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잡담] 정치꾼과 정치가

2013.03.26 13:42

피로 조회 수:894


● 새누리당과 민주당, 그들이 ‘정당’인 이유

 늦었지만 지난 대선에 대한 얘기부터 해야겠군요. 간단하게 얘기해서 ‘박정희’라는 기호가 아직도 우리 사회를 대표하는 기호로 자리잡고 있다고 정리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분명히 40대까지 문재인의 지지율이 우위였습니다. 하지만 50대 이상에서 지지율의 우위를 보인 박근혜가 과반의 득표율을 보이며 대선에서 승리했지요. 
이 사실이 시사하는 바는 결국 현재 우리 사회의 전반의 가치관념을 지배하고 있는 기호는 박정희라는 기호요, 나아가 그 기호를 지지하는 50대 이상이 사회를 지배하고 있다고 봐도 될 것 같습니다.

 물론 실제 경제활동 인구라고 할 수 있는 20~40대 층에서 문재인이 지지율 우위를 보였다는 점에서, 위의 해석이 지나친 비약이 아니냐는 비판이 가능할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베이비붐 세대가 끝나고, 고령화사회로 이미 접어든 우리나라 사회에서 현재 20~40대가 사회 전반에 얼마만큼의 영향력을 가지고 있는지를 생각해보죠.
특히 20~30대가 88만원 세대라는 단어로 대표되는 취업난과 경제적 어려움에 기를 못펴고 있다는 사실을 생각해보면, 사회 전반의 영향력 자체는 여전히 50대 이상이 쥐고 있다고 봅니다. 
결국 경제적으로도, 사회 전반의 영향력 측면에서도 우리 사회의 주도권은 여전히 50대 이상이 쥐고 있다고 봐요.

 문재인이 이길 수 있었던 가능성은 없었을까요? 아마 많은 분들이 “젊은 층의 투표율이 좀 더 높았더라면...”이라는 생각을 하셨을지는 모르겠습니다. 
아무래도 압도적이라고도 볼 수 있는 50대 이상의 투표율과는 대비적으로 20~40대의 투표율은 그렇게까지 높지만은 않았으니까요. 

하지만, 저는 여기에 이의를 제기하고 싶습니다. 단정적으로 얘기하고 싶습니다. 
문재인이 진 것은 투표율의 문제가 아닙니다. 
좀 더 근본적인 원인을 봐야합니다.

 아까 ‘박정희’라는 기호가 우리 사회를 지배하고 있다는 말을 했습니다. 
새누리당은 ‘박정희의 딸’이라는 이유만으로 ‘박정희’라는 기호 자체를 대변할 수 있는 박근혜라는 인물을 대통령 선거의 후보로 내세웠습니다. 
이는 박근혜라는 사람의 대통령 자질 여부와는 관계없이, 상징적으로 큰 효과를 봤지요. 
하지만 그에 맞선 문재인은 어떠한 기호를 대표하고 있습니까? ‘노무현’?

 분명히 ‘노무현’이라는 기호가 상징하고 있는 여러 가지 긍정적인 측면이 많습니다. 
하지만  민주당과 문재인이 대통령 선거에서 이를 적극적으로 활용했습니까? 결코 아닙니다. 
지난 대선을 돌이켜보면, 민주당과 문재인은 ‘박근혜의 대항마’로서 자신을 어필했습니다. 되려 민주당의 입장에서는 노무현이라는 기호와 엮이고 싶지 않았을겁니다. 
어쨌든 실패한 대통령이라는 세간의 인식 역시 무시하기는 어려웠으니까요. 하지만 그럼으로써 민주당과 문재인은 박근혜의 대항마 이상의, 어떠한 가치를 상징하는 포지션으로 대중들에게 인지되는 것에 실패했습니다.

 사실 민주당이 지금까지 거대야당으로 살아남아 있는 것은 아이러니컬하게도 ‘박정희’라는 기호 덕분입니다. 
본인들이 어떠한 이념을 대표하는 것이 아닌, 그저 ‘박정희’로 대표되는 새누리당에 반대되는 포지션이라는 이유만으로 정당으로서 생명력을 가지고 있을 뿐이죠.
 민주당은 어떠한 가치 - 그것이 자유주의적인 가치던 보수적인 가치던, 혹은 진보적인 가치던간에 - 도 대변하고 있지 못하는, 이상한 정당입니다. 
나아가 결과적으로 보면, 지난 대선까지 새누리당과 민주당 모두 ‘박정희’라는 기호 덕분에 정당구실을 하는 셈이죠.
우리나라의 정치란, 결국 이념이 아닌 ‘박정희’라는 기호에 좌지우지되는 정치입니다.


● 나는 왕이로소이다

 우리나라의 정치가 ‘박정희’라는 기호에 종속된다는 점은 또한 대통령에 대한 인식에서도 잘 드러납니다. 
흔히들 ‘제왕적 대통령’이라고들 하지요. 우리나라의 대통령에 대한 인식이 바로 이 ‘제왕적 대통령’이라는 인식입니다. 
박정희가 그랬다시피, 무엇이든 다 할 수 있고 만인위에서 군림하는 그런 대통령.

 문제는 평범한 시민들뿐만 아니라, 정치인들도 대통령에 대한 인식이 ‘제왕적 대통령’이라는 개념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특히 이명박과 박근혜, 이 두 사람이 대통령이 되어서 보여주고 있는 태도들을 보면 확실히 느낄 수 있는 점인데, 
이 두 사람은 “내가 대통령이 되면 무엇이든 잘 되겠지”라는 낙관적인 사고를 가지고 있음이 행동에서 잘 드러납니다.

 특히 박근혜 대통령이 취임한지 얼마 안 되었기 때문에 이러한 단정은 섣부른 추측이 아니냐,는 반론이 가능할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이미 그러한 싹을 여러차례 보여줬다고 생각합니다. 
우선 하나 생각해봐야할 점은, 박근혜는 2007년 말, 이명박에게 경선에서 진 직후부터 이미 차기 유력 대통령 후보였습니다. 대권주자로서의 삶만 6~7년 가까이 해 온 인물이라는 거죠. 
하지만 그런 사람이 자신의 이름으로 내건 정책조차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모습을 여러차례 보여줬다는 점은 상식적으로 이해가 잘 가지 않는 행동입니다.
또 하나, 대통령으로 취임한 이후의 행보를 곰곰이 생각해 볼 필요가 있을 것 같습니다. 
최근들어 생기는 일련의 인사문제에 있어서, 박근혜의 행보는 원칙적인 말만 되풀이하는 것에 그치고 있습니다. 나아가 자신의 정부조직법이 통과가 안되었다고 발끈하는 모습도 보여줬고요. 

 ‘발끈했다’. 뭐 당대표시절 원희룡에게 농락당하면서 자주 보여줬던 장면이기도 하고, 이미 ‘발끈혜“라는 별명도 붙을 만큼 우리가 잘 아는 그의 모습이기도 하지만, 
대통령이라는 자리에 앉은 사람의 행동치고는 이상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현대 정치에서 하나의 정책을 펴는데에도 만장일치의 합의는 이루어지기가 굉장히 어렵습니다. 
그리고 정치가란, 이를 분석하고 설득하면서, ’협상‘으로써 풀어나가는 사람입니다. 하지만 정치가로써 만인지상의 위치에 앉은 박근혜의 선택은 ’협상‘이 아닌 ’발끈‘입니다.

 박근혜만 그렇다고 얘기하기 어렵습니다. 
사실 현재 정치계에 있는 많은 정치인들이 가진 생각이죠. 권력으로 윽박지르기가 통한다라고 믿는 것 말입니다. 
또한 많은 시민들 역시 정치가 그렇게 윽박질러도 되는 것이라고 믿고 있지요. 
기형적인 형태이지만, 사실 많은 사람들이 의문을 제기하지 않는 부분이기도 합니다. 
이는 ‘박정희’시대의 정치에서 하나도 변하지 않은 것일 뿐더러, 그리고 그 기호가 오늘날까지 전달되어있는 오늘날 우리 정치의 현실입니다.


● 정치가를 원하다

 네*버 백과사전에 정치라는 단어를 치면 이런 결과가 나옵니다.

정치政治 : 나라를 다스리는 일. 국가의 권력을 획득하고 유지하며 행사하는 활동으로, 국민들이 인간다운 삶을 영위하게 하고 상호 간의 이해를 조정하며, 사회 질서를 바로잡는 따위의 역할을 한다.

 가만히 보고 있자면 ‘박정희’라는 기호가 지배하고 있는 우리 정치 현실에서의 정치는 ‘국가의 권력을 획득하고 유지’하는 데에 그 개념이 국한되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어떻게 하면 표를 얻을 수 있는지가 중요한 정치. 그렇기 때문에 ‘박정희’라는 기호 아래 새누리당과 민주당 모두 공생할 수 있는 정치현실이 작동하였던 거죠. 그리고, 우리가 보통 생각하는 ‘정치’라는 활동 역시 ‘국가의 권력을 획득하고 유지’에서 그치고만 있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는 기회라고 생각합니다. ‘박정희’라는 기호의 적통 박근혜가 대통령에 당선된 시점, 
그 시점부터 ‘박정희’라는 기호가 지금까지만큼의 힘을 발휘하기는 힘들어졌다고 생각합니다. 어쨌든 그의 딸을 대통령으로 당선시켰기 때문이죠. 
어쨌든 국가의 정점에 올라선 ‘박정희’의 적통 후계자가 나온 시점에서, 대중이 새로운 무언가를 찾아나가는 움직임이 시작되리라고 봅니다.

 ‘박정희’라는 기호는 그 호불호를 제하더라도, 앞서서 살펴본 것처럼 우리 정치에 있어서 발전의 걸림돌로써 작동하고 있습니다. 
저는 이제, 표를 얻기 위한 정치꾼들이 아닌 ‘국민들이 인간다운 삶을 영위하게 하고 상호 간의 이해를 조정하며, 사회 질서를 바로잡는 따위의 역할’을 하는 정치가들의 등장을 바랍니다.
나아가 특정 인물이라는 기호에 의해서 양당체제가 구축되는 것도 아닌, 특정 인물의 대통령시절의 행적에 의해 대통령과 정치가라는 개념이 형성되는 것이 아닌, 그런 정치가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박정희라는 기호가 어느정도 힘을 잃기 시작하는 앞으로 5년, 그 5년간에 무언가 변화의 바람이 불었으면 좋겠습니다. 그게 안철수든 누구든간에 말이죠.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공지 제 트위터 부계입니다. [3] DJUNA 2023.04.01 25254
공지 [공지] 게시판 관리 원칙. 엔시블 2019.12.31 43807
공지 [공지] 게시판 규칙, FAQ, 기타등등 DJUNA 2013.01.31 352309
126077 뉴욕타임즈와 조선일보 new catgotmy 2024.04.26 38
126076 프레임드 #777 [1] new Lunagazer 2024.04.26 12
126075 "이처럼 사소한 것들"은 우리나라에서 개봉할 가능성이 있을까요? new 산호초2010 2024.04.26 71
126074 한화 이글스는 new daviddain 2024.04.26 50
126073 낚시터에서 들은 요즘 고기가 안잡히는 이유 [2] new ND 2024.04.26 174
126072 토렌트, 넷플릭스, 어중간하거나 명작인 영화들이 더이상 없는 이유 [2] new catgotmy 2024.04.26 156
126071 [왓챠바낭] 전 이런 거 딱 싫어하는데요. '헌터 헌터' 잡담입니다 [5] update 로이배티 2024.04.25 306
126070 에피소드 #86 [4] update Lunagazer 2024.04.25 49
126069 프레임드 #776 [4] update Lunagazer 2024.04.25 47
126068 ‘미친년’ vs ‘개저씨들‘ [1] update soboo 2024.04.25 658
126067 Shohei Ohtani 'Grateful' for Dodgers for Showing Support Amid Ippei Mizuhara Probe daviddain 2024.04.25 43
126066 오아시스 Be Here Now를 듣다가 catgotmy 2024.04.25 83
126065 하이에나같은 인터넷의 익명성을 생각해본다 [2] update 상수 2024.04.25 269
126064 민희진 사태, 창조성의 자본주의적 환산 [13] update Sonny 2024.04.25 1103
126063 3일째 먹고 있는 늦은 아침 daviddain 2024.04.25 121
126062 치어리더 이주은 catgotmy 2024.04.25 192
126061 범죄도시4...망쳐버린 김치찌개(스포일러) 여은성 2024.04.25 315
126060 다코타 패닝 더 위처스, 난 엄청 창의적인 휴머니스트 뱀파이어가 될 거야(...), 악마와의 토크쇼 예고편 [3] 상수 2024.04.25 180
126059 요즘 듣는 걸그룹 노래 둘 상수 2024.04.24 157
126058 범도4 불호 후기 유스포 라인하르트012 2024.04.24 209
XE Log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