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03.21 13:30
"너하곤 대화가 안돼." 라는 대화.
"너랑은 말이 안통해."라는 말.
"소통이 되지 않는다."는 소통에 관한 부정적 언급.
"의미가 없다."는 말의 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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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한수 끄적여 봅니다.
말이 내게 말을 시킨다
말에 관한 말들은 중복이거나 부정이다
소통에 관해 소통하면서 소통이 안된다고 말한다
말을 하면서 말이 안통한다고 말한다
의미가 없는 말을 하면서 의미가 없다고 말한다
대화에 관한 대화는 대화를 불가능하게 만든다
말에 관한 말은 말머리를 돌리게 만든다
이해가 안되면 오해한다
사용하는 말이 다르므로 오해가 생긴다
대화에 관한 대화는 오해에 깊이를 더한다
"넌 왜 그런식으로 말하니?"
"내가 뭘 어쨌다고?"
말이란 정말 의미를 담는 그릇인가?
말이란 정말 소통을 위한 도구인가?
말에 관한 말은 오해다
말은 배설이다
말은 땀이고 말은 오줌이고 말은 똥이다
보고 들은게 있으면 뱉어내야 한다
아니면 병이 들고 죽음에 이른다
말이 더럽다는 게 아니다
열이 나면 땀을 흘려 열을 배설하듯, 말도 들은 것을 내보내는 배설물이라는 것이다
동물이 말을 하지 못하는 것은 입이 없어서가 아니라 귀가 있어도 말을 듣지 못하기 때문이다
말은 모방이다
말은 따라하는 것이다
세상에 새로운 말은 없다
세상의 모든 말은 돌고 돈다, 말은 멈추지 않는다
돌고 도는 말들이, 이말 저말이 섞이고 꼬이면 새로운 말이 생겨기도 한다
새로 생겨난 말은 죽거나 살아서 돌아다니거나 둘 중의 하나다
대부분의 말은 죽을 운명이다
그러니 이미 말해지고 있는 말들의 생명력은 얼마나 강한 것인가, 그들은 거의 죽지 않는다
말해지지 않는 말은 말인가, 말이 아닌가
말해지지 않는 말을 들을 수 있는가
말해짐이 있다는 것은 들음이 있다는 것이다
말은 반복하는 것이다, 되풀이 하는 것이다
들은 것을 되풀이하고, 본것을 보았다고 들은 것을 되풀이하고, 느낀 것을 느꼈다고 들은 것을 되풀이하고, 말하는 것을 들었다고 말하는 것을 되풀이한다
말은 들음에서 나온다
들음이 없으면 생각이 없고 생각이 없으면 말도 없다
말은 들은 것을 따라서 말하는 것이다, 다른 것은 없다
세상에 없는 것을 말하는 사람들은 얼마나 위대한가
아무도 보지 못한 것을 말할 줄 아는 사람들은 사람이 아니다
말은 너와 나를 있게 한다
너와 나 사이에 말이 없으면 나와 너는 나와 너가 아니다, 아무것도 아니다, 너도 네가 아니고 나도 내가 아니다
말은 너와 나를 붙어 있게 만드는 풀이다
말은 너와 나를 꼭 붙어 있게 하거나, 느슨하게 붙어 있게 하거나, 어쨋거나 붙어 있게 하는 풀이고, 풀은 힘이다
그러니 가장 힘든 관계는 말이 없는 관계다, 말을 하기 힘든 관계다, 갔던 말이 돌아오지 않는 관계다
그런 관계는 관계가 아니다
너와 나 사이에 말이 있는게 아니다
너와 나는 말에 붙어 있는 것이다
말의 양쪽 끝에 너와 내가 매어져 있는 것이다
말이 너와 나를 생겨나게 한 것이다
그러니 말에서 의미를 찾으려는 것은 얼마나 무의미한가
말 자체에는 의미가 없다
말을 하는 상태가 있을 뿐이다
말을 주고 받는 상태가 있을 뿐이다
말을 주고 받는 상황이 있을 뿐이다
좋은 말을 주고 받으면 좋은 관계다
나쁜 말을 주고 받으면 나쁜 관계다
말이 내게 말을 시킨다
나는 말이 내게 시킨 말을 반복한다
사람은 말의 양 끝에 매달려 있으므로 존재하는 존재다
그러니 말을 주고 받던가 말을 닫던가 둘 중 하나의 상태만이 있을 뿐이다
또 무슨 의미가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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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과 글은 사회를 가능하게 만들었지만 대신 상당히 부정확한 미디어 아닌가 싶네요. 그러므로 오해와 다툼과 싸움이 끊이지 않는 것인지도..
말과 글 보다는 눈빛, 냄새, 미세한 몸짓, 떨림, 두근거림 같은게 사실은 더 정확하겠지요.
소리의 뼈- 기형도
김교수님이 새로운 학설을 발표했다.
소리에도 뼈가 있다는 것이었다.
모두 그 말을 웃어넘겼다. 몇몇 학자들은
잠시 즐거운 시간을 제공한 김교수의 유머에 감사했다.
학장의 강력한 경고에도 불구하고
교수님은 일 학기 강의를 개설했다.
호기심 많은 학생들이 장난삼아 신청했다.
한 학기 내내 그는
모든 수업 시간마다 침묵하는
무서운 고집을 보여주었다.
참지 못한 학생들이, 소리의 뼈란 무엇일까
각자 일가견을 피력했다.
이군은 그것이 침묵일 거라고 말했다.
박군은 그것을 숨은 의미라 보았다.
또 누군가는 그것의 개념은 중요하지 않다고 했다.
모든 고정관념에 대한 비판에 접근하기 위하여 채택된
방법론적 비유라는 것이었다.
그의 견해는 너무 난해하여 곧 묵살되었다.
그러나 어쨌든
그 다음 학기부터 우리들의 귀는
모든 소리들을 훨씬 더 잘 듣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