감정이 서려있습니다. 인생에 대한 관조적인 태도와 씁쓸함 같은 것들 말이죠. 어디선가 일어날 법한 상황들이 재현되면서 미국에 간 적은 없지만, 단편 하나하나 미국의 어느 동네사람 이야기를 말해주는 듯 했습니다. 대성당은 영문학과출신인 소설가 김연수가 번역했는데 이 또한 참 좋았습니다.



4.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는 아무도, 말하다 - 김영하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는 아무도' 를 읽다보면 기시감 같은 게 느껴지기도 하고, 좋은 구석도 있고 시간이 지나서 안 읽고 묵혀둔 동안 오히려 시대변화에 맞게 새로 읽히는 단편도 있습니다. (이를 테면 전 남자친구가 다른 남성과 결혼을 앞둔 여자를 페이스북을 통해 찾아가 갑자기 동해바다로 납치하는 이야기) 단편 퀴즈쇼도 장편 퀴즈쇼와 비슷하면서도 다르게 읽히는 구석이 있고요. 이중에서도 종이 2장도 안되는 단편 '바다 이야기'가 제일 웃기면서도 가장 강렬한 단편이 아니었나 싶네요.

말하다는 힐링캠프에서 있었던 강연과 그동안의 라디오방송, 인터뷰, 하버드 강연 등을 총 망라한 책입니다. 일종의 철학이나 자기계발서적인 느낌도 듭니다만, 현실에 대해 헛된 희망을 주지 않는다는 점에서 오히려 그 현실을 담담하게 받아들이게 합니다. 이 책을 읽으면서 여름이나 가을에 출간될 읽다 는 그동안 김영하가 팟캐스트를 통해 소개한 책들에 관한 수필임을 예상하게 되네요.

5.
당신과 꼭 결혼하고 싶습니다. - 곽재식

정말 잘 읽었습니다,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이런 이야기만으로 설명하면 안되는 상황이네요.(;;) 단편마다 사람이 사랑으로 향하려는 순수함과 선의가 이야기에 묻어나면서도 동시에 고난과 역경이 있고 이를 극복하려는 데에서 작가분의 진심이 엿보입니다. 이중에서도 '달팽이와 다슬기'의 결말은 생생한 묘사가 일품인데 후반부가 진행될수록 소년에게 감정이입한만큼 안타깝고 안쓰러운 이야기였습니다.


6.
버티는 삶에 관하여 - 허지웅

그의 개인사가 녹아있고 몇몇은 블로그나 잡지에 개재된 글들이지만, 초반부의 흥미진진함에 비해 후반부는 활력이 떨어져서 아쉽습니다. 특정 작품, 매체나 화제에 관한 그의 통찰이 부족한 건 아니지만, 개인사 쪽이 사회분위기와 얽혀 있어서 더 긴박하고도 절실하게 읽힙니다.


ps.

열광 금지 에바 로드 - 장강명

추천글을 읽고 찾게 되었는데 한때 덕후로서 묘하게 동질감이 느껴지면서도(...) 여러모로 다르게 다가오네요.

아직 다 읽진 못했지만 한 때 덕후였다면 여러분도 한번 읽어보시는 것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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