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변의 카프카'를 몇 년에 걸쳐 나눠 읽었습니다. '1Q84', '세계의 끝과 하드보일드 원더랜드'하고 같이 읽는 바람에 셋이 섞여서 해변의 카프카는 읽은 것 자체를 잊고 있었죠. 상하권 중 하권 1/4정도까지 도서관에서 읽었던 모양입니다. 셋을 한 번에 읽어서 그런 것도 있지만 이 책이 그다지 제 취향은 아니어서 잊었던 것도 있어요. 충격적으로 재미없었던 것도 아니고 그냥 하루키 책 또 나왔구나 하는 느낌이었었죠.  그러다가 포인트 털이용으로 이 책을 사버렸습니다. 


 해변의 카프카는 마지막에 가서야 서로 이어지는 두 개의 스토리가 교대로 진행됩니다. 아버지로부터 오이디푸스와 같은 저주를 듣고 자란 15살 소년이 집을 나와 겪는 이야기, 그리고 2차대전 중 '알 수 없는' 사건으로 지적장애를 얻게 된 노인이 역시 알 수 없는 힘에 끌려 -또는 밀려- '어딘가'로 떠나 '무언가'를 찾는 이야기.  '알 수 없는'. '무언가'가 소설의 키워드죠. 


 '알 수 없는 무언가'를 찾아 떠나는 이야기는 작가의 전작 '양을 쫓는 모험'에도 나옵니다. '거대한 사념 덩어리' 라고 표현된 이 '양'은 사람에게 씌워 '양적인' 세계를 구축하려 듭니다. 우익조차 아니라고 하는 거대한 물밑 단체가 일본에 이미 구축되어있고,  이 양은 자기가  선택한 후대 숙주를 찾아 떠납니다. 그리고 이 '양'은 해변의 카프카에서는 더 형체가 모호한 어떤 것으로 나오고요. 

 

 작가는 계속해서 사악한 무언가를 때려잡는 이야기를 쓰고 있어요. 1Q84도 한 권만 읽었는데 내내 이 이야기를 하고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사악한 무언가를 때려잡는다니 '엑소시스트' 떠오르지 않으세요? 그리고 비교적 -저한테는- 신작인 '곡성'.

 그냥 무서운 이야기라기엔 초반부, 그러니까, 그 유명한 '뭣이 중헌디' 직전 상황이 심상치 않습니다. 주인공이 어딘가 이상한 어린 딸을 문구점 비슷한 곳에 데려가서 머리 장식을 사줘요. 머리띠였나, 핀이었나. 그걸 머리에 꽂은 딸은 평범한 어린 딸처럼 묻습니다. 예쁘냐고. 다 큰 딸은 이렇게 묻지 않죠. 부모와 아직 자아 분리가 다 안 된, 부모가 온전히 자기 편이라고 믿는 어린 자식들이나 그렇게 묻습니다. 머리 굵은 다음에 그런 질문은 작정한 재롱, 애교고요. 아버지는 딸을 그 나이 자식 대하는 범상한 태도로 대하고 자식도 그렇게 받습니다. 바꿔 말하자면 이미 뭐가 씌인 딸을 평범한 어린 아이 대하듯이 달래려고 든 거죠. 뭐가 씌웠는지까지는 당연히 모르겠지만 이미 못 볼 것을 봐버린 걸 알면서도요.  귀신이 서서히 발효숙성되고 있었는지 아니면 장난을 친건지 아이는 금방 '뭣이 중헌디'로 아비 뒤통수를 칩니다. 

 결국 주인공인 아이 아버지는 알 수 없는 그 무엇으로부터 아이를 구하기 위해서 별의 별 일을 다 합니다. 경찰로서도 썩 유능해보이지 않는 이 분은 보호자로서는 거의 무력해요. 이유도 모르겠는 거대한 악의가 자식을 덮치는데 보호자로서 여러 시도는 해보지만 모두 실패합니다. 양, 그것, 귀신, 박연진을 때려잡는 데 실패한 거죠.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자신이 보호하고 싶은 것들을 지켜내지 못하고 슬퍼하는지 생각해보면 곡성은 너무 슬픈 이야기예요. 


하루키는 '세상에서 가장 강인한 15세' 가 되어 때려잡으라고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 왜 아비의 저주를 실행해야하고, 과거에 살던 누군가는 왜 덧없이 죽어야 했는지 잘 모르겠습니다만, 하루키의 여성 캐릭터들이 왜 이리 자주 이런 식으로 소모되는지에 대한 의문과는 별개로 현실에서 그런 일이 얼마든지 일어나긴 하죠.


세상이 목적이 있어서 어딘가로 흘러가는 것 같진 않습니다. 목적이 있다 한들 알 수가 없고, 또 목적을 안다 한들 때가 안 좋으면 개인은 그냥 갈려나갈 거고요. 그럼에도 뭔가를 하긴 해야죠. 그러라는 이야기로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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