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www.hani.co.kr/arti/opinion/column/517901.html



<나는 꼼수다> 성희롱 발언으로 시시비비가 분분하다. 이번 사태가 남녀 대결 구도로 가지 않기를 바랐지만 영락없이 그렇게 가고 있는 듯하다. 오랜 세월 여성주의 운동을 해온 나로서는 이제 남자, 여자, 좀 떨어져 사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그간 여자들이 사회를 바꾸어보려고 애를 썼고, 안 되면 아들이나 애인만이라도 바꿔보려 안간힘을 써온 것 같은데 성공률보다 실패율이 더 높은 것 같다. 그래서 서로에게 “없는 것보다는 나은 존재” 정도로 가면서 좀더 지혜롭게 만나야 하지 않나 싶다.

뉴스를 보러 인터넷 사이트에 들어가면 “이혼녀의 묘한 눈빛: 남친의 매력 어디서?”, “미모의 여친 녹초 만드는 비법”, “비아그라에 당당한 도전장” 등의 문구를 보기 싫어도 봐야 한다. 성기 중심의 섹스 문화가 왜 그렇게 극성을 부리는지 많은 여자들은 납득하지 못한다. 사랑스런 입맞춤과 다정한 산보를 더 좋아한다고 하면 알아듣는 척하다가 돌아서면 성기 중심 사회로 복귀하고 만다. 대학 다닐 때 치마 아래 종아리를 훔쳐보는 선배나 동급생을 사람 취급하지 않았었다. 그런데 그들은 다 잘 살고 있다. 비아그라를 챙겨 먹기도 하고 아내의 비위를 맞추느라 교회나 사교 모임에도 열심히 다닌다.

경쟁과 적대의 원리로 움직이는 세상에서 살아남아야 하는 남자들에게 여자와 함께하는 섹스의 순간이 특별한 의미를 지닌다는 것은 이미 잘 알려진 사실이다. 섹스에 대한 집착은 사회생물학적인 것이고 실은 남성세계에 편재한 폭력과 암투, 외로움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 현자들이 사는 인류 사회에서 환갑이 지난 남자들은 존경받는 존재였다. 아랫도리가 아니라 가슴과 영혼이 충만한 존재였기 때문이다. 섹스와는 자연스럽게 멀어지면서 손주와 노는 즐거움에 취하고 더 나이가 들면 적절한 때에 곡기를 줄이면서 세상을 하직할 준비를 했다. 이런 이상적 모습에서 멀어졌다고 해도, 나이 들어서도 포르노를 보거나 비아그라를 복용하면서 그 ‘노동’을 힘겹게 해야 하는 것은 안쓰러운 일이다. 그간 성적 농담이 남성 간 연대를 드높이는 언어문화로 자리잡아버린 것이 안타깝고, 남성 간 연대를 한다면서 실상은 대표조차 뽑지 못해 여성들에게 기대게 되는 상황도 안쓰럽다. 그러나 그것이 워낙 오랜 세월 남성세계에 자리잡은 관성이자 문화여서 쉽게 변하기는 어려울 것 같다.

<오마이뉴스> 이희동 기자는 <나꼼수>의 정체성은 “자신들이 골방에서 시시덕거리는” 것을 내보내는 ‘해적방송’에서 찾아야 한다고 했다. 서양이나 일본 등에서는 꽤 오래전부터 해적방송이 있었고 재미있는 것들도 꽤 많다. <나꼼수> 방송은 마침 팟캐스트라는 기술적 플랫폼의 등장으로 공영방송을 능가하는 영향력을 가질 수 있었던데다 정치 참여가 힘들어진 상황에서 “쫄아 있던” 국민들이 큰 싸움에 휘말리지 않고도 정치에 개입할 가능성을 보여주면서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던 것으로 보인다.

정치적인 것이 한낱 사기에 지나지 않으며, 모든 사회적 관계가 얕은 계산과 꼼수로 전락한 세상을 술자리 뒷담화로 풀어내던 이들이 일정하게 공공영역에서 부흥회를 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들의 독특한 수다는 그나마 긴장을 풀어주고 토론을 가능케 함으로 10·26 서울시장 보선을 포함한 공적 장에 개입해 나름의 성과를 거두기도 했다.

이제 <나꼼수>는 공론의 주요 플랫폼이 되었다. 술자리에서 쇼 무대로, 부흥회장으로 변신하는 그 플랫폼이 앞으로 어떻게 진화할지는 지켜볼 일이다. 골방인 척 시시덕거림을 계속 할 수도 있고, ‘정치적이고 사회적인 것’을 제자리에 돌려놓을 수도 있을 텐데 그것은 온전히 주인공들과 팬들의 몫이다.

단지 공지영씨의 우정 어린 조언을 제대로 받아들이지 못한 것, 성희롱을 ‘교과서적’으로 개념화하면서 발뺌하려 한 것은 ‘해적’으로서는 쪽팔리는 일이 아닌가 싶다. “어, 누나, 미안해. 그래도 어쩔 수 없어. 어쩌면 계속 이럴 거야. 이게 우리 핵심 전략이거든”이라고 화통하게 말할 수 있었다면 좋았을 텐데…. 어쨌든 대적하는 대상이 ‘가카’라고 하니 본분에 충실하게 잘해보기 바란다.

조한혜정 연세대 문화인류학과 교수





페미니스트계의 '장인' 답게
인정하지 않되 이해하고 수긍하면서 
핵심을 다 말하시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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