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키의 최신작을 읽었습니다. 제목도 묘한 다자키 쓰쿠루와 그가 순례를 떠난 해. 이 책의 위엄이 얼마나 대단한가 하면 프란츠 리스트의 순례의 해가 출간을 앞두고 재발매 될 정도였다고. 하루키는 소설속에 PPL을 녹여낼 줄 아는 작가다.. 그런 생각을 합니다. 맥주라던가 스파게티라던가.. 롯시니의 도둑까치 서곡이라던가.

 

여전히 빠른 속도로 술술 읽히는 책입니다만.. 여러면에서 상실의 시대를 떠올리게 합니다. 상실의 시대를 가볍게 변주한 소품이라고 할까요? 그의 최고 걸작 반열에 넣기는 힘들 것 같구요. 해변의 카프카 정도 위치에 놓으면 어떨까 싶습니다. 15분 정도 길이의 소규모 실내악, 혹은 연주곡을 듣는 느낌으로 책을 덮었습니다.

 

시계 취미가 있다 보니.. 책에 등장하는 시계 묘사에 눈길이 갑니다. 주인공 다자키 쓰쿠루가 아버지에게 물려받은 60년대 초반에 생산된 앤티크 태그호이어에 대한 묘사를 읽다 보니 원문에도 태그 호이어라고 되어 있는지 궁금해졌습니다. 왜냐하면 60년대 후반까지.. 태그 호이어라는 회사는 존재하지 않았거든요. 70년대 쿼츠 파동이후.. 어려워진 호이어사가 피아제에 합병 당하고 이후에 더 아방가르드 그룹에 흡수돼 만들어 진 것이 TAG Heuer 라는 지금의 브랜드입니다. 그러니까.. 다자키 쓰쿠루가 물려받았다면 아마도 Heuer 사의 시계였겠지요.

 

번역하면서.. 국내 독자들을 의식해서 지금의 브랜드인 태그호이어로 번역한 것인지 아니면 원래도 하루키씨가 태그호이어라고 써놨는지는 일본판을 봐야 알겠지만 이런 사소한 것에 눈길이 가서야.. 시계 오타쿠라고 떠드는 꼴이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그래도 좀 거슬리는 건 사실.

 

하루키의 최신작에는 여주인공의 죽음, 격렬한 사정, 텅 비어있는 공허한 내면의 주인공,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시 살아가려는 결연한 의지..같은 것들이 변주되고 있어서 어쩌면 그가 가장 잘나가던 시절을 자기 복제하고 있는 것 처럼 느껴지기도 합니다. 아쉬우면서도 어쩐지 그리운 옛친구를 만난 묘한 느낌이네요.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공지 제 트위터 부계입니다. [3] DJUNA 2023.04.01 27631
공지 [공지] 게시판 관리 원칙. 엔시블 2019.12.31 46177
공지 [공지] 게시판 규칙, FAQ, 기타등등 DJUNA 2013.01.31 356264
126464 [왓챠바낭] B급 취향이 아니라 그냥 B급 호러, '독솔져' 잡담입니다 new 로이배티 2024.06.13 43
126463 요즘 본 영화들에 대한 짧은 잡담... [4] new 조성용 2024.06.13 119
126462 80년대 브랫팩 다큐멘터리가 나오네요 new LadyBird 2024.06.13 60
126461 스타워즈 애콜라이트 1,2 (스포) new heiki 2024.06.13 82
126460 러시아어 안젤리나 다닐로바 [1] new catgotmy 2024.06.13 67
126459 프레임드 #825 [2] new Lunagazer 2024.06.13 33
126458 매드맥스의 세계 [3] new 돌도끼 2024.06.13 144
126457 쓸데없는 질문 ㅡ 조코비치가 잘생겼나요? [6] new daviddain 2024.06.13 111
126456 에스파의 슈퍼노바 뮤직비디오를 보고 new Sonny 2024.06.13 105
126455 넷플릭스의 진정한 가치 catgotmy 2024.06.12 209
126454 일본과 독일에 대해 catgotmy 2024.06.12 122
126453 프레임드 #824 [4] update Lunagazer 2024.06.12 41
126452 Love is an open door 프랑스어, 국경의 남쪽 태양의 서쪽 [1] update catgotmy 2024.06.12 80
126451 Françoise Hardy et Jane Birkin Comment Te Dire Adieu [2] daviddain 2024.06.12 97
126450 아시아 축구선수 시장가치 top 10 daviddain 2024.06.12 186
126449 민희진 이슈는 결국 돈문제(2) feat 초미학적 인간 [8] 분홍돼지 2024.06.12 546
126448 [넷플릭스바낭] '히트맨' 아주 재밌습니다. [13] update 로이배티 2024.06.12 471
126447 에일리언 시리즈가 어느샌가 다시 표기가 에이리언으로 바뀌었네요 [10] eltee 2024.06.11 304
126446 프레임드 #823 [4] Lunagazer 2024.06.11 48
126445 매드맥스 시리즈의 빈민들은 뭘 먹고 사는가?(쓸데없는 잡담 이어서) [4] update ally 2024.06.11 338
XE Log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