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에 대한 斷想...

2019.11.29 00:18

지나가다가 조회 수:467

서울에서 부산까지 KTX로 가면 대략 2시간 반 정도의 시간이 걸리고 그 비용은 약 6만원이다. 그런데 같은 거리를 무궁화호로 여행하면 시간은 5시간 반이 걸리며 비용은 3만원이 조금 안된다. 이를 따져보면 KTX를 타는 사람들은 3시간을 단축하는 대가로 3만원을 더 내는 것으로 볼 수 있다. 다시 말해 대한민국의 시스템에서는 1시간의 가격을 1만원 정도로 쳐준다는 의미이다. 대체로 합리적인 가격이라고 생각된다. 누가 생명을 1시간 연장해 주겠다고 하면 나는 이에 대해 얼마까지 지불할 수 있을까? 1만원 이상이면 비싸다는 느낌이 들 것 같다. 그러니 이 가격을 그대로 적용해 보자. 이런 식으로 수명을 1년 연장하려면... 하루가 24시간이고 1년이 365일이니 24x365 하면 대략 9,000. 결국 9천만원의 가격이 된다. 약간 우수리를 붙여 1억이라고 하자. 1억을 내면 수명이 1년 연장된다? 여기까지만 해도 대체로 상식적인 가격이다.


그런데 여기서 조금만 더 상상을 연장시키면 뭔가 비현실적인 일이 벌어진다. 100억을 내면 100년의 수명이 연장되는 경우가 생기는 것이다. 이 경우는 문제가 된다. 그 정도의 돈을 쓸 수 있는 사람은 드물지만 존재하는 반면에 (이 본인만 하더라도 맘만 먹으면 이 정도 예산은 바로 마련할 수 있다 ^^) 지금부터 100년 이상을 살 수 있는 사람은 사실상 없으니까... 결국 죽음은 누구에게나 공평하며 적어도 그래야 한다는 사실을 믿는 일반인들의 정의감을 크게 손상시키는 것이다.


정의감... 말은 좋지만 결국 사돈이 땅을 사서 배아픈 것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얼마 전에 본 엘리시움이란 영화가 생각난다. 인류가 최첨단 기술로 외계에다 천국같은 세계를 하나 건설해 놓았다. 물론 이를 이용할 수 있는 사람은 어마어마한 부자들 뿐이고 평민들은 오염에 찌든 지구에서 평생 죽어라 일해야만 한다. 그래서 주인공의 희생으로 혁명이 일어나고 어쩌고... 결국 이 천국이 모든 지구인들에게 개방되는 것으로 끝난다. 그래, 그건 좋은데 완전 개방된 엘리시움이 초기의 quality를 얼마 동안이나 유지할 수 있을까?


본인을 아는 사람은 다 알겠지만 나는 공산주의에 대해 부정적인 사람이 아니다. 이 사상과 그를 믿는 사람들은 이 세상에 분명히 쓸모가 있다. 이들이 자기만 생각하는 부자와 고위층을 혼내주지 않았다면 지금의 세계는 훨씬 더 나쁘게 돌아가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들의 주장을 말 그대로 믿을 필요는 없다. "꽃이란 그저 바라보고 향기만 맡아야(feat. 어린왕자)" 하는 것처럼 공산주의 주장은 그저 나쁜놈들을 두들겨패는 막대기의 역할만 하면 그걸로 충분한 것이다.


다시 본문으로 돌아가자. 1억을 내고 1년의 수명을 사는 것에 대해선 그닥 이상하게 생각되지 않는데 100억을 내고 100년의 수명을 사는 상황에 대해선 뭔가 불유쾌한 느낌이 드는 이유는 뭘까? 100년 이상의 수명이란 현재 인간이 지닐 수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우리가 가질 수 없는 물건을 누군가가 돈으로 살 수 있는 상황이 싫은 것이다. '남의 떡이 커보인다'는 조선 속담이 어울린다고나 할까? 그러나 남의 떡이건 뭐건 떡은 떡일 뿐 천상의 물건은 아니다. 100년 이상을 산다는 것 역시 우리가 못하는 일이니까 신비해 보일 뿐이지 실제로 이루어지면 별로 대단한 일이 아닐 것이다. 찌질한 일반인이 죽어라 100년을 공부한다 해서 아인슈타인이나 노이만 급의 업적을 낼 수 있을리도 없고...


그냥 살아있을 때 옆에 있는 것들을 즐기는 게 최선인 것 같다. 전에 듀나가 한 말대로 "먹을 거 다 처먹고 주접떠는 것도 곧 지겨워지겠지만 다행히 인간은 단명하니까 웬만하면 그럴 기회도 갖기 전에 죽겠"지... ^^


http://www.djuna.kr/movies/scrawl_1998_07_28.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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