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11.18 09:34
안녕하세요.
우울한 마음이 좀처럼 떨어지지 않습니다. 당분간은 이겨내지 못할 것 같아요.
저는 지금 길에서 만난 고양이 3마리와 1년째 동거 중입니다.
회사 부지에는 종종 어미를 잃은 새끼고양이들이 방황하곤 했는데,
우연히 그 중 한마리를 돌보기 시작하면서 저와 회사냥이들과의 인연이 시작되었습니다.
그 한마리를 시작으로 또 다음 한마리, 그 다음 한마리 .. 1개월 터울로 총 세마리를 들이고 말았습니다.
회사에는 그 이후에도 종종 새끼냥이들이 출몰하였다는 소식이 전해졌지만 부러 가까이 하지 않았습니다.
집에 있는 세마리를 책임지는 것이 더 중하다고 생각해서였습니다.
그런데 2주 전쯤, 회사의 건물 사이 길을 걷던 제 등 뒤로 아주 우렁찬 고양이 울음소리가 들리더군요.
휙 돌아보니 에어컨 실외기 틈으로 작은 고양이 한마리가 보일듯 말듯, 그런주제에 엄청나게 큰 소리로 울고있더라구요.
지금까지 보았던 냥이들 중 가장 작은 아이였습니다. 저의 손바닥사이즈정도나 될까 싶은. 고등어 색깔의 아주 예쁘고 너무 작아 외면할 수가 없는...
결국 저는 냥이용 사료를 구입해서 끼니를 챙겨주고, 추위를 피할 수 있도록 실내 한켠에 자리를 마련해 주는 식으로 챙겨주기 시작했습니다.
매일 머리로는 더이상은 안돼 하면서, 자꾸만 신경쓰여 견딜 수 없는 그 작은 고양이를 사실은 입양해서 집에 데려가고 싶었어요.
그 작은 목숨이 감당하기에는 혹독할 겨울이 머지 않았으니까.
그러나 이미 집에 있는 저의 세식구를 생각했고, 이러다가 세상 모든 길냥이들을 다 들일 것이냐 하며 저를 다그쳤습니다.
그렇게 열흘의 시간이 지났고 저의 무심한 주말을 지나고 만난 아이는 눈에 확연할 정도로 축. 늘어져 있었습니다.
무언가 이상하다는 느낌이 강렬하게 들었고, 그 때서야 저는 저의 비정함을 후회했습니다.
그 날 퇴근길 급히 새끼고양이를 보듬어 동물병원을 찾았습니다.
그러나 이미 손쓰기엔 늦었다고, 오늘을 넘기지 못할 것 같다고. 불쌍하지만 전염병을 가지고 있을 수 있으니 절대 집에는 데리고 들어가지 마시라는 선생님의 당부..
이미 빈혈이 너무 심해 탁해진 눈에, 힘이 없어 일어서지조차 못하는 아기고양이를 품에 안고 엉엉 울어버렸어요.
열흘 전 처음 만났을 때 그 우렁찬 울음소리와 겁먹었지만 총기있던 눈. 그 때 데려왔더라면 이렇게 허무하게 보내지 않을 수 있었을텐데.
지금 있는 아이들한테 미안했어도, 그냥 그 때 데려와서 좋은 주인 만날 수 있게 며칠만이라도 잘 돌봐줄껄. 그거정도는 충분히 할 수있는 거였는데...
커다랗고 예쁜 이동장에 매일쓰던 담요를 잘라 넣고 힘없이 저를 보는 아기냥이를 눕혀주었습니다.
제가 할 수 있는거라곤 아기냥이가 숨을 헐떡이면서 그 작고 보드라운 몸과는 어울리지 않는 죽음의 냄새를 풍기면서 생을 마감하는 것을 지켜보는 것 뿐...
어떻게든 일어나보려고 비틀, 하고 섰다가 고꾸라져 숨을 몰아쉬면 담요에는 거뭇한 분비물이 묻어났어요.
제가 눈물 콧물 쏟으며 꺽꺽대며 울어댈 때 간간히 들리던 냥.. 하는 힘없는 소리.
7시간여를 그렇게 버티던 아기냥이는 결국 새벽3시를 넘기지 못하고 떠났습니다.
이제 다시는 그 어떤 것에도 쉽게 동정을 표현하지 않기로 했습니다.
그래도 시간을 돌릴 수 있는 단 한번의 기회가 있다면, 2주전으로 돌아가 처음 만났던 그날 멍청한 고민같은 거 하지말고 내식구로 품을껄.
그런 후회가 여전한 아침입니다.
2014.11.18 09:41
2014.11.18 09:54
2주 전으로 되돌아 가더라도 똑같은 고민을 하게 될 겁니다. 자책하지 마시길.
비슷한 경험을 가지고 있고 그저 불쌍한 녀석들이 제 눈에 띄지 않기를 바랄 뿐입니다. 외면할 냉정함도 그 후에 밀려들 후회를 감당할 자신도 없는게 솔직한 심정이니까요.
2014.11.18 10:12
모든 길고양이를 데려다 보살피실 수는 없는 거니까 자책하지 마세요.. 그 정도 하신 것도 대단하다고 생각합니다. 아기냥이는 좋은 곳으로 갔을 거예요.
2014.11.18 10:32
고생하셨어요. 그래도 그녀석은 자기 마지막 순간에 챙겨주는 이가 있었다는 걸 알고 있었을 꺼에요.
2014.11.18 10:39
2014.11.18 11:20
2014.11.18 11:40
글을 읽는 저도 가슴이 먹먹해집니다.
뒤척 님은 마음이 따뜻하신 분이시네요. 그 고양이도 그래도 마지막에 그 따뜻함을 느낄 수 있었을듯합니다.
2014.11.18 17:09
저라면 어땠을까 생각하니 막막하네요. 세마리나 키우고 계신데, 너무 미안해하지 마세요. 고양이도 원글님을 원망하거나 그러지 않을거에요.
2014.11.18 23:29
에구.. 마음 아프네요. 저도 감사합니다.
새끼고양이도 밤새뒤척님의 따뜻한 마음을 받아 좋은 곳으로 갔을 거예요. 명복을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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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들이 쉽게 하지못하는 일을 하셨군요. 길고양이 박멸하겠다고 사료에 살충제까지 뿌려서 길에다 놔두는 세상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