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04.06 15:38
- 넷플릭스에 예전부터 있었고 13편으로 한 시즌이었던 '바이올렛 에버가든'의 특별편... 이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스포일러는 없구요. 제가 예전에 적었던 본편 소감은 여기에.
http://www.djuna.kr/xe/board/13604926
- 예고편도 하나 올려보구요.
- 전에 언급했던 작품이니 자세한 스토리 설명은 생략하겠지만...
그러니까 흔히들 이야기하는 '힐링물'입니다. 뭔가 19세기~20세기 근처의 독일풍(인데 의수 제작 기술만 괴상할 정도로 뛰어난) 가상 세계에서 '바이올렛 에버가든'이라는 이름의 처녀가 남의 편지를 대필해주는 일을 하고 다니면서 다양한 사람들과 그 사람들의 사연을 접하고. 그러면서 어찌저찌 그들에게 영향을 미쳐서 나름 행복한 방향으로 삶을 변화시켜주게 되는 이야기... 를 에피소드마다 반복하는 거죠. 이 주인공 처자에게는 참으로 일본 아니메스런 거창한 설정이 덕지덕지 붙어 있지만 이 글에선 그 부분은 생략해도 됩니다. 그 이유는 아래에서 설명하구요.
- 일단 이 작품은 시리즈가 아니라 극장판이어서 90분짜리 한 편이에요. 다루는 이야기도 딱 하나구요.
근데 '바이올렛 에버가든 극장판'이 아니라 저런 길고 민망한 제목이 붙어 있는 건 이게 '외전'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티비 시리즈의 특별편이라고나 할까요. 본편의 마지막 회에서 던져졌던 큰 떡밥을 무심한 듯 시크하게 패스하고 그냥 소소한 이야기만 하는데 다만 그게 90분 짜리인 거죠.
여기엔 의외의 큰 장점이 하나 있는데... 그게 뭐냐면 바로 본편의 메인 떡밥이 전혀 등장하지 않아도 된다는 겁니다. 바이올렛 에버가든의 과거, '그 사람'의 생존 여부, 전쟁, 액션, 이런 게 시작부터 끝까지 거의 다뤄지지 않습니다. 그래서 본편에 비해 굉장히 '아무나 편히 볼 수 있는 이야기'가 되었어요. 사실 전 본편의 저 중요 떡밥들이 다 너무나 일본 아니메스러워서 부담스럽고 좀 싫었거든요. ㅋㅋ
심지어 여기에선 바이올렛 에버가든양의 역할도 크게 중요하지 않습니다. 초반엔 아직도 주인공인 척하면서 화면을 장악하고 예쁜 옷 열심히 갈아입어가며 팬서비스를 해주지만 중반부터 비중이 사라져가다가 후반에 가면 화면에 잘 등장하지도 않아요. 클라이막스에도 아예 빠져있구요. 최대한 이 에피소드에만 등장하는 '고객'들의 이야기에 집중하는 형식인데... 전 이런 형식이 마음에 들었습니다. 한 없이 소소한 이야기이지만 그게 이 작품의 주제에도 잘 어울리고 괜찮았어요.
- 그리고 가장 중요한 거...
작화가 본편보다 한 단계 업그레이드 되어 있습니다. ㅠㅜ
전에도 적었듯이 본편도 정말 당황스러울 정도의 고퀄 수제 노가다 사람을 갈아만든 작화를 자랑하는 작품이었는데요. 이게 극장판이다 보니 그보다 좀 더 훌륭해졌네요. 뭐 대자본을 투입한 작품은 아니라 매의 눈으로 노려보다보면 상대적으로 그냥 무난한 퀄인 부분도 있고 그렇습니다만. 평균적으로 본편보다 확연히 더 섬세해졌고 가끔 작정하고 힘을 준 장면들은 뭐... 허허.
사실 전 본편을 작화 하나 때문에 끝까지 다 본 사람이거든요. 극장판이 나온다니 당연히 더 강렬한 눈뽕을 기대했고 충분히 만족했습니다.
- 대충 빠른 마무리를 해보자면.
수제 노가다 2D 애니메이션을 좋아하시고, 고퀄리티의 작화를 즐기고 싶으시면서, 일본 애니메이션의 그림체에 거부감이 없으시다면 꼭 보세요.
주인공에 대한 기본 설정 몇 줄만 찾아 읽으시면 굳이 오덕 정서 작렬하는 본편을 보지 않아도 즐길 수 있는 이야기라는 것도 장점이구요.
스토리는 뭐랄까... 수십년전 어렸을 때 읽던 서양 배경 소녀 문학(?) 중 일화 하나... 라는 느낌의 고풍스러운 이야기에요. 당연히 큰 임팩트는 없지만 그래도 그 고풍스러움 때문에 반갑고 정이 가는 느낌도 있구요, 작정한 신파 스토리에 훌륭한 작화와 음악이 어우러지니 조금은 울림 같은 게 느껴지기도 하고 그랬어요. 아니 뭐 몇 초마다 한 번씩 소장용 일러스트 같은 그림이 작렬을 하니까...
19~20세기 풍의 유럽 사극(을 흉내낸 일본 아니메 스타일의) 비주얼 좋아하시고 옛날 옛적에 읽던 유럽 소녀들 이야기 같은 거 좋아하던 분들이라면 그냥저냥 만족스럽게 보실만한 소품입니다.
다만 뭐 큰 감동이나 깊이 있는 메시지 같은 건 기대하지 마시라는 거. ㅋㅋㅋ 어디까지나 '소품'입니다.
+ 대부분 알고 계시겠지만 이 애니메이션의 제작사가 바로 그 방화 사건으로 큰 피해를 입은 교토 애니메이션인데요. 이 작품을 그림 다 완성해서 넘긴 다음날 방화 사건이 있었다는군요. 그래서 작품 자체는 방화 사건의 데미지를 피해갔지만 이 작품에 참여한 분들 중 상당수는...
++ 본편은 안 봤지만 이건 좀 관심이 간다... 라는 분이라면 이것만 알고 보시면 돼요. 주인공은 전쟁통에 어려서 고아가 됐고 나라에서 거둬가서 감정이 없는 인간 병기(...)로 키워졌지만 자신을 사람으로 대접해준 군인에게 애틋한 맘을 품었고, 그 군인은 지금 생사불명이라는 거. 그리고 그 생사불명 사건에서 두 팔을 잃었지만 놀라운 의수 테크놀로지 덕에 강철 팔을 장착하고 헤매다가, 전쟁이 끝난 후 그 군인의 지인이 운영하는 편지 대필 업체에 취업해서는 '인간다운 감정을 배워보겠다'며 대필 일을 하고 있는데 그 직업을 가리키는 용어가 바로 '자동 수기 인형'이라는 거.
+++ 그런 의미가 전혀 아니긴 하지만 극중에서 두 번 정도 주인공이 '저는 인형이니까요!!'라고 외치는 장면이 나오는데 그 때마다 움찔움찔하는 느낌이 들더군요. 너무 변태스럽지 않습니까 이 용어(...)
++++ 놀랍게도(?) 상당히 여성 중심적인 작품입니다. 시작부터 끝까지 남자는 한 명 정도를 제외하곤 다 병풍 아니면 악당인데, 그나마도 비중이 적어요. 물론 예쁘게 그린 여자 캐릭터들에게 예쁜 드레스를 입히고 구경하는 식의 시선이 내내 존재하긴 합니다만. 그래도 어쨌거나 이야기의 주인공들이 모두 여자이고 남자에게 의지 않고 열심히 살아 보겠다고 애 쓰는 캐릭터들이고 그렇습니다. 뭐 작품 분위기가 분위기이다 보니 특별히 자신들에게 주어진 시대적 한계에서 탈출하려는 시도 같은 건 안 보입니다만. 그래도 일본 애니메이션에서 이런 식의 이야기가 그리 흔하지는 않다보니 꽤 신선한 느낌이었네요.
2020.04.06 19:06
2020.04.07 01:12
아... 아뇨 '꼭' 보실 필요까진 없어요. ㅋㅋㅋ 혹시라도 보고 싶으시다면 정말로 내용에 대한 기대치는 낮추시구요. 작화에 대한 기대치는 좀 높으셔도 됩니다. 하하.
2020.04.06 22:22
2020.04.07 01:14
단, 예뻐야 돼. 무조건 예뻐야 돼. <- 일본 애니메이션의 핵심을 간단히 요약해주신 느낌입니다. ㅋㅋㅋ 맞아요. 이 작품도 어지간한 조연들까지 모두 빠짐 없이, 남녀를 불문하고 예쁘고 날씬함을 필수로 갖추고 패션 센스까지...
취향에 맞으실진 모르겠지만 저 그림이 맘에 드신다면 시간이 아깝진 않으실 거에요. 정말 저 퀄리티 그림이 그대로 움직이거든요.
2020.04.07 06:04
전에 힐링물로 추천하신 건 봤는데 저런 그림체와 감성은 이젠 수용이 어려워졌.. ㅠㅠ 섬세한 작화나 패션, 여성 캐릭터 등이 파이브 스타 스토리를 떠오르게 하네요.
2020.04.07 10:38
저는 그림체는 괜찮은데 사실 감성은 저 역시 좀 버겁긴 합니다. ㅋㅋ
그래도 이 극장판은 본편에 비해 버거운 감성은 별로 없는 편이라 괜찮았어요. 물론 추천드리는 건 아니지만요. 하하.
2020.04.07 09:16
처음 본편 나왔을 때 넷플에서 작화에 낚여서 끝까지 달리며 작화가 진짜 아깝다 이 작화에 이딴 내용을 갖다 붙이냐.... 수준의 흉흉한 스토리(... 였는데요.
쿄애니 방화사건 때 이 작품 관련 얘기가 있더니 그게 이 외전이었군요. 잠깐 플레이 해 봤는데 어이쿠 작화나 채색이 더 업그레이드 됐네요.
이제 쿄애니에서 이 정도 수준의 애니가 나오려면 얼마나 시간이 걸려야 할까요. 그냥 작품 도난 이런거라면 복구한다고 쓰겠는데 그 복구라는 게 사람들을 뜻하게 되다보니 참...... 희생자들에게 다시 애도를, 가해자에게는 다시 저주 1를 더합니다.
2020.04.07 10:41
ㅋㅋㅋ 주로 '주인공의 메인 스토리' 쪽이 흉흉하지 않았나요. 사실 본편도 주인공 얘기 말고 고객들 이야기는 그냥저냥 볼만했던 것 같아요.
정말 아깝고 안타깝죠. 쿄애니가 일단 작화로 유명하기도 하지만 덜 부담스러운 작품들을 종종 내놓아서 여러모로 맘에 드는 회사였는데요.
진짜 그 망할 놈... ㅠㅜ
2020.04.07 12:47
메인스토리는 어떻게 봐도 그냥 로리.... 읍읍. 그 형까지 해서 그냥 구린 호러......
쉬는 날이라 다 보고 왔네요.
전반부는 생각과는 전혀 다르게 오죠사마와 와따쿠시가 날아다니는 '바이오레또님이 보고계셔.' 편이어서 빵 터졌어요. 아아~ 기사님 같아. 라니요 ㅋㅋㅋㅋㅋㅋ 마지막 무도회장에서 정장하고 춤추는 건 뭐랄까. 아니 이건 대과거 소녀들의 마음에 한 분씩 품고 살았다는 오스칼 프랑스와 드 쟈르제님?????? 오스칼과 마리 앙뚜아네뜨가 춤추던 그 무도회 장면이 떠올라서 혼자 계속 낄낄대며 봤네요. 역시나 내용은 1도 없지만 애들 눈알(.... 이 무섭게 크고 반짝반짝 거리는 것부터 은하수, 싱그러운 여름날의 나뭇가지, 날리는 머리카락 이런 것들이 너무 예뻐서 눈이 즐거웠습니다.
2020.04.07 15:47
ㅋㅋㅋ 전반부는 정말 작정하고 만든 바이올렛 팬서비스 영상이죠. 그러다 갑자기 존재감이 사라져서 중반부부터 좀 당황했습니다.
말씀대로 그런 맘에 드는 그림들이 많아서 뭐 단점을 지적할 생각이 안들더라구요. 이렇게 예쁜데 뭘... 하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