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80년작입니다. 런닝타임은 1시간 29분. 스포일러는 마지막 흰 글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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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HE FOG' 타이포 참 정겹지 않습니까? ㅋㅋㅋ)



 - 에드거 앨런 포의 인용으로 시작합니다. '우리가 보거나 보이는 모든 것들은 꿈 속이 꿈에 불과합니까?'

 배경은 캘리포니아의 '안토니오 베이'라는 어촌 마을이에요. 찾아보니 현실 안토니오 베이는 스페인에만 있고 캘리포니아에는 없는 것 같지만 뭐 대충 넘어가구요. 내일이면 세워진지 100년이 되는 이 마을은 100년 전 조상들의 업적을 기리는 축제를 준비하고 있어요. 그런데 그 날 밤 갑자기 바람의 방향을 역행하는, 게다가 번쩍번쩍 조명 효과까지 장착한 수상한 안개가 바다로부터 다가오고. 그 안개 속에는 음침한 그림자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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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로 카펜터의 전작 '할로윈'의 주연이었던 제이미 리 커티스가 다시 나오니 주인공일 것 같죠? 근데 이 분은 뭔가 일은 많이 하는데 스토리상 존재감이 좀 약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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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들을 안개 한복판에 냅두고 등대에서 애절한 안내 방송을 하는 이 분이 사실상 주인공에 가깝습니다. 실제로 크레딧에 이름도 가장 먼저 나와요.)



 - 1980년은 70년대입니까 80년대입니까? 답은 나와 있지만 영화 같은 거 얘기할 때 시대별로 싸잡아 뭐라뭐라 떠들기엔 참 애매한 문제죠. 숫자상으론 '80'이니 분명히 80년대 맞긴 한데. 어쨌든 70년대가 방금 전에 끝났으니 70년대의 영향이 거의 전부이고, 80년대는 막 시작이니 '이것이 80년대 스타일이다!'라고 말하기엔 또 너무 빠르단 말이에요. 간단히 '둘 다'라고 말하면 될 문제지만 그냥 좀 신경이 쓰입니다. ㅋㅋㅋ

 이런 쓸 데 없는 얘길 막 늘어 놓고 있는 건 그냥 이 영화가 존 카펜터의 '리즈 시절' 영화 중 하나라는 얘길 하려다가 그랬습니다. 이 바로 전 영화가 '할로윈'이고 그 전 영화가 '분노의 13번가'. 이 영화 다음 영화가 '괴물', 그 다음 영화가 '크리스틴'이고 뭐 그래요. 그러니 시대는 대충 잊고 존 카펜터 전성기에 나온 호평 호러 무비다... 라는 정도만 기억해 주시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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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끼야악 안개다 무서워!!! 하고 도망다니는 이야기라 밍숭맹숭해질만도 한데, 그 시절 존 카펜터 능력 덕에 괜찮았습니다.)



 - 근데... 솔직히 많이 무섭고 긴장감이 팡팡 터지고 그러진 않습니다. 하하. 사실 요즘 영화들 기준으로 보면 좀 싱겁기도 해요. 왜 그러냐면요.

 이야기의 템포가 많이 느긋하고 자극적인 장면들은 조금 나옵니다. 대충 이런 식이에요. 도입부에서 이 마을에 얽힌 전설을 동네 할아버지가 꼬맹이들 모아 놓고 들려주는 게 대략 5분. 그리고 안개의 1차 습격으로 인해 마을에 이상 현상들이 벌어지고 사람 죽어나가는 게 대략 10분. 이래서 이대로 쭉 가는구나! 했는데 쨍쨍 하고 날이 밝은 후에 그 마을 사람들이 미스테리를 파해치고 마을의 비밀을 깨닫는 과정으로 거의 한 시간을 채웁니다. 그동안 안개 안 나와요. 사람도 안 죽고요. ㅋㅋㅋ 그러다 끝나기 20분쯤 전에 다시 밤이 되고, 안개 깔리고 나서 클라이막스거든요. 게다가 이 안개에는 할당량(...)이 있는데 총 여섯명 죽이고 가는 게 목표구요. 도입부에서 이미 셋을 해치웠으니 클라이막스에선 셋만 더 죽으면 되죠. 그리고 이 때 관객 입장에선 죽어도 하등 상관이 없고 또 처음 나올 때부터 죽을 것 같았던 단역에 가까운 조연 둘이 먼저 죽습니다. 게다가 마지막 한 명은 또 스토리상 이미 죽음이 예정되어 있거든요. 


 이러다 보니 중반의 한 시간 가까운 시간 동안 긴장감이 풀어지고. 막판 액션에서도 누가 죽을지 뻔히 보이니 그 외의 다른 인물들은 고생을 하고 위기를 겪어도 하나도 걱정이 되지 않아요. 그러니까 이야기 자체가 긴장감과는 좀 거리가 멀게 짜여져 있다고 할 수 있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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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니들이 아무리 고생을 해봐야 죽을 거란 생각이 1도 안 들어서 편안했다구요.)



 - 그리고 메인 스토리 역시 잘 뜯어 보면 공포감, 긴장감과는 좀 거리가 있어요. 그러니까 이게 말하자면 바닷속에 가라 앉은 보물에 대한 이야기이고, 거기엔 숨겨진 비극적인 역사가 깔리면서 빌런으론 해적스런 비주얼의 뱃사람 귀신들이 나오거든요. 그래서 분명히 호러 코팅은 되어 있지만 그 본체는 바다에 대한, 뭔가 해적 나오고 보물 찾기 하는 그런 옛날 이야기인 겁니다. 20세기 소년, 소녀들이 많이 읽고 재밌어 했던 류의 괴담... 이라기 보단 차라리 전설에 가까운 이야기이고 그러니 또 이게 별로 안 무서운 거죠. 이걸 '본격 호러'라고 본다면 아마 '캐리비안의 해적'도 호러로 분류를 해야 할 겁니다. 뭐 실제로 그 영화에도 호러 코드가 많이 들어있긴 하지만, 호러 무비와 호러 코드가 들어간 영화는 다르죠. 우리가 잭 스패로우의 모험을 보며 무섭다고 생각하진 않잖아요? ㅋㅋ


 그래서 기대치 조정이 좀 필요합니다. 그냥 '수상하고 위험한 뭔가가 어슬렁거리는 안개가 사람을 덮친다!'는 심플한, 미니멀리즘스런 호러 영화를 기대하심 절대로 안 되구요. 으스스한 옛날 이야기가 현대로 쳐들어와서 사람들 고생 시키는, 좀 옛스럽게 괴기한 모험담 정도랄까... 뭐 그렇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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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지만 어쨌든 안개 속 유령들은 간지가 나죠. '화성의 유령들' 아님!)



 - 그래도 다행인 건 이게 어쨌거나 '리즈 시절 존 카펜터 영화'라는 겁니다. ㅋㅋㅋ

 기대보다 조금 나오고 덜 죽이긴(...) 해도 영화 속 '안개'와 그 속 괴인들의 연출이 좋아요. 원경은 미니어처와 드라이 아이스, 근경은 대충 연기 발생 장치 속에 조명 좀 집어 넣고. 괴인들도 열심히 안개와 그림자 속에 꼭꼭 숨기면서 가난하게 연출한 게 다 티가 나지만 결과물은 썩 보기 좋고 신비로운 느낌도 충분합니다. 특히 원경들 같은 경우엔 그림 자체도 불길하게 예쁜 느낌으로 참 잘 잡았어요.


 누가 죽고 살지는 뻔하다 할지라도 클라이막스 즈음의 전개도 좋습니다. 등대에서 라디오 방송을 하는 여주인공이 멀리서 안개를 지켜보며 안내하고, 현장 요원(...) 제이미 리 커티스와 친구들이 그 안내에 따라 안개와 쫓고 쫓긴다는 액션 아이디어도 좋구요. 


 또 이런 '옛날 이야기'다운 최종 해결책과 마무리도 맘에 들었습니다. 그렇게 막 재밌는 건 아니었지만 이야기 톤과 어울려서 깔끔했다는 느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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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등대를 바탕으로 컨트롤 타워 놀이를 하는 아이디어도 괜찮았는데... 아니 이 짤로 위치를 다시 보니 여기에서 마을이 잘 보일 리가 없어 보이는데요? ㅋㅋㅋ)



 - 사실 뭐 흠 잡자고 열심히 뜯어 보면 부족한 구석은 많습니다. 등장 인물들이 많은데 좀 어수선하게, 얼기설기 엮여 있다는 느낌도 들구요. 대부분의 캐릭터들이 뭔가 설정만 잡아 놓고선 발전을 시키려다 만 것 같은 느낌이라 다 보고 나면 좀 허해요. '난 불행을 몰고 다니나봐'라고 자조하고 다니는 제이미 리 커티스 캐릭터 같은 경우가 대표적이겠죠. 그냥 바람처럼 나타나서 이유 없이 열심히 노력하다가 그냥 끝. 이런 식이라. ㅋㅋㅋ 


 또 앞서 말했던 중간 부분의 기나긴 비밀 파해치기 단계가 인트로와 클라이막스에 비해 긴장감이 많이 부족해서 좀 늘어지는 느낌도 있구요. 이 부분은 호러 영화보단 소년 소녀 모험 영화의 비밀 찾기 느낌입니다. ㅋㅋ 근데 또 그런 와중에 일은 놀랍도록 쉽게 풀려서 순식간에 진실에 도달해 버리고. 제작비의 문제였는지 100주년 마을 축제도 정말 썰렁하게 휙 지나가 버린 후에 클라이막스는 그냥 대략 대여섯명이 내내 북치고 장구 치다 끝... 등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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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들 오른쪽 여자분은 알아 보시겠죠. 호러퀸의 엄마 호러퀸, 자넷 리 여사님이십니다. ㅋㅋ 모두 함께 뤼스펙을 바치고 가도록 하죠.)



 -  그런데 뭐 존 카펜터의 영화들이 시작부터 끝까지 흠 없이 매끈한 작품이었던 적은 별로 없거든요. 거의 데뷔작인 '13번가의 분노'가 오히려 가장 그런 느낌에 가까웠고 이후 영화들은 다들 '아 B급 영화구나' 하는 가운데 강력한 훅들이 첨가되어 있다는 느낌이었기 때문에 이 영화도 대충 그런 느낌으로 잘 봤습니다.

 다시 한 번 강조하지만 21세기 호러 영화들의 빠른 템포나 자극적 전개들 같은 걸 기대하심 아니되십니다. ㅋㅋ 옛날 영화다운 옛날 영화에요. 그렇게 좀 느긋하고 순한 느낌(?)으로 쏠쏠하게 재밌는 옛날 호러... 가 땡기신다면 한 번 보실만 할 겁니다. 전 그냥 즐겁게 잘 봤구요.





 + 이런 거 따지면 안 되는 거 알지만 대체 안개 속의 그 유령들은 100년 동안 뭐 하고 있었답니까. 딱 100주년 기다려 활동 개시하는 것도 희한... 그러다 원수들 후손이 그 전에 다 이사라도 가 버렸으면 어쨌으려고. ㅠㅜ



 ++ 생각해보니 이런 류의 공포 영화 치곤 시작해서 끝날 때까지 총기류가 단 한 번도 등장하지 않는 영화였네요. 허허 건전하기도 하지...



 +++ 영화를 보다가 깨달은 건데, 제 기억 속에선 이 영화가 '환상특급'의 '등대' 에피소드와 뒤죽박죽 섞여 있었습니다. 30여년만에 기억을 분리해냈는데, 결과적으로 무섭기는 '등대'가 더 무서웠던 것 같기도 하지만 아마도 추억 버프일 가능성이 크겠죠. 그리고 지금 검색해보니 그 에피소드에 지오반니 리비쉬가 나왔었네요? ㅋㅋㅋ



 ++++ 정말 돈 없이 찍긴 한 모양입니다. ㅋㅋ 검색을 해 보니 유령 대빵 역할을 비롯해서 많은 단역들, 스탭들이 역할을 두 가지 이상씩 해가며 만든 영화더라구요.

 그리고 다 찍고 편집해서 시사했더니 회사측에서 '야 너무 순하잖아?' 라고 해서 도입부와 클라이막스의 액션들을 다시 찍었다는데, 제작사가 잘 한 것 같아요. 지금이 딱 괜찮은데 여기서 더 순해졌으면 많이 심심했을 듯.



 +++++ 스포일러 구간입니다.


 알고 보니 요 마을은 비겁하고 잔인한 범죄로 이뤄낸 결과물이었습니다. 멀리서 배 타고 나병 걸린 갑부가 찾아와 자기들 정착시켜 주면 금을 주겠다 그랬는데, 나환자촌을 마을에 들이기 싫었던 마을 리더들이 가짜로 수락하고는 안개 낀 날에 암초로 그 배를 유인해서 다 수장시켜 버렸어요. 그러고 나중에 금을 탈취해서 마을 살림에 보탰던 것. 안개 속 유령들은 당연히 그때 빠져 죽은 사람들이었구요. 근데 좀 웃기는 게, 이 때 마을 악의 축이 다 해서 여섯명이었대요. 그래서 유령들은 걍 사람 여섯명을 죽이는 게 목표입니다. 아무나 여섯 명이요. ㅋㅋ 그래서 도입부에 죽어 나간 마을 뱃사람 세 명 + 기상 담당관 + 여주인공 아들을 봐주던 동네 할머니까지 다섯명이 죽고 맨 마지막에 그 시절 호러 영화답게 '끝난 줄 알았지롱?'하고 다시 유령들이 튀어나와 죽이는 동네 목사 한 명(이 사람은 100년 전 빌런들 중 리더의 후손입니다. 어차피 반드시 죽었어야 할 사람.)으로 여섯을 채워요.


 바꿔 말하자면, 나름 주요 인물처럼 행동하는 사람들 중에 죽는 사람은 목사 딱 한 명이란 얘깁니다. 나머지는 고생은 좀 하지만 다치지도 않아요. ㅋㅋ 참 순한 맛 호러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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