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의 사람들 이야기

2017.11.11 18:07

은밀한 생 조회 수:910

안녕하세요 오랜만이에요.
어떻게 살아온 건지 종종 헷갈리고 어디로 가는 건지 도무지 모르겠는 날들이 흘러가고 있습니다. 네 제 삶이 요즘 좀 그래요. 큰 불행 앞에선 쓸데없이 침착하고 아주 작은 먼지 같은 것들에 발끈하거나 울컥하는 괴이함도 종종 일어나고. 기름칠 안한 로봇 같은 몸뚱어리는 매일매일 피곤할 뿐.... 그 이외의 어휘를 쓸 기회를 주지 않는군요. 피곤하다고 징징대기 싫어서 입을 다무는 게 습관이 되다 보니 점점 말수는 없어지고.. 원래도 적은 말수가 더 줄어드는 인간이 되어가고 있어요. 한없이 너그러운 마음으로, 나는 말수가 없어도 명랑한 수다를 기쁘게 맞이하면 참 좋으련만 과하게 씩씩하거나 활기찬 사람을 보면 수선스럽다는 생각이나 하고 있는 상태예요. 아 한심해요.

와중에 최근 듀게에 벼룩 글을 올리고 구매자님께 연락을 받고, 문자를 보내고. 일시를 정하고 하면서 벼룩 물건의 직거래라는 것을 처음 해보는지라 어색해하던 찰나였어요. 약속일이 되고 저녁이 되자 그분께서 도착했다는 연락을 받고 나갔지요. 저 멀리서 인사하는 모습을 보면서 어쩐지 안도감이 밀려왔어요. 듀게분을 오프라인에서 본 것도 처음이고.... 음 뭐랄까. 내가 가진 물건을 직접 누군가에게 넘기고 돈을 받는단 게 무지 어색했거든요. 그런데 횡단보도 건너편에 계신 그분을 보자 자연스럽게 미소가 지어지더라고요. 앉을만한 장소로 이동해서 제가 가지고 간 물건을 보여드리고... 작은 쪽지를 붙인 캔디 뭐 홍차 어쩌고 류를 비닐포장에 담은 이런 남루한 선물을 드렸는데. 그분께서는 예쁜 마카롱을 내미시더군요.... 호텔 베이커리에서 사서 포장을 잘해줄 줄 알았는데 이렇게 줬다면서. (그냥 투명 비닐백에 담겨 있었어요) 순간 너무 감사하단 생각이 들었고, 차갑고 매서운 한겨울의 신기한 어느 날 같았어요. 무지 춥던 겨울날의 어쩌다 영상 2도인 그런 날요. 그날도 헤어지면서 고개숙여 인사드렸지만... 다시 한번 감사하다고 전하고 싶어요.

특급칭찬요. (기름지나요? 참아주실까요ㅎ)

사진 올리는 방법을 몰라서 인증샷은 못 올리겠네요...
알럽마셀프님.
감사했어요. 저 그날 실은 엄마 눈물 전화+언니 눈물 전화+팀장 꾸중+야근+복통으로 무지 힘든 날이었는데, 알럽마셀프님의 미소와 마카롱에 따뜻한 위로 받았습니다.
‘그래 어찌 됐든 착하게 살자’ 같은 생각도 막 들었고요.


이렇게 한겨울의 영상 2도인 날 같은 미소 몇 번이면 족한 것 같아요.
뭐 내 손으로 어찌 해결할 수 없는 삶의 문제라서 괜히 타협하는 걸테죠. 미안함과 고마움과 원망이 뒤엉킨 가족 같은 거. 친구 같은 거. 가끔 정말 하나도 위로되지 않고 그냥 다 내다버리고 싶을 때, 뜻하지 않은 익명성의 순수한 따뜻함에 기쁨을 얻고 위로받는 그런 저녁 몇 번쯤이면.
문득 다시 내일 출근해서 웃을 힘을 얻습니다.

정말 감사드립니다 알럽마셀프님.
그리고 이 글 읽어주신 듀게분들도 감사합니다. (좀 뭔가 동요 같아도 이해 부탁드려요..;_;)
따뜻한 겨울 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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