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쌍계사 부처님은 초파일 앞두고 세단 잃을 뻔해

쌍계사를 돌아보고 동행을 기다리기 위해 잠시 부설 박물관을 찾았습니다.

쌍계사 후불탱화나 괘불이 죄다 컬러프린트 -_-;;;된 것들이기에 원본을 보니 참 좋더군요.

보물로 지정된 삼세불 괘불과 영산회상도, 팔상도 등을 보며 감탄했습니다.


절을 찾은 사람들은 빨리걷기 대회처럼 휙 스쳐지나가 빠르게 빠져나가더군요.

그분들이 제발 '가보니 별거 없더라' 이런 소리는 안했으면 좋겠습니다.

아이들 데려온 부모님들이 더 앞장서서 나가시는건... 물론 빨리빨리 돌고 나가야 밥도 먹고 차도 한잔 하고, 톨게이트도 빨리 빠져나가고

그런 거겠지요. 하지만 아이들에게 뭔가 설명을 해주거나 찬찬히 들여다보게 하는 부모는 한 사람도 없었습니다.


그러나 차라리 그게 나은 것임을... 2명의 대여섯살 배기 딸을 데려온 아줌마가 친절히 가르쳐줍니다.

들어오자마자 2층 전시장을 빛의 속도로 뛰놀던 그 아이들은 중앙에 있는 불연(부처님 타는 가마. sedan chair라고 써있습니다)

을 만지작거립니다. 불안하게도 그 가마의 둘레에는 접근을 막을만한 장치가 없습니다;


저는 만지지 말라고 소리칩니다. 이쯤되면 어머니가 와서 애들을 혼내야 하는데 바삐 사진기만 조작합니다.

애들을 가마 앞에 세우고 '플래시만 안터뜨리면 되겠지' 하면서 플래시를 펑! 터뜨리며 사진을 찍습니다.

보물로 지정된 영산회상도와 감로탱, 팔상도, 삼장도 등의 조선탱화들이 움찔합니다.


순간 어린 쪽 아이가 그 나이 또래 답게 제 몸을 잘 못가눠 가마에 몸을 턱 부딪힙니다.

가마를 지탱하는 기둥 네개가 살짝 틀어져 기우뚱하게 되었습니다.


'저기요!!! 애가 가마에 부딪혔잖아요. 이거 문화재라고요'

어머니는 천연덕스럽게 답합니다.

'어머, 아깐 좀 만졌지만 이번엔 안 부딪혔어요.'

'저기 부딪혔거든요. 기둥 기우뚱한 거 보세요. 그리고 저기.'


저는 벽 위를 가리킵니다.


cctv 를 발견한 어머니는 두 아이를 재빨리 모아 서둘러 2층 전시장을 빠져나가 쏜살같이 나갑니다.


나무로 만들어 부처님을 행사 때 모시거나 안치할 때 타는 용도로 쓰고, 사방에 치장을 해서 그 위엄을 드러냈으며,

손잡이에는 용의 머리를 붙여 장식했던, 그리고 많이 남아있지 않아 소중한 문화재라는 불연은 이렇게 오늘도 위기를 넘깁니다.


2. 부처님 오신날 아침, 구례 화엄사 입구 고속도로 진입로에서

길이 막힐 지도 몰라 새벽 5시에 서울로 나섰습니다. 

동이 터오는 섬진강을 거슬러 올라가 하동에서 구례까지 가서 고속도로를 진이하기 위해 우측의 연결도로로 차를 모는데...


그 아침부터 고속도로 입구에 나이 든 여자가 서있습니다.

얼굴에 피를 묻히고 비틀 비틀 갈 지자를 그리며 걷습니다.

연결도로로 진입하기 위해 차들이 속도를 줄이지만 서는 차는 하나도 없었습니다.

저는 차를 세우고 그 여자에게 다가갔습니다.


'왜 그러세요. 교통사고 났어요? '

'여기 근처 병원이 어디에요. 흐허ㅓ허어..'


여자는 의식은 멀쩡했고, 교통사고로 다친 것 같진 않아 보였습니다.

그렇지만 온몸에 피를 묻히고 있고 입성이 말이 아니었습니다.

여자를 앉혀놓으니 가드레일에 피가 잔뜩 묻습니다.


'119 불러드려요?'

저는 119에 전화해 위치를 설명했습니다. 


대화를 시도하니 여자는 트라우마를 받아 제대로 말을 이어갈 수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살펴보니 두피에는 찰과상이 좀 있고, 당장 처치해야 할만한 큰 개방상이 있어보이진 않았습니다.

다시 얼굴을 자세히 보니 왼쪽 눈두덩이와 입술이 퉁퉁 부어있었습니다.


맞았구나...


'누가 때린거에요? 네'

'흐어어어어...'


그때 비닐하우스 사이를 지나 하이힐을 손에 쥐고 도로쪽을 배회하는 중년의 남자가 눈에 들어왔습니다.

저는 목소리를 높여 그 아저씨를 불렀습니다.

그 아저씨는 셔츠를 풀어헤치고 그 사이에 피를 잔뜩 묻히고 저에게로 다가왔습니다.

살짝 무서웠지만, 목소리를 더 높여 그 아저씨에게 과장된 몸짓으로 이리 어서 오라고 지시하였습니다.

마침 119 구급대가 왔습니다.


자기가 수원에 사는데 여기가 고향이라고 말하는 남자는 어제밤부터 술을 먹었다고 했습니다.

같이 술을 먹다가 무슨 일인지 새벽부터 흠씬 두들겨 패기 시작했던 것 같습니다.

여자는 도망쳐 신발도 안 신은채 도로 어딘가로 나와 위험하게 배회하였던 거구요.

둘이 부부인지 아닌지, 무슨 사정이 있는건지는 모르겠습니다.


남자는 '내가 때린 거라고 단정하지 마세요.' 라고 횡설수설했습니다.

가냘픈 체격에 힘도 없을 것 같은 중년의 사내였지만, 여자를 두들겨 패 생명의 위협을 느끼게 하는 데는 충분해 보였습니다.


119 구급대에게 112에 신고도 부탁하고 

저는 차를 몰고 서울로 향했습니다.


3. 쌍계사 감로탱


박물관에서 본 불화중에는 감로탱이 참 마음에 들었습니다.

수륙제나 천도제 때 밖에 걸어놓는 야외 스크린 같은 용도로 쓰이는 그림인데,

한껏 음식을 차려놓고 부처님께 비는 풍경이 가운데 위치하고 그 위로는 일곱 여래와 보살, 여러 천신들이 흠향하며 내려오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화폭의 아래쪽에는 온갖 인간 세상의 폭력과 재난, 인간세상이 그려집니다.

싸우는 사람, 칼로 위협받는 사람, 때리는 사람, 굶고 있는 사람, 도둑질하는 사람, 구걸하는 사람, 재주넘기하는 사람, 악기 연주하는 사람...


부처님 오신날 아침부터 인간은 싸우고 두들겨 패고 피를 보고야 마는 모습을 보니, 

부처님도 참 힘들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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