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만도 잡담

2024.05.23 20:20

돌도끼 조회 수:131

[람보2]를 극장에서 봤을때 사람들이 가장 감탄했던 부분-여기저기서 감탄사가 튀어나왔던-은 람보가 비행기 안에서 칼가는 장면이었습니다.
처음에 등만 비쳐주는데 그것만 봐선 그게 뭔지 몰랐어요. 곧이어서 남자의 등근육이란걸 알게되고 이어서 칼가는 람보의 팔뚝을 보여줍니다.

사실 그이전까지만 해도 스탤론이 근육돼지 속성은 아니었어요. [록키]도 그렇고 [람보]도 그렇고 그렇게까지 근육이 우락부락하진 않았죠. 그렇지만 [람보2]에선 완전 근육떡대로 변신해서 나옵니다.

서양사람들의 생각으로는 그럴 필요가 있었던것 같아요.
록키, 또는 1편의 람보와 달리 2편의 람보는 혼자서 수백명을 쓸어버리는 만화속 슈퍼히어로거든요. 슈퍼히어로는 몸도 '슈퍼'해야한다는 거죠. 슈퍼히어로 만화속 캐릭터들도 다들 근육덩어리잖아요.

중국무협영화에선 왕우같은 겉보기에 호리호리하고 비실해 보이는 사람이 혼자서 수천명을 썰어버려도 사람들이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았죠. 무협에선 눈에는 안보이는 내공이라는 게 있어서 굳이 근육이 우락부락할 필요가 없거든요.
하지만 서양사람들 생각에 강한 사람은 우선 눈으로 보기에도 강해보여야하는 거예요. 그래서 람보의 몸이 변할 수 밖에 없었을 거예요.

그럼 숱하게 나온 람보 아류작들 중에서도 가장 유명한 [코만도]가 상영될 때 사람들이 가장 감탄했던 장면은 무엇이었을까요.

목적지에 도착한 메이트릭스가 상륙하기 위해 빤쓰만 입고 보트 타고 노젓는 장면이었습니다. 극장 사방에서 서라운드로 감탄사가 튀어나왔어요.

보디빌딩이란 게 전혀 사람들 관심을 못끌었던 우리나라에서 사람들에게 처음으로 아놀드가 본업에 가장 가까운 모습을 보여준 순간이 아니었나 싶어요ㅎㅎ 아마 아놀드 영화 통틀어도(초기의 보디빌딩 영화들 빼면) 아놀드의 근육이 이렇게 대놓고 강조되는 장면이 있었나 싶기도...
그런데 그장면이 딱히 근육을 강조하기 위해 연출된 것도 아니었어요. [람보2]처럼 특정 부위를 클로즈업해 훑어가며 노골적으로 '이 남자의 대단한 근육을 보시라'하는 것도 아니고 그냥 노젓고 있는 걸 평범한 풀샷으로 보여줬을 뿐이예요. 그런데도 사람들이 압도당해 버렸죠.

[코만도]의 제작자 조엘 실버는 아놀드의 몸을 본 순간 바로, 이남자면 스탤론을 간단히 제압하겠다라는 확신을 얻어 캐스팅했다고 하네요. 저런 몸을 가진 사람이라면 혼자서 수백명을 때려잡아도 사람들이 수긍하지 않겠어요.
거기다 아놀드는 터미네이터이기도 하죠. 인간같지 않은 몸의 소유자일 뿐 아니라 아예 인간이 아닌겁니다.

원래 [코만도] 오리지날 각본은 키스의 진 시몬즈(각본가의 지인이었다고...)를 염두에 두고 썼던 거라고 합니다. 하지만 아놀드-터미네이터가 주인공으로 결정되면서 이 이야기는 터미네이터 맞춤형으로 조정됩니다.

영화 시작하면 바로 알수 있어요.
딸이 납치되었습니다. 눈앞에는 납치범이 "네 딸이 안전하길 바란다면 내가 시키는 대로 해. 내말 알아들었지"라고 하고 있고요.
'평범한 인간' 아빠라면 여기서 우선 당황할테고, 이어서는 딸의 목숨을 쥐고있는 사람이니 무릎꿇고 애원하면서 인정에 호소할 수도 있고, 납치범의 목을 조르면서 당장 딸이 어디있는지 말해라고 윽박지를 수도 있겠죠. 딸의 목숨이 걸린 문제고 눈앞에 있는 사람이 유일한 단서이니 어떻게든 이사람을 이용하려고 할겁니다.

하지만 우리의 메이트릭스씨는 표정변화 하나 없이 창밖을 한번 쓱 보고는
"ㅈ까아니"
한마디 하고 바로 납치범한테 저승구경을 시켜줍니다.

'평범한 인간'이라면 하기 어려운 일이죠. 조금이라도 어긋나면 딸의 목숨이 위험해질 수도 있는 문제라 신중함은 필수, 실행에도 주저함이 따르게되는데 메이트릭스는 순간적인 판단에 따라 그냥 실행해버리는 겁니다. 바로 터미네이터식 해결입니다.
그니까 [코만도]는 만약에 터미네이터가 본업과는 반대로 사람을 구하는 입장이 된다면 어떻게될까 하는 가정에서 진행되는 이야기입니다.

그후로도 계속 이런식이예요. 메이트릭스는 계속해서 '이게 과연 실마리가 되긴 하는걸까?' 싶은 실날같은 단서만 있다 싶으면 거기 올인하고 그외 다른 건 보이는 대로 다 쓸어버립니다. 더 나은 단서가 있지 않을까 하고 찾아보지도 않고 혹시 이게 맞는걸까 하고 주저하지도 않아요. 모든게 즉각적인 판단에 따르고, 딸의 목숨이 달린 일인데도 일말의 주저함이나 회의도 없습니다. 터미네이터니까요.
보고있는 사람들도 아놀드가 터미네이터란 걸 알고 있으니까 어색하게 느끼지 않는거죠.

결국 [코만도]는 모든게 아놀드. 아놀드가 다하는 영화ㅂ니다.
아무리 말 안되는 상황이 튀어나와도 아놀드니까, 엄폐도 안하고 필드 한가운데 우뚝서서 앞으로만 쏘고 있어도 적이 쏘는 거 한방도 안맞고, 적들은 사방에서 알아서 다 죽어줘도 아놀드니까, 보고있는데 어색하단 생각이 안들어요. 아놀드의 존재 자체가 말이 안되거든요. 그런 사람이 어떤 말 안되는 행동을 해도 이상하지 않은 거죠ㅎㅎ

거기다 참 영리하게도 영화가 코미디입니다.
스스로가 전혀 진지하게 생각하지 않아요. 여주인공도 멘탈이 정상은 아니고, 악당들도 전부 어딘가 나사빠진 친구들이고 거기에 이른바 원라이너로 가득한 대사들.
이렇게 그냥 영화가 놀자판 분위기니까 사람들이 황당한 장면들을 봐도 따지고들 생각도 안들고, 그냥 웃어넘길 수 있죠.

사실 뭐 [람보3]도 [코만도] 못지않게 황당한 장면들로 가득찬 영화거든요. 근데 [람보3]는 그 말도 안되는 장면들을 세상 진지하게 연출했죠. 하지만 이미 사람들은 그런걸 진지하게 받아들이지 않게되었을 때였어요. [람보3]가 나왔을 때엔 이미 전세계적으로 억만편의 [람보2] 아류작들이 나와있어서 사람들이 좀 지겨워하게되었을 즈음이죠. 그렇게 비현실적인 람보류 영화자체가 사양길로 들고, 람보같다는 말은 황당무계하다는 말의 동의어처럼 되기도 했죠.


그리고 한참 지나 람보고 코만도고 옛날 사람들 추억거리정도나 되었을 때에 뤽 베송이 [트랜스포터]를 들고 나왔죠. 전 베송이 람보/코만도류의 비현실적인 일당백 영웅이야기를 다시 살린것 같아서 반가웠습니다. 영화의 톤이나 캐릭터를 봐서는 람보보다 코만도에 더 가깝다고 느꼈어요.
그러더니 이양반이 진짜로 [코만도]를 리메이크해버리데요. [테이큰]이요.

이야기가 같죠. 특수부대 출신 아빠가 제한시간 안에 납치된 딸을 구해야되요. 글구 이 아빠가 하는 짓도 같아요. 이게 과연 실마리가 되긴 할까싶은 아주 실날같은 단서만 있다싶으면 즉각적인 판단으로 거기 올인하고 그외 다른건 다 죽여버려요. 일말의 주저도 없이.
코만도 이야기에 '연기력이 되는 배우'를 집어넣으니 그건 또 그나름대로 설득력이 생겨서 재미있었어요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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