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기억하고 계신 분이 있을까 모르겠어요. 며칠 전에 단골 카페를 찬양하는 글을 끄적였는데

그 곳의 무엇보다도 좋은 점은 예쁜 알바생이 있다. 웃는 모습이 궁금해서 연락처를 물어보고 싶은 마음이 울컥울컥 샘솟는다...라고 썼었지요.

자세한 내용은 뒤에 구구절절 이어지겠지만 결론부터 말하면 연락처를 받는데 성공했습니다. 이 모든 게 일기예보 덕분이지요. :)




2. 

저는 본질적으로 '유희적 인간'이라고 자평합니다. ...는 뻥이에요. 사실은 자기소개서를 쓰면서 자신을 그럴싸하게 포장할 만한 단어를 찾은 것 뿐이지만.

아무리 더럽고 치졸하고 불합리하고 따분한 상황일지라도 그 속에서 나름대로 재미있는 포인트를 찾아내어 몰입하는 능력 비슷한 게 있거든요.

카페인과 타우린, 니코틴으로 움직이는 1염통 엔진은 흥미 본위로 쉼없이 굴러갔지요.


그런데 요 며칠동안은 무기력감 때문에 아무 것도 하고 싶지 않았고, 뭘 해도 즐겁지 않더라고요.

문제가 뭘까 곰곰이 생각하다가, 드디어 과부하가 걸린 것 같다는 결론에 도달했습니다. 

논문을 쓰고, 졸업을 하고, 스펙을 맞추고, 취업준비를 하고... 1년 동안 말도 안되는 하이 텐션으로 살았는데, 그것 자체는 나름 재미있고 나쁘지 않았어요. 누구나 다 하는 일이기도 하고요...

다만 당면한 상황에 오롯이 몰입할 수 없게 만드는, 예상치 못한 변수들이 너무 많다보니 하루하루가 급정거-급가속의 나날이라 맛이 가버린 거죠.




3.

그래서 2~3일 정도 짧게 여행을 다녀오기로 결심했어요. 룰루랄라 신이 나서 행선지를 정하고, 이런저런 제반 사항들을 조사하는데 하필 목요일까지 비가 온다더라고요.

어디로든 여행을 떠나면 하루에 15km 이상은 걷는 타입이라 그정도의 날씨면 여행 자체를 미루거나 포기할 수밖에 없거든요. 하... 잠깐 상승세였던 기분이 다시 바닥을 치니까 처음 상태보다 더 우울해졌어요.

그 왜, 배가 너무 아파서 종종걸음으로 돌아다니다가 화장실을 발견했을 때의 그 기쁨과, 도착하고 나서야 화장실 문이 잠겼다는 걸 깨달았을 때 느끼는 좌절감과 비애감 같은 거요...


이것이 어제의 이야기입니다.




4.

결국 깔끔하게 GG치고, 아름다운 알바생 양을 보며 소소한 위안이라도 얻을까해서 평소처럼 아침 일찍 카페에 갔어요. 

귀에 이어폰을 꽂고서, 이 나라가 허락한 유일한 마약인 음악에 몸을 맡긴 채 한껏 멍때리면서 커피를 마시는데 때마침 흐르는 노래 가사의 한 구절이 귀에 딱 귀에 들어오더라고요.


'그대와 함께라면 어디든 천국, 그대와 함께라면 세상도 천국.' 


처음 듣는 노래라서 제목은 모르겠지만, 가사가 대충 그랬어요. 듣고 나서 아, 저 사람이 나한테 웃어주면 혼자 여행같은 거 안 가도 될텐데. 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물론 너덜너덜해진 멘탈도 한 몫 거들었지요.

면전에서 퇴짜를 맞더라도, 그래서 뻘쭘해서 이 카페에 더는 못 오게 되더라도 지금의 상태보다 더 나빠질 것 같지가 않았어요. 이미 최악이었으니까요.

당장 뭐라도 하지 않으면 견딜 수 없을 것 같았어요.


그래서 머그잔을 들고 카운터에 가서 호기롭게 저질러버렸습니다.




"저기요. 여기 커피 좀 리필해주시고, 혹시 연락처 좀 알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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