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낭] 영화 '소공녀' 잡담.

2019.02.18 21:55

로이배티 조회 수:1389

- 늘 그렇듯 구체적 스포일러는 없습니다.

이솜이라는 배우 이름을 들을 때마다 제가 우연히 봐 버렸(?)던 이 분의 데뷔작이 떠오릅니다. '화이트 크리스마스'요.
이수혁 김우빈 홍종현 김영광 성준에다가 이솜. 무슨 배우지망 모델들의 단체 데뷔작 같은 작품이었는데 정말 일부러 그러기도 힘들 것 같은 발연기의 향연이었고 이솜도 예외가 아니었죠. 심지어 거기에선 예쁘지도 않게 나왔어요. ㅋㅋ

암튼 그런 꼴(...)이 첫인상이었던지라 이 분이 지금처럼 그럴싸한 배우로 성장할 거란 기대는 아예 없었어요. 그래서 참 기분이 좋습니다. 좋은 방향으로의 의외성이란 게 참 좋은 것 아니겠습니까.

영화도 참 좋았지만 정말 이솜으로 시작해서 이솜으로 끝나는 영화였어요. 한국 영화에서 역대급으로 매력적인 여성 캐릭터인데 그게 배우랑 거의 맞춤복 수준으로 잘 맞으니 그냥 주인공 캐릭터만 보고 있어도 흐뭇하고 배가 부른 거죠. 아직 앞날이 창창한 배우이지만 그래도 이만한 역할을 또 만날 수 있을까... 싶을만큼 좋은 캐릭터였고, 잘 살려냈어요.

영화 내용은 뭐 다들 아시다시피, 곧 죽어도 담배랑 하루 한 잔의 위스키는 포기할 수 없었던 가사도우미 젊은이가 자신의 우선 순위를 지키기 위해 주거를 포기하고 보다 '정상적이고 철 든' 선택을 하고  살아가는 지인들 집을 떠도는 이야기죠.

영화는 이 간단 요약에서 짐작할 수 있는 이야기와 주제를 크게 벗어나지 않습니다. 작금의 대한민국 젊은이들 삶의 고단함을 소재와 배경으로 삼는 광화문 씨네마 영화들의 컨셉을 그대로 이어가는데... 다만 이전 영화들에 비해 상당히 궁서체로 진지해요. 유머가 없는 건 아니지만 전작(?)들보다 훨씬 더 무겁습니다. 결말의 분위기도 사뭇 다르구요. 아무래도 주인공 미소가 떠돌며 만나는 예전 밴드 멤버들의 사연들 때문인 것 같아요. 꿈도 희망도 날려버리고 현실에 짓눌려 살아가는 대한민국 30대들의 모습을 몇 가지로 유형화해서 보여주는 식인데 아무리 유머를 바탕에 깔아 보여준다해도 그 디테일을 보고 있노라면 웃음보다 한숨이 먼저 나오니까요.

그래도 결국 마지막에 가서는 이런 모습들을 나름 감싸안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에서 역시 이것도 광화문 씨네마 영화 맞구나... 하면서 안도했습니다. 전 이 회사 영화들의 이런 성향이 너무 좋거든요. 굳이 좌절과 혐오만 보여주며 "이게 현실이다 거지깽깽이들아!!" 라고 설교하는 영화는 별로 보고 싶지 않아요. 누가 가르쳐주지 않아도 저도 이미 충분히 잘 아니까요.
아예 환타지 속에서 해피해피하든가, 아님 현실을 다큐식으로 보여주며 절망하든가. 대부분의 영화들이 현실을 다루는 데 있어서 이 양극단 중의 하나를 택하고 있는 상황에서 전 광화문 씨네마의 이런 태도가 너무 좋습니다. 이런 영화들이 더 더 많아졌으면 좋겠어요.


끝.



- 사족 하나 추가합니다.

광화문 씨네마의 전통인 다음 영화 예고편이 제가 본 iptv vod에선 나오지 않아서 아쉬웠거든요.

근데 방금 예전에 네이버에서 이 영화를 다운받아 놓았던 게 생각나서 재생 해 보니 여기엔 나옵니다.

암튼 한국 iptv 사업자놈들은... 이런 식으로 장사하면서 맨날 넷플릭스 견제해달라고 난리만. orz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공지 제 트위터 부계입니다. [3] DJUNA 2023.04.01 25270
공지 [공지] 게시판 관리 원칙. 엔시블 2019.12.31 43814
공지 [공지] 게시판 규칙, FAQ, 기타등등 DJUNA 2013.01.31 352320
126083 Laurent Cantet 1961 - 2024 R.I.P. [1] new 조성용 2024.04.27 32
126082 뉴진스팬들은 어떤 결론을 원할까요 [2] new 감동 2024.04.27 90
126081 장기하가 부릅니다 '그건 니 생각이고'(자본주의하는데 방해돼) new 상수 2024.04.27 85
126080 근래 아이돌 이슈를 바라보며 [2] new 메피스토 2024.04.27 165
126079 마이클 잭슨 Invincible (2001) catgotmy 2024.04.26 59
126078 [KBS1 독립영화관] 믿을 수 있는 사람 [2] update underground 2024.04.26 72
126077 뉴욕타임즈와 조선일보 catgotmy 2024.04.26 114
126076 프레임드 #777 [2] update Lunagazer 2024.04.26 37
126075 "이처럼 사소한 것들"은 우리나라에서 개봉할 가능성이 있을까요? [1] update 산호초2010 2024.04.26 159
126074 한화 이글스는 daviddain 2024.04.26 78
126073 낚시터에서 들은 요즘 고기가 안잡히는 이유 [2] ND 2024.04.26 271
126072 토렌트, 넷플릭스, 어중간하거나 명작인 영화들이 더이상 없는 이유 [2] catgotmy 2024.04.26 237
126071 [왓챠바낭] 전 이런 거 딱 싫어하는데요. '헌터 헌터' 잡담입니다 [5] 로이배티 2024.04.25 337
126070 에피소드 #86 [4] Lunagazer 2024.04.25 52
126069 프레임드 #776 [4] Lunagazer 2024.04.25 52
126068 ‘미친년’ vs ‘개저씨들‘ [1] soboo 2024.04.25 751
126067 Shohei Ohtani 'Grateful' for Dodgers for Showing Support Amid Ippei Mizuhara Probe daviddain 2024.04.25 46
126066 오아시스 Be Here Now를 듣다가 catgotmy 2024.04.25 93
126065 하이에나같은 인터넷의 익명성을 생각해본다 [2] 상수 2024.04.25 282
126064 민희진 사태, 창조성의 자본주의적 환산 [13] Sonny 2024.04.25 1191
XE Log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