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시물이 좀 특이해야 많이 보고 좋아하니까요.

미국 작가 데이비드 포스터 왈리스의 대학 졸업식 연설이라 합니다.

그는 마흔 여섯에 스스로 생을 포기했어요 무한한 농담을 초월하려다,

어렵게 살지 말라면서 왜


웹페이지 배경색을 검게 해놓는게 이해가 잘 되지 않아요 어두워서 원.

그래서 복사를 했습니다



좀 길지만


http://laplesia.net/1070

 

2005년 Kenyon 대학교에서 있었던 데이비드 포스터 월러스의 졸업 연설. 데이비드 포스터 월러스는 2008년 9월 12일 46세의 나이에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

 두 마리의 젊은 물고기가 헤엄치며 지나가다가, 반대편에서 오는 노인 물고기 한 마리를 만났습니다. 노인 물고기가 인사합니다. "안녕, 얘들아, 오늘 물은 좀 어떠니?" 그랬더니 젊은 물고기들 중 한 마리가 다른 물고기에게 묻습니다. "도대체 '물'이 뭐야?"

    이쯤 되면, 여러분은 아마도 저라는 '지혜로운 노인 물고기'가 여러분 '젊은 물고기'들에게 '물'이란 무엇인지에 대해 설명을 하려는 것처럼 들릴 수도 있지만, 전혀 그런 것이 아닙니다. 저 또한 그 지혜로운 노인 물고기가 아니거든요. 다만 이 물고기 이야기가 전하는 바는, 어디에나 편재할 뿐 아니라 가장 확실하며 중요한 현실은 가장 알아보기 어렵고도 말로 꺼내기 어려운 것이라는 점입니다. 이 말은 분명 참 뻔하고도 따분한 소리로 들릴 겁니다. 하지만 한 사람이 겪는 매일 매일의 삶에서, 이 따분한 이야기야 말로 삶과 죽음을 가르는 중요성을 지니고 있을 수 있습니다. 아마도 이 말은 그저 과장일 뿐이거나 모호한 넌센스로 들릴지도 모르겠습니다.

    우리가 거의 자동적으로 확신하게 되는 것 중 많은 부분은 사실 완전히 틀린 것이거나 단순한 망상일 뿐입니다. 여기 우리가 보통 너무 자연스럽게 믿고 있지만 사실은 완전한 오류인 예가 하나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나 자신이 우주의 완벽한 중심이고, 모든 존재들 중 내가 가장 확실하고 중요하며 또 가장 생생한 존재라는 깊은 신념 하에, 우리는 우리가 당면한 경험과 행동을 하게 된다고 여긴다는 점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이렇게 선천적이고도 기본적인 자기중심성을 밖으로 거의 드러내지 않는데, 왜냐하면 이러한 모습을 드러내는 것은 사회적으로 아주 혐오스러운 행위이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와 같은 관념은 우리 깊숙이 모두 비슷비슷하게 자리잡고 있습니다. 또한 그것은 우리 인간의 어떤 '기본 설정default-setting'이자 태어날 때부터 사고의 회로 기판 속에 각인 되어있는 속성입니다. 이 점을 한 번 생각해 보세요: 당신이 겪게 되는 모든 경험 중 그 어느 것도 자신이 완전한 중심에 서 있지 않았던 것은 없습니다. 당신이 경험하는 세상은 '당신의' 바로 앞에서, 뒤에서, 또는 '당신의' 왼쪽이나 오른쪽, 아니면 TV나 컴퓨터 모니터 등에서 일어납니다. 타인들의 생각이나 느낌들은 당신과 어떤 방식으로든 교류되어야 하지만, 당신 자신만의 생각이나 느낌들은 즉각적이고도 더 절박할 뿐 아니라 더 실제적이기까지 합니다. 무슨 말인지 아실겁니다. 하지만 여기서 또 제가 여러분들에게 타인지향적이 되어야 한다거나, 연민을 가져야 한다는 등의 '덕목'들을 설교하고 있다고 생각하지는 말길 바랍니다. 제가 하는 말은 어떤 특정한 덕목과는 상관이 없는 이야기입니다. 제가 하는 말은, 우리 안 깊숙이 존재하는 이 자기중심성, 즉 자기 자신이라는 렌즈로 모든 것을 해석하게 만드는 이 '기본 설정'을 어떻게든 대체하거나, 이것으로부터 해방되기 위한 고생을 우리 스스로 선택하는 것에 대한 문제입니다.


    이러한 '기본 설정'을 조절할 수 있는 사람들은 보통 '적응을 잘한다well-adjusted'는 말을 듣게 됩니다. 그리고 이 표현adjust의 원 의미, 조절을 잘한다는 의미를 지칭은 그저 우연히 붙여진 것은 아닙니다.

    여 기 멋지게 학문적 성과를 거둔 여러분들이 있기에 드리는 말씀이기도 하지만, 사실 정말 우리에게 필요한 질문은 우리가 거둔 지식과 지력이 이러한 '기본 설정'을 조절하는 일에 얼마나 사용되는가하는 점입니다. 아마도 대학 교육이 가지는 가장 위험한 점 중 하나는, 적어도 저의 경우에 있어서는요, 내 앞에서 일어나는 현상에 대해 단순히 집중을 하는 대신 그 문제에 대해 과도하게 지적 고민over-intellectualize을 하다가 결국 머릿 속의 추상적 논쟁 안에서 길을 잃게 된다는 것입니다. 내 안에서 일어나는 상황 자체에 집중을 하는 대신에 말입니다. 지금쯤이면 여러분도 이제 제 말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아실 겁니다. 자기 머릿 속에서 계속해서 일어나는 독백에 홀리는 대신, 언제나 깨어있고 명징한 정신stay alert and attentive을 유지하는 것이란 극도로 어려운 일이라는 것을 말입니다. 제가 대학을 졸업한지 20년이 지나서야 점점 깨닫게 되는 바는, "사고하는 법을 배운다learning how to think"라는 이 인문학의 클리셰가 사실은 내가 '무엇을 사고해야 하고 어떻게 사고하여야 하는지' 통제하는 법을 배운다는 의미라는 것입니다. 이 말은 자신이 무엇에 집중해야 하는지, 그리고 자신의 경험으로부터 의미를 어떻게 조직할 것인지에 대해 선택할 수 있을 정도로 의식이 깨어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왜냐하면 성인 시기에 이러한 선택의 연습을 제대로 하지 못하면, 결국 당신은 완전히 삶을 그르치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마음은 뛰어난 종이지만 형편 없는 주인이다the mind being an excellant servant but a terrible master"라는 격언을 생각해 보세요. 다른 모든 격언들처럼 이 격언 또한 다른 격언들과 같이 겉만 봐서는 진부하고 재미없기 그지 없지만, 사실 이 말은 정말 엄청나고도 지독한 진리를 담고 있습니다. 총기로 자살을 시도하는 성인들 중 거의 대부분이 총구를 '머리'에 겨눈다는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닙니다. 사실 이러한 자살들 중 거의 대부분은 방아쇠를 당기기 훨씬 이전부터 죽어있었던 것입니다. 저는 여러분이 막 마친 인문학 교육이 갖는 실제적인 가치가 이 점에 있다고 말씀드리는 바입니다: 하루를 살아내는 동안day in and day out, 여러분의 안락하고 순조로우며 또 존경받을만한 어른으로서의 삶이 이 '무의식의 상태'가 되지 않도록, '죽지 않도록' 지키는 방법을 아는 것에 있다는 것입니다. 유일무이하며 완벽하지만 결국 자기 자신이 만든 왕국 속에서 고독하기만 할 뿐인 이 선천적인 '기본 설정'의 노예가 되지 않도록, 머리의 노예가 되지 않도록 여러분의 삶을 지키는 방법을 알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아마도 이 말이 그저 과장일 뿐이거나 모호한 넌센스로 들릴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니 좀 구체화를 해 봅시다. 여기 확실한 사실은 이제 대학 졸업생이 되는 여러분은 아직 "하루를 살아낸다day in and day out"라는 말의 진정한 의미를 전혀 모르고 있다는 점입니다.이 day in and day out이라는 말을 좀 더 깊게 생각해 보면, 고단한 하루에 '뛰어들어in' 하루 종일 치열하게 사투를 벌이다 겨우겨우 그 날을 마감out한다는, 마치 급류에 뛰어들었다가 살아나오는 것 같은 뉘앙스를 가지고 있습니다 사실 졸업 연설에서 언급되는 이야기들 중, 그 누구도 이야기하지 않지만 삶에서는 엄청나게 큰 부분을 차지하는 것이 있습니다. 그 삶의 부분에는 권태, 반복, 그리고 자잘한 절망들이 포함됩니다. 여기에 계신 학부모님들과 나이가 있으신 분들은 제가 하는 말이 무슨 말인지를 잘 알고 계실 겁니다.

    예를 하나 들어보겠습니다. 이 날은 여느 날과 같은 평범한 날이라고 해 봅시다. 여러분은 아침에 일어나 직장으로 향합니다. 직장에서 9~10시간을 힘들게 일하고는 퇴근 시간이 되었을 때 여러분은 스트레스를 잔뜩 받았을 뿐만 아니라 완전히 지쳤습니다. 이 때 여러분이 원하는 것이라곤 어서 집에 가서 맛있는 저녁 식사를 한 뒤, 한 두 시간 빈둥대다 일찍 잠자리에 드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여러분은 다음날 아침 이른 시간에 일어나 또 이 모든 것을 반복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갑자기 집에 먹을 것이 아무 것도 없다는 사실이 떠오릅니다. 일이 바빠서 이번 주엔 장을 볼 시간이 없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퇴근 후 차를 끌고 마트로 향합니다. 하지만 퇴근 시간이라 차가 엄청 밀리고 있기 때문에, 마트로 향하는 길은 평소보다 훨씬 오래 걸립니다. 힘겹게 마트에 도착하고나니 사람들이 바글댑니다. 왜냐하면 다른 사람들 또한 당신처럼 일을 마친 뒤 시간을 쪼개 장을 보러왔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흉측한 형광등 빛과 영혼을 죽이는 것 같은 싸구려 대중 음악이 가득 차 있는 마트는 피곤에 절어있는 당신이 가장 피하고 싶은 곳입니다. 하지만 그 곳에 들어가 금방 쉽게 나올 수는 없습니다. 당신은 눈을 찌르는 조명이 가득찬 번잡하고 광활한 마트를 헤매 당신이 원하는 물건들을 찾아야 하며, 그렇게 찾아낸 물건이 가득 든 당신의 카트를, 당신과 똑같이 피곤에 절어 급하게 서두르는 다른 사람들을 피해서 몰아야 합니다. 물론 그 사람들 중에는 끔찍하게 동작이 느린 노인들, 또는 마약에 취해 멍한 사람들, 아니면 복도를 막고 있는 주의력결핍장애ADHD를 앓고 있는 아이 등이 화를 참기 위해 이를 꽉 깨물도록 하지만, 그래도 당신은 그 아이에게 지나가게 해달라고 상냥하게 부탁을 해야만 합니다. 그리고 결국, 마침내, 당신이 원하는 모든 저녁거리를 카트에 담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퇴근 시간대임에도 불구하고 계산대를 충분히 열어두지 않았기 때문에 사람들이 말도 안되게 긴 줄을 서 있는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이 모습에 당신은 열이 머리 끝까지 뻗치지만, 또 그렇다고 계산대에서 일하시는 아주머니에게 이런 화를 터뜨릴 수는 없습니다.

    어쨌든 당신은 결국 계산대에 다다르게 되고, 물건 값을 지불합니다. 당신의 카드가 긁히면 기계에서는 "좋은 하루 되세요Have a nice day"라는 녹음된 소리가 나오는데, 그 소리는 정말 완전한 "죽음의 소리" 같습니다. 계산 뒤, 당신은 물건이 잔뜩 든 카트를 복잡하고 덜컹거리는 데다가 쓰레기가 널려있는 주차장으로 가져나갑니다. 그리고 물건들이 집으로 가는 도중 다 튀어나와 제멋대로 굴러다니지 않도록 트렁크에 차곡차곡 쌓습니다. 그리고 다시 느린데다가 무겁기만한 SUV들이 가득 차 있는, 끔찍하게 밀리는 도로를 뚫고 집까지 가야 합니다. 그리고 계속해서 이런 일들의 연속입니다.

    요 점은, 이렇게 사소하고도 힘을 빼는 잡다한 일들에 시달리는 와중이 바로 앞서 말한 '선택의 작업'이 필요한 순간이라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교통 정체와 마트의 혼잡한 통로들, 그리고 길고 긴 계산대 앞의 줄은 나에게 생각을 할 수 있는 충분한 시간을 줄 뿐만 아니라, 그 와중에 만약 내가 무엇에 집중하여야 하는지, 어떤 생각을 할 것인지에 대한 의식적인 결정을 하지 않는다면 나는 매 번 장을 볼 때마다 화를 내고 결국 비참한 느낌에 사로잡히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나의 선천적인 '기본 설정'에 의하면, 이렇게 짜증나는 상황은 모두 '나'에 관한 것이고, '나의 허기'와 '나의 피로', 그리고 집으로 빨리 가고 싶다는 '나의 욕망'에 관한 것이 '확실'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모든 사람들이 다 '내' 앞을 가로막고 있는 것처럼 보이게 되는데, 그렇다면 내 앞을 가로막는 이 사람들은 도대체 누굽니까? 얼마나 그 사람들이 혐오스러운가를 보세요. 계산대 앞에 줄을 서 있는 그 인간들이 얼마나 소처럼 멍청한, 죽은 눈을 하고 있는지를 보세요. 그 인간들이 줄 한 가운데서 휴대전화로 시끄럽게 통화를 하는 건 또 얼마나 짜증나고 매너 없는 짓이며, 이 모든 것들이 얼마나 불공평한지 한 번 보세요: "나는 오늘 하루 정말 힘들게 일한 데다가 배고프고 피곤해 죽겠는데 이 멍청한 인간들 때문에 집에 가지도 쉬지도 못하고 있"지 않습니까.

    아, 물론, 만약 내가 나의 '기본 설정'들을 사회적으로 '좀 더' 중시하는 사람이라면 더 많은 화가 날 수도 있습니다. 막히는 도로에서 저 이기적일 정도로 거대한 SUV들과 허머Hummer들, 그리고 V-12 픽업트럭들이 40갤런이나 되는 기름 탱크의 휘발유를 쓸데 없이 태우는 것에 대해 분통을 터뜨리고 역겨워 할 수도 있으니까요. 또 저 애국주의적이거나 종교적인 문구를 담고 있는 범퍼 스티커들은 언제나 제일 못 생기고 가장 심한 난폭 운전을 하는 사람들의 차에 붙어 있다고 생각하게 되는데, 그런 운전자들은 차가 막히면 겨우 5미터 정도 앞서 나가려고 끼어들기를 해 댑니다. 그것도 늘 휴대 전화로 통화를 하면서요. 게다가 이렇게 미래의 연료를 다 태워버리고 환경을 망쳐버리면 우리 아이들의 아이들은 어떻게 살아나갈 것이며, 그렇다면 우리 모두는 이 얼마나 멍청하고 역겨운 존재들인가, 우리는 참 얼마나 병신같은가…등등…

    봅시다, 만약 내가 그렇게 생각하기로 결정한다면, 그것도 좋아요, 우리 모두가 그렇게 하니까 말입니다. 하지만 이런 방식으로 생각을 하는 것은 너무나 쉽고 자동적이어서 '선택'이어야 할 이유조차 없습니다. 이런 방식으로 생각을 하는 것은 바로 나의 '기본 설정'이니까요. 내가 세상의 중심이며 나의 즉각적인 필요들과 감정들이 세상의 중요도를 결정한다는 무의식적인 믿음을 나 스스로 작동시키고 있을 때, 지루하고 불만스러우며 복잡한 상황을 삶 속에서 맞딱뜨리게 되면 위와 같은 반응을 보이게 되는 것은 당연합니다. 하지만 중요한 점은 이런 상황들을 맞더라도 다른 방식의 생각 방법들이 분명 존재한다는 것입니다. 길이 막혀 차들이 내 앞을 가로막고 공회전을 계속하고 있습니다. 어쩌면 내 앞에 있는 저 많은 SUV들 중 누군가는 과거에 끔찍한 교통 사고를 당한 뒤 트라우마에 시달리다, 커다란 자동차 안에서만 안도감을 느낄 수 있게 되었기 때문에 저 커다란 SUV를 몰게 되었는지도 모릅니다. 내 앞에서 끼어들기를 한 저 허머Hummer의 운전자는 많이 아프거나 다친 자식을 태우고 있기 때문에, 최대한 빨리 병원으로 가려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그렇다면 그는 나보다 더 중차대한 상황에 있기 때문에 저렇게 서둘러도 된다는, 나보다 '더 큰 정당성'을 얻게 됩니다. 이렇게 되면, '저 운전자의 앞을 가로막는 사람'은 내가 되는 것입니다. 또한, 마트의 다른 줄에 서 있던 모든 사람들도 나만큼 지루하고 불만스럽다고, 의도적으로 생각을 해 볼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그들 중 어떤 사람들은 아마도 나보다 훨씬 더 고통스럽고 지루한 하루를 보냈을 수도 있습니다.

    다시 한 번 말씀드립니다, 제가 여러분에게 도덕적인 조언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진 말아주세요. 또는, 여러분이 그런 방식으로 '생각해야만 한다'고 말씀드리는 것도 아니며, 여러분 모두가 그런 생각 방식을 지금 즉시 할 수 있을거라고 생각하지도 않습니다. 왜냐하면 이러한 사고 방법은 굉장히 어려울 뿐만 아니라 여러분의 의지와 정신적 노력을 필요로 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만약 여러분이 저와 비슷하다면, 처음 시도하는 몇 일 동안은 잘 되지도 않을 뿐더러 나중이 되면 지쳐서 시도조차 하고 싶지 않게 될 것입니다. 하지만 여러분이 스스로에게 선택권을 줄 수 있을 정도로 의식이 열려있는 날들엔, 그 뚱뚱한데다가 화장을 떡칠한 채 죽은 눈을 하고 있는 아줌마가 계산대 앞에서 자기 아이한테 시끄럽게 소리를 지르는 모습을 조금 다르게 볼 수도 있을 겁니다. 아마도 그 아줌마는 늘 그렇진 않을 겁니다. 어쩌면 그녀는 방금 전까지 병원에서 사흘 밤낮을 새며 골암bone cancer으로 죽어가는 남편의 손을 잡고 있었다거나, 또는 여러분의 배우자가 차량국(DMV)에서 골머리를 썩히던 문제를 사소한 절차적 호의로 그 문제를 해소해준 직원일지도 모릅니다. 물론, 이러한 가정들에 많은 가능성이 있다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이러한 생각 방식들이 완전히 불가능한 것은 아닙니다. 이건 단순히 당신이 어떤 쪽의 생각 방법을 선택하겠느냐의 문제입니다. 만약 당신이 현실이란 무엇인지에 대해, 또는 무엇이, 그리고 어떤 사람이 정말로 중요한가에 대해 자동적으로 확신하게 된다면 -- 즉, 당신이 자신의 '기본 설정'을 작동시킨다면 -- 당신은, 아마도 제가 늘 그러는 것처럼, 의미가 있고도 마음을 편안하게 만드는 '다른 가능성들'에 대해서는 고려해보지 않게 될 것입니다. 하지만 당신이 어떻게 주의를 기울여야 하고 어떻게 사고를 해야하는지에 대해 배운 적이 정말로 있다면, 다른 선택 가능항들 또한 존재한다는 것을 알게 될 겁니다. 번잡하고 시끄럽고 느려터진 지옥 같은 마트에서의 상황이 주는 경험을 의미있을 뿐만 아니라 성스럽게까지 만드는 방법은 사실 당신의 능력 안에 있으며, 그것은 모든 별들을 밝히는 힘과 같습니다 -- 연민, 사랑, 그리고 본질적으로 모든 것이 하나라는 점입니다. 신비주의적인 것들이 꼭 진실이라는 말은 아닙니다. 대문자 T로 쓰는 진실True진실이라는 단어를 고유명사처럼 씀으로써, 어떤 '유일한', '진짜' 진실을 의미의 가장 중요한 점은 당신이 보려고 하는 세상을 당신 스스로가 '결정한다'는 것입니다. 자신에게 의미가 있는 것과 없는 것을 의식적으로 직접 결정해야 합니다. 자신이 무엇을 숭배할 것인가를 결정해야 합니다…

    왜 냐하면, 여기 진실인 또 다른 한 가지 사실이 있기 때문입니다. 반복되는 평범한 일상 속이라고 할지라도 그 안에 무신론이라는 것은 사실 존재하지 않습니다. 무엇을 믿거나 숭배하지 않는다는 것은 가능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누구든 무엇인가를 믿습니다. 다만 우리가 가진 유일한 선택은 '무엇'을 믿을 것인가를 선택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어떤 신 또는 영적인 것 등,-- 예수 그리스도나 알라, 야훼나 마법 숭배Wiccan mother-goddess, 사성제Four Noble Truths, 또는 어떤 공고한 일련의 윤리적 원칙 등 그 무엇이든 -- 무엇을 믿을 것인가를 선택하는 것이 매우 중요한 이유는, 당신이 숭배하는 것이 그 무엇이든 간에, 그것은 당신을 '산 채로 잡아 먹어버릴 것eat you alive'이기 때문입니다. 당신이 사물이나 돈을 숭배한다면 -- 만약 당신이 이러한 것들로부터 삶의 진정한 의미를 찾는다면 -- 절대 만족할 수 없을 것입니다. 육체나 아름다움 그리고 성적인 매력을 숭배한다면 당신은 언제나 스스로를 추하다고 느낄 것이고, 나이가 스스로를 드러내는 시기에 다다르면 당신은 실제로 숨이 끊어지기 전에 수백만번이나 죽음을 맛 볼 것입니다. 어떤 면에서, 이런 점들은 모든 위대한 이야기들의 유골이라고 할 수 있는 신화, 속담, 클리셰, 경구, 우화들에 이미 기록되어 있습니다. 여기서 제가 알려드리는 요령은, 이러한 진리들을 매일매일의 의식consciousness 맨 앞에 위치시키라는 것입니다. 권력을 숭배한다면 늘 스스로를 위약하게 느끼고 두려움에 시달릴 것이며 다른 이들을 계속해서 두려움에 떨도록 하기 위해 계속해서 더 많은 권력을 원하게 될 것입니다. 지적 능력을 숭배하기 때문에 언제나 똑똑해 보이기를 원하는 당신은 결국 스스로를 멍청하게 느끼게 되고, 사기꾼 같다고 여기게 되며 언제든 자신의 무식이 들통날까봐 걱정하게 될 것입니다. 이런 식입니다.

    사실 이런 여러 종류의 숭배들이 보이는 교활한 측면은 이러한 숭배들이 사악하거나evil 죄를 짓는 일sinful이기 때문이 아닙니다. 그것은 바로 이러한 숭배들이 '무의식적unconscious'이라는 점에서 옵니다. 이들이 바로 '기본 설정'들입니다. 바로 하루 하루가 지날 때마다 당신 의지와는 상관 없이 점점 더 미끄러져 빠져 들게되는 종류의 숭배입니다. 그리고 당신은 스스로의 의지와는 상관 없이 점점 더 당신이 보는 것들, 또 가치들을 측정하는 방법들을 (당신이 믿는 숭배 대상에 의해) 가리게selective 됩니다. 그건 분명 자기 자신이 하고 있는 행위지만, 내가 하고 있다는 사실조차 완전하게 인식할 수 있는 기회조차 없이 그런 변화는 일어납니다. 그리고 세상은 그런 '기본 설정'을 작동시키며 사는 당신을 말리지는 않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세상에서 남자의 세계, 돈의 세계, 권력의 세계가 가지고 있는 힘들은 공포, 경멸, 좌절에 기름을 부을 뿐만 아니라 자아 숭배the worship of self를 갈구하게 만드는 데에 있어 꽤나 잘 협력하기 때문입니다. 현재의 우리의 문화는 엄청난 부나 사소한 위안, 또는 개인적인 자유를 보상하는 방식으로 이러한 힘들을 이용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조그마한 두개골 크기의 왕국 안에서만 주인일 뿐이며, 모든 창조물들의 중심에서 고립을 자처할 뿐인 그 자유를 말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종류의 자유는 누구나 좋아합니다. 하지만 분명 세상에는 다른 모든 종류의 자유들이 있습니다. 그렇지만 남을 짓밟고, '성공'해서, 과시하는 이 잘난 바깥 세상에서는 다 른 종류의 자유, 당신을 가장 소중하게 여길 수 있는 종류의 자유에 대해서는 별로 들을 기회가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정말 중요한 종류의 자유에는 관심, 앎, 규율 그리고 수양이 수반될 뿐 아니라, 진정으로 타인을 돌볼 줄 알는 것, 또 사소하고도 매력적이지 않은unsexy 수 많은 방법들로 끊임 없이 계속해서 그 타인을 위해 희생할 수 있음을 의미합니다. 그것이 진정한 자유입니다. 하지만 그 반대는 무의식이고, '기본 설정'이며, 치열한 경쟁the "rat race"일 뿐입니다. 무한한 대상을 얻기도 하고 잃기도 하며 계속해서 신경을 갉아먹기만 하는 의미없는 경쟁일 뿐입니다.


    물론 저도 이 말들이 별로 재미있거나 신선하지도 않고, 그렇다고 또 어떤 대단한 영감을 주지 못한다는 것을 압니다. 그러나 지금까지 제가 드린 말씀은, 제가 보기엔, 수사적 헛소리를 다 제거한rhetorical bullshit pared away 진 리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분명, 당신은 당신이 원하는대로 생각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부디 이 이야기를 그저 한 낮 TV상담 프로그램의 설교 정도로 생각하진 말기를 바랍니다. 이 이야기 중 그 어느 것도 윤리, 종교, 도그마, 또는 사후 세계에 대한 대단한 질문들과도 상관이 없습니다. 대문자 T로 적는 진리Truth는 죽음 '이전'에 대한 것입니다. 이 진리는 자신의 머리에 총구를 대지 않고도 서른까지, 쉰 까지 살아나가는 것에 대한 것입니다. 이는 단순한 앎에 관한 것입니다. 무엇이 정말로 현실이고 본질인가에 대한 앎이고, 우리 주변의 평범한 풍경 안에 꼭꼭 숨어있는 앎이며, 때문에 우리 스스로 계속해서 자신에게 "이게 물이야, 이게 물이야This is water, this is water"라고 끊임 없이 되뇌어야 하는 것입니다.

    언제나 깨어있고 살아있는 것, 하루 하루를 살아내는 것day in and day out, 그것은 분명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어려운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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