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10.28 01:52
카미유 클로델의 얼굴과 피에르 드 위상의 왼손, 오귀스트 로댕, 1890년, 석고, 파리 로댕 미술관 소장
사실 미술 작품에서 빛의 효과는 그림에서만 중요한 것이라고 생각했었는데 - 일례로 렘브란트라든가 카라바지오라든가 - 의외로 조각에서도 적지않은 비중을 차지하는 듯 합니다. 특히 로댕이 조각에 드리우는 빛의 음영에 관심이 많아서 그의 작품 제작에 있어서 표면의 처리에 신경을 많이 썼죠. 빛이 비칠 때 어떤 효과를 얻을 수 있을지 생각해 보면서요.
이 조상은 어찌 보면 좀 생뚱맞기도 합니다. 사람의 얼굴에 손이 붙어있어요. 그것도 난데없이…사실 이 조상은 머리카락 표현이 생략된 채 얼굴과 귀만 있을 뿐이죠. 사람의 외모에서 두상과 머리 모양의 비중이 상당하다는 걸 생각해 볼 때 이런 과감한 생략 또한 놀랍다는 생각이 듭니다. 단지 얼굴의 이목구비 만으로 명상에 잠긴 듯한 그리고 자신의 머리를 둘러싼 손의 존재를 전혀 의식하지 않는 이 얼굴의 시선.
어떻게 보면 이 두상의 주인공은 실제로는 이런 손 같은건 자신의 곁에 있지도 않다고, 아니 아예 이런 손의 존재조차 의식도 하지 않고 있는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특히 이같은 초월적인 시선을 볼 때 말이죠.
아상블라주라고 한답니다. 이렇게 생뚱맞게, 전혀 관계없는 두 소재를 갖다 붙여서 표현하는 방식을요. 모델인 카미유 클로델 얼굴 옆의 손은 피에르 드 위상이라는 사람의 왼손인데 - 문제는 이 피에르 드 위상이라는 사람은 로댕이나 카미유 클로델과 동시대인도 아니고 - 역사 속의 인물입니다. 중세 백년 전쟁(1337~1453) 당시 칼레 시 책임자들 중의 한 사람으로, 1347년 영국군의 칼레 함락시 시민들을 대표해 죽음의 길을 떠났던 의인들 중의 한 명이었죠. 이들의 역사적인 희생을 기념하여 예전에 로댕이 칼레 시의 의뢰를 받아 기념비 제작(1884년)을 한 적이 있는데, 그 때 그 기념비에 등장하는 인물들 중 하나입니다. 로댕은 이 인물군들을 표현할 때 특히 손의 처리에 신경을 많이 썼는데, 그건 한 편으로 섬세한 손의 형태에서 인물이 지닌 여러 감정들을 복잡하게 표현하기 위해서였습니다. 로댕은 단지 손등의 굽힘과 손가락의 가닥가닥 휘어짐 만으로도 사람이 느끼는 그 숱한 감정들 - 분노, 슬픔, 절망, 절규 - 을 섬세하게 표현해낼 수 있다고 믿었었는데, 특히 이 피에르 드 위상의 왼손에서 그 특유의 상실감을 표현하려 한 듯 합니다. 한 마디로 이건 이별의 슬픈 감정을 담은 작품이라고 볼 수 있죠.
어떻게 보면 공포영화의 한 장면 같기도 하고…기괴하기도 하고 섬뜩하기도 하면서…그러면서도 한없이 아름답고 근사한, 온갖 상념을 불러 일으키는 작품입니다. 한 인간에 대한 복잡한 심정을 이토록 감상적이고 극적으로 포착한 작품도 드물듯 합니다.
어디서 봤더라. 조각(부처였던 것 같기도 하네요)은 돌 속에 있는 형체를 꺼내는 작업이다 뭐 그런 선문답스런 이야기를 접하고 나름 감동먹었던 기억이 있어요. 소설이던가? 이런저런 상상을 해보며 로딩을 기다립니다.
근데 <300>이야기는 언제쯤 쓰실 건가요 @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