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12.05 21:13
- 시즌 1 봤다는 글을 언젠가(?) 올렸었죠. 남은 2, 3시즌을 다 봤네요. 시즌 2는 에피소드 10개, 시즌 3은 8개이고 편당 대략 50~60정 정도 됩니다. 스포일러는 없게 적을게요.
- 시즌 1 이야기는 전에 적은 글 링크로 때우고요. ( http://www.djuna.kr/xe/board/14027594 )
(포스터에 등장하신 노라 더스트님. 역시 캐릭터는 일단 인기 있고 봐야. ㅋㅋㅋ)
- 사실 시즌 1의 결말도 그 자체로 완결이라 해도 별 문제는 없는 마무리였습니다. 남겨진 떡밥 좀 있긴 해도 워낙 현실과 환타지의 경계가 흐릿한 이야기이니 그냥 그러려니... 해도 되고. 뭣보다 주인공들의 드라마와 그것으로 전달하려는 메시지는 완결이나 마찬가지였거든요.
다만 이야기의 발단이자 핵심 아이디어인 '전인류의 2% 증발 사건'은 걍 신비의 영역으로 남겨두고 아예 설명을 포기해버렸으니, 시즌을 이어간다면 아마 그 부분을 파고들지 않을까... 했었는데. 절반 정도만 맞은 예상이었네요. 그 사건의 진상(?)이 다뤄지긴 하는데, 그건 곁다리이고 이야기의 주제는 여전히 같습니다. 갑작스런 상실을 겪은 이들의 슬픔과 그 극복, 그리고 불가해한 현상을 겪었을 때 인류의 반응 시뮬레이션(...)이요. 다만 배경을 옮기고 캐릭터를 더 추가하면서 양념도 좀 더 세게 넣은, 시즌 1의 심화 버전으로 가는 거죠.
(시즌 3 포스터에선 사이즈도 더 커지신 노라 더스트님!!)
- 일단 앞서 말했듯이 시즌 1은 그 자체로 충분히 완결성이 있었습니다. 미스테리 좀 남았다고 해서 시즌 3 끝까지 다 보고 나면 그 미스테리들의 속시원히 풀리는 것도 아니구요. 배경 & 캐릭터 추가로 원래의 주제를 좀 더 폭 넓게 탐구한 점은 인정 해줘야겠지만 그래도 살짝 사족 느낌이 드는 건 어쩔 수 없는 것인데요.
그런 문제를 가뿐히 넘어서게 해 주는 포인트가 뭐냐면... 뭐 별 거 없습니다. 그냥 더 재밌어요. ㅋㅋ
일단 첫 시즌에서 인기도 많았고 파고들 여지도 많았던 캐릭터인 노라 더스트(캐리 쿤!)를 거의 주인공급으로 격상시켜주면서 뽑아낸 이야기들이 상당히 괜찮아요. 가장 절실하고 가장 공감 가는 사연을 가졌으면서 동시에 가장 매력적인 캐릭터이기도 하구요.
또 떡밥들이 훨씬 강력해졌습니다. 시즌 1은 어떻게 해봤자 결국 이미 지나간 일에 대한 이야기였던 데 반해 시즌 2와 3은 현재 진행중인, 그리고 앞으로 일어날 일에 대한 이야기구요. 시즌 1은 그냥 이미 다 끝나 버린 상황에서 어떻게든 다시 일어나 제 한 몸 건사해 보려는 사람들의 이야기였다면 2와 3은 여전히 제 한 몸 건사에 몸부림치면서도 세상을 구하고 신비를 파헤쳐보려는 사람들의 이야기구요.
또한 그 모든 일의 끝에 사람들이 원할 법한 충분한 보상이 주어지기 때문에 마무리도 깔끔하죠. 사람들이 시즌 1보다 뒷 시즌을 더 좋아하는 것도 이해가 갑니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니 이 양반 수염 기른 게 엄청난 힌트였네요. 허헐. ㅋㅋㅋㅋㅋ)
- 다만 뭐랄까... 좀 애매한 부분은 있습니다.
다 보고 나서 가만히 생각해 보면 이 이야기에서 살포된 떡밥들이 죄다 모호하게 끝나요. 설명이 안 되는 떡밥은 거의 없는 편인데, 그 설명들이 모두 다 '기적이거나 사기거나'라는 식으로 양다리를 걸칩니다. 주인공의 그 능력(?)은 진짜였을까요. 3시즌에서 주인공들이 막으려고 애썼던 그 파국은 정말 예정되어 있긴 했던 것일까요. 목사님이 배에서 만났던 그 양반의 정체는 무엇이었을까요. 결말에서 주어지는 해답은 죄다 '그럴 수도 있고 아닐 수도'입니다. ㅋㅋㅋ
물론 핑계는 있습니다. 마지막 회를 기일게 장식하는 두 캐릭터의 대화 장면을 보면 그 모든 게 작가의 의도였다는 게 분명하거든요. 그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하지만 중요한 건 그게 아니라 그런 일들 속에서 사람이 어떻게 살아가고 어떻게 이겨내야 하는 것인가이다... 뭐 이런 얘긴데요.
솔직히 그걸 핑계로 감당하지도 못할 떡밥을 마구 살포하며 시청자들을 낚아댔다는 건 사실이라는 생각이 들더라구요. '어차피 책임 안 지기로 한 거 어디 한 번 거하게 낚아 볼까!?' 뭐 이런 느낌?
(이 캐릭터는 특히 계속해서 혼란만 발사해대다가는 그만...)
캐릭터들의 비중이나 묘사에 대한 부분도 아쉬운 게 좀 있습니다.
아무리 노라 더스트가 매력적이고 좋은 캐릭터였다고 하더라도, 이게 보면 결국엔 주인공 케빈 아저씨의 이야기거든요.
노라는 시작부터 너무 명백한 캐릭터에요. 가족들이 한 방에 증발해버렸고, 하필 그 때 본인이 그 모두에게 성질을 부리고 있었고. 어쨌거나 본인의 잘못이나 책임은 조금도 없죠. 감정 이입하기 좋은 건 분명하지만 세 시즌을 채울만한 드라마틱함이 있냐고 하면 그건 좀... 이구요.
반면에 케빈은 나름 입체적이고 흥미로운 캐릭터입니다. 노라와는 달리 그 날의 휴거 사태에 대한 데미지가 전혀 없었(다고 생각했)는데도 가족은 박살이 나버렸고. 그것 때문에 억울함과 좌절에 사로잡혀 살다가 이런저런 일들을 겪으며 성장하고, 자신의 가족에게 들이닥친 비극을 이해하고, 뭣보다도 그 과정에서 본인의 과오를 깨닫고 성숙해져가는... 뭐 그런 인물인데요. 아무리 봐도 그게 충분히 잘 표현된 것 같지 않습니다. 극중에서 벌어지는 신비로운 떡밥들을 죄다 한 몸에 짊어지고 가는 캐릭터이다 보니 계속 괴상하고 신비로운 일들 겪고 버텨내느라 바빠서 정작 인물의 내면을 드러낼 틈이 없었던 것 같기도 하구요.
뭐 이 정도면 배우도 잘 했고 캐릭터도 (본인의 상당한 뻘짓에도 불구하고) 나쁘지 않긴 했는데. 이보다 훨씬 더 존재감이 크고 더 잘 이해할 수 있는 캐릭터가 되었어야 마지막 장면에서도 밸런스가 맞지 않았을까... 뭐 그런 생각이 들었네요.
(하지만 그래도 노라 더스트가 짱입니다. 주인공따위 필요 없...)
- 근데 뭐 어쨌거나. 재밌게 잘 봤습니다. ㅋㅋ
앞서 말했듯 뒷수습 측면에서 아쉬움은 있지만 정말 사람 벙찌게 만드는 떡밥들을 그렇게 줄기차게 던져대니 낚인 걸 알면서도 계속 볼 수밖에 없었구요. (역시 명불허전 '로스트' 제작진이란 생각이 들더군요.)
또 노라처럼 매력적인 캐릭터를 캐리 쿤님께서 너무 적절하게 살려주셔서 그냥 이 캐릭터의 끝을 보겠다는 강력한 일념이 생겨서 멈출 수가 없었네요. 이 드라마로 배우가 전국구 스타로 부상했다는데 충분히 그럴만 했어요.
세 시즌 28개 에피소드라는 분량도 적절했구요. 나름 인상적인 장면들도 많고 음악도 잘 쓰고, 재밌는 드라마였어요.
그리고 어쨌거나 그렇게 훼이크 떡밥을 던져대는 와중에도 주인공들의 드라마는 늘 진중하고 믿음직하게 잘 살려낸 것도 큰 장점이었구요.
잘 봤습니다.
+ 연출이 미미 레더였더라구요? '딥 임팩트' 이후로 이 양반 작품은 처음 보는 것 같은데... 따져보니 23년전이군요. ㅋㅋ 뭐 드라마는 2014년부터 시작했으니 16년인 걸로(...)
++ 한국인들이 아주 잠깐 나옵니다. 버스 대절해서 기적의 성지를 찾아오는 개신교 신자들 무리인데 입고 있는 단체복에 한글로 선명하게 '비콘 한국 침례교회'라고...
+++ 시즌 3은 좀 코믹한 요소들이 많더라구요. 덕택에 두 시즌 내내 갑갑하던 심정에 숨통이 트여 좋았습니다. 특히 주인공 아빠가 호주에서 겪는 고행을 보여주는 부분은 정말 이 드라마 보면서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키득거리며 즐겁게 본 부분이었네요.
(사실 진짜로 숨통이 트일 때는 이 분이 나올 때마다였습니다. 어찌나 빈틈 없이 아름다우신지... 엄마 리즈 시절과 비교해도 뭐.)
++++ 흑인 캐릭터들 다루는 태도가 좀 재밌었습니다. 시즌 1에선 걍 착한 애, 나쁜 애 하나씩만 넣어줬는데 둘 다 출연 분량은 적구요. 시즌 2에선 아예 흑인 가족으로 시작은 하는데... 나중에 그 분들이 어떻게 되는가를 생각하면 좀 굴욕적이지 않나 싶었을 정도. 지난 몇 년간에도 세상이 참 빡세게 변했구나 싶었습니다. 동양인이야 뭐, 그냥 말을 않겠습니다. 얘기할 건덕지도 없거든요. ㅋㅋ
(요렇게 시작하길래 시즌 2부턴 뭔가 확 달라질 거라 생각했었지만... ㅋㅋ)
+++++ 아니 근데 정말 무슨 HBO에는 고추(...) 쿼터제라도 있는 겁니까. 굳이? 라는 생각이 드는 상황에서도 자꾸만 튀어나오네요. ㅋㅋ 여성 캐릭터 노출도 거의 그 직전까지를 예사롭게 보여주긴 합니다만. 그래도 남자의 경우엔 대놓고 보여주니 임팩트가 다르네요. 전 굳이 보고 싶지 않은 편인데요. ㅋㅋㅋㅋ
2021.12.05 22:42
2021.12.05 23:02
아니 이 분 왜 그런 의심을... ㅠㅜ
이게 보다보니 이제 슬쩍슬쩍 나오는 건 적응이 됐는데, 막판에 정말로 말 그대로 덜렁덜렁(...)하면서 달리는 남자 모습을 정면에서 한참을 보여주니 이쯤되면 이런 장면이 나와야 하는 무슨 사정이 있는 게 아닌가 의심이 되더라구요. ㅋㅋㅋㅋ 극중 맥락으로도 누드였어야할 이유가 없어 보였는데 그러니 뭐;
2021.12.06 00:04
아 역시 빠르시다는 ㅎㄷㄷ 그래도 떡밥의 제왕이라는 평가가 아직도 붙어다니는 쌍제이랑 다르게 꾸준히 TV에서 활동해온 데이먼 린덜로프는 이거 포함해서 최근작들은 그래도 어느정도 납득할 수준으로 회수해주고 왓치맨처럼 깔끔하게 마무리하고 대호평 받는 작품까지 나오니 발전하는 떡밥의 제왕 같습니다 ㅋㅋ
뭔가 좀 황당하고 썰렁하게 아 그게 그냥 그거였어? 수준으로 끝나기도 하지만 케빈이 그 다른 세계로 확 가버리는 상황이 될 때는 참 재밌고 흥미로운 상황이 많이 벌어져서 보는 맛이 있었어요. 2% 실종떡밥도 그럭저럭 수긍은 됐구요. 뭐 다 때려치고 마지막 에피 마지막 장면에서 안겨주는 감흥이 너무 커서 다 좋게 받아들이게 되더군요. 역시 뭐든지 끝을 잘 맺어야...
본지 꽤 된 작품이라 가물가물 한데 시즌 3가 결국 진실을 말하는 것인가 거짓말인가 그런 테마로 압축할 수 있었던 내용으로 기억하네요. 저는 진실로 믿고 싶어지는 ㅎㅎ
시즌 3에서 몇몇 조연들은 거의 카메오급으로 나오거나 목소리만 나와서 좀 황당했었던 기억도 나네요.
2021.12.06 00:11
맞아요. 끝이 좋으면 다 좋은 거죠. ㅋㅋㅋ 마지막 에피소드는 진짜... 다른 캐릭터들 다 쩌리 만들면서 핵심 둘에게만 에피소드 하나를 통째로 안겨주는 과격한 구성이었음에도 불만이 전혀 안 생겼네요. 그게 제가 바라는 결말이었기 때문이었기도 하고, 또 어쨌거나 그 마무리가 너무 맘에 들어서 저도 만족했습니다. 그 모든 소동과 고생의 끝에서... ㅠㅜ 시청자가 바라는 걸 정확히 꿰뚫고 있는 작가 같아요.
제게 시즌 3의 궁극적 메시지는 '살기 위해 믿는 것'에 대한 이야기 같았어요. 무엇 하나 말이 되는 것이 없고 확실한 게 없는 상황에서도 끝까지 선한 마음을 지키면서 '서로'를 믿고 의지하는... 뭐 그런 뻔한 얘기지만 워낙 낭만적(...)으로 잘 연출되어서 괜찮았네요.
시즌 3은 너무 핵심 멤버 몇몇만 데리고 쭉 달려 버렸죠. 첫 에피소드인가만 넘기고 나면 정말 핵심 멤버들 빼곤 다 증발... 진짜 마지막 화 마지막 장면 아니었음 화났을지도 몰라요. ㅋㅋㅋ
왜 로이배티님은 고추나오는 HBO 드라마만 골라서 보는가 의심을 하고 있었는데 그냥 우연이었군요. 후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