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05.05 16:17
5월이 시작되기 직전인 지난 주말에 다녀왔어요.
98년인가 99년즘에 마지막으로 왔었으니 대략 18년만에 광주에 온거죠.
당시에는 현재의 국립묘지를 멀리서만 일별하고 구묘역으로 가서 일행들과 참배를 했었는데
이번에는 국립묘지 먼저 들렀습니다.
다시 봐도 참 성의없고 관제 냄새 폴폴 나기마한 장소를 만들어 놓은것이 김영삼 정권의 산물이라 그려려니 합니다만
당시 건축을 포함한 문화예술 분야의 한계라는 생각도 듭니다.
그래도 묘비 하나 하나 눈도장을 찍으며 오른쪽에 기록된 출생일과 사망일자를 보고 뒷쪽의 유가족 혹은 지인들이 남긴 글을 읽으며 내려왔어요.
1980년 5월 21일, 1980년 5월 26일 ... 사망일자가 동일한 묘비가 참 많고 출생년도가 1960년대 후반 즉 당시 10대였던 묘비가 적지 않아요
남루하나마 구묘역은 세월이 흘러도 지울 수 없는 강렬한 아우라가 남아 있어요....
물론 기억 혹은 추억을 공유하는 사람들에게만 의미가 있을 그런 아우라겠지만
18년전 구묘역에서 우연히 조우한 김남주 시인의 묘비 앞에서 오열을 했던 기억이 생생한데
이번엔 뜻밖의 만남은 없었군요.
이한열, 조성만.... 30년 가까운 시간이 멈춘 그 시절의 영정 그대로를 보면서
님들은 청춘 그대로인데 나는 변해 있군요.
소쇄원은 위험했던 순간을 잘 넘기고 다행히 정부의 지원을 받아 무너져 가던 장풍각과 제월당의 지붕이 모두 개보수 되어 있었고
반갑게도 입장료를 받고 있네요.
계곡의 물은 변함 없이 맑고 소박하게 흐르고 있군요.
주말이라 방문객이 적지 않아 소쇄원의 매력을 충분히 느끼기 어려웠던게 아쉬웠지만
사랑했던 공간이 온전하다는걸 확인하게 된 반가움으로 충분했어요.
뜻하지 않게 연장이 된 한국 체류기간이 이제 하루 남았고 내일 상해로 돌아갑니다.
체류하는 동안 20대 총선이 있었고 새누리당이 폭망하는 통쾌함을 즐겼고
개인적으로는 처음으로 용기를 내어 광화문 세월호 분양소를 다녀왔고 18년만에 광주를 갔군요.
언제부턴가 다시 한국으로 돌아올 궁리를 자의반 타의반 하게 되는데
인터넷과 잡스덕분에 고민이 저절로 해결될듯 합니다.
원래 일정보다 삼주 가까이 상해를 비웠는데도 일은 별 지장 없군요.
아마 점점 더 살고 있는 땅에 대해 어떤 특정 직업군들은 영향을 덜 받게 될듯 해요.
정치와 사회와 세대와 기술의 변화와 발전 속도가 빠를 수록 개인적으로는 가장 기본적인 것에 대한 고민이 중요하게 느껴집니다.
이제 1/3 정도 남겨놨던 신영복 선생님의 '담론'을 이제 마무리하고 독서노트도 서둘러 써야할거 같아요.
"생각을 해야 해"
2016.05.05 22:31
2016.05.06 02:19
80년 5월 당시 전영진은 광주 대동고등학교 3학년에 재학 중이었다.
그는 5·18 당시 민주화를 요구하는 광주시민들의 진실이 부당한 세력에 의해 처참하게 학살되고 있다는 사실에 분개해 시위에 참가했다.
20일 책방에 가다가 계엄군에게 무차별 폭행을 당했고 21일, 오후 2시께 옛 광주노동청 앞에서 시위를 하던 중 공수부대의
M-16로 정 조준한 사격에 숨졌다. 이후 그의 아버지(전계량)는 7년 동안 유족회장으로 활동하며 희생자들의 정신계승과 진상규명
투쟁에 앞장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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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영진의 유족인 전서연(누이 동생)씨가 서울 독산동에 작은 카페를 차렸는데 손님이 없어 문 닫을 지경입니다.
서울에 사시는 분들 중 한 번 방문하여 차 한 잔 나누는 건 어떨까요.
이 분이 미술상담치료도 하시는 지라 심심하지는 않을 거예요.
카페 이름은 '써니쉬'로 검색해 보시면 됩니다.
2016.05.06 19:08
2016.05.06 20:11
곧 5.18이 다가오는군요.
많은 것이 바뀌었지만,
그 때 희생했던 사람들이... 바라고 희망했던 사회를 우리가 이뤄냈을까 하는 생각도 드네요..
저도 광주 땅 밟아본지가 20년 정도 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