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04.26 14:05
- 2022년작입니다. 따끈따끈! 런닝타임은 두 시간에서 3분 빠지구요. 장르는 호러/스릴러. 결말 스포일러는 없을 겁니다.
- 주인공 노아는 부모도 없고 형제도 없고 절친 몰리 하나만 믿고 사는 외로운 청춘입니다. 연애도 하고 싶은데 '디즈니 영화만 보며 자란 탓'에 사람과 관계 맺는 게 서툴기도 하고, 또 그래서 한다는 짓이 데이트앱으로 반짝 만남이나 반복하는 거라 영 가망이 없어요. 도입부에서도 각본가님께서 완벽하게 차려 내놓은 똥차를 만나서 시간과 돈, 기분까지 버리고 자괴감에 빠지죠.
그러다 장보러 간 마트의 채소 코너에서 윈터솔저 비주얼에 캡틴 아메리카의 이름을 가진 남자를 만나 얼떨결에 전화 번호를 교환하고 데이트까지 하게 되는데... 그동안 늘 머뭇거렸던 자신을 반성하며 'Fuck it!' 하고 용감하게 뛰어들기로 결심한 덕에 참 잘 풀려요. 거기에 삘 받아서 만난지 며칠도 되지 않았는데 외딴 곳으로 단 둘이 여행가자는 남자의 제안까지 'Fuck it!!' 하고 받아들여 버리고. 쏟아지는 위험 표지들을 과감하게 물리치며 굳이 힘차게 지옥문을 열어 제낍니다. 애도를...
- 포스터 이미지와 영화 제목만 봐도, 그리고 디즈니 서비스에서 보여주는 시놉시스만 봐도 새 남자 친구의 정체는 뻔히 알 수 있으니 스포일러가 아닌 셈 치겠습니다. 식인을 취미이자 업으로 하는 양반입니다. 그리고 대부분의 육류 제공 동물들이 그러하듯 젊은 여성이 가장 맛이 좋은 관계로 젊은 여자들을 전문으로 콜렉팅하는 놈이구요.
그래서 여기에서 경고 아닌 경고를 한 마디 드리자면. 초반의 살짝 코믹한 분위기에 맘 놓고 영활 보다가 당황하실 수 있습니다. 생각보다 훨씬 고어가 강해요. 그리고 그런 고어 장면들은 웃음기 한 점 없이 정색하고 진지하게 불쾌감을 유발합니다. 좀 센 소재를 다루는 코믹 호러물 같은 걸 기대하고 보시면 후회하실 수 있다는 거.
- 그런 고어 표현들엔 그나마 다행으로 나름 의미가 있고 메시지가 있습니다. 주인공의 상황 자체가 노골적이잖아요. 여성을 착취하는 남성들과 그들이 만들어 놓은 시스템에 대한 풍자와 비판이죠. 그리고 감독님은 거기에 매우 진심이시기 때문에 이 영화 속에서 여성들에게 가해지는 폭력은 다 궁서체로 진지하게 나와요. 다행히도 필요 이상의 직접적인 폭력 묘사는 피해갑니다만, 그래도 우리 스티브 윈터솔저님께서 식재료를 다듬고 준비하는 모습 같은 게 꽤 디테일하게 자주 나오기 때문에 부담스러움은 어쩔 수 없다는 거.
그리하여 결국 이 영화도 요즘 트렌드에 따르는 여성주의 호러 영화가 됩니다. 여성 작가가 쓴 이야기를 여성 감독이 만들었고. 시작부터 끝까지 남자는 악당 아님 찌질이 밖에 안 나오는 이야기니까 이런 거 싫으신 분들은 피하시구요.
- 암튼 영화는 그런 여성주의적 메시지를 보여주기 위해 다방면으로 노력합니다. 보면 분명히 성실한 각본이에요. 단순하게 '남자가 여자를 가둬놓고 고기를 뜯어 먹는다!'로 끝나는 게 아니라 각각 캐릭터들이 다 포지션 하나씩 잡고서 다양한 상황들을 만들어가며 남성에 의한 여성 착취를 비롯한 여성들 삶의 위험을 다채롭게 보여주려고 최선을 다합니다. 덕택에 호러 영화치곤 살짝 긴 편인 두 시간에 가까운 런닝타임이 여백 없이 가득 채워진 느낌이 들구요.
위에서 '이거 코믹 호러 아님!'이라고 못 박는 얘길 했지만 유머가 적지 않습니다. 다만 본격적으로 장르가 코미디는 아니라는 거죠. 나름 적재적소에 유머를 살짝 넣어서 지루함이나 갑갑함을 덜어주는 센스는 있어요. 특히 끝장면을 장식하는 문자 메시지 도착 장면은 꽤 웃겼네요. 거기에서 그 인간에게서 그런 문자라니. ㅋㅋㅋㅋ
- 배우 연기 측면에서 이야기 하자면, 주인공을 맡은 데이지 에드가-존스보다 오히려 빌런 역의 세바스찬 스탠의 캐릭터가 눈에 들어오는 영화입니다. 사이코패스 연쇄 살인마이자 참 듣기 싫은 장광설을 장착한, 게다가 자뻑 기질까지 넘치는 짜증나기 그지 없는 빌런이지만 영화의 메시지상 갸는 그런 성격인 게 맞구요. 가끔 좀 오버한다 싶은 감이 아예 없진 않지만 그래도 적절하게 잘 표현해줍니다. 제가 이 양반 연기를 본 게 단순하기 그지 없는 윈터솔저 연기 하나 뿐이어서 그런지 더 좋게 봤어요.
그리고 주인공 역의 데이지 에드가-존스님은 뭐... 일단 예쁘십니다. (하하;) 타의적 솔로로 오랜 세월 외롭게 지낸 사람이라고 믿어 주기엔 개연성이 심히 떨어지는 외모이긴 합니다만. 그래도 순둥순둥한 인상 덕에 고난에 빠져 몸부림 칠 때 충분히 감정 이입도 되구요. 또 연기도 괜찮았어요. 낯선 남자에게 대책 없이 빠져들고 땅을 치는 관계에 서툰 사람의 모습도, 막판에 살아 남으려고 발버둥치는 악에 받친 모습도 다 잘 표현했다... 는 느낌입니다만. 그냥 예뻐서 그래 보였을 수도 있어요. 네, 솔직하게 전 얼빠입니다(...) 그게 뭐가 나빠요!!!!
- 마무리 전에 살짝 아쉬웠던 부분을 말하고 넘어가자면. 영화가 살짝 깁니다. 대략 10여분 정도 줄였으면 훨씬 재밌었을 것 같았어요.
딱히 어떤 장면이 잉여여서 빼는 게 낫겠다... 싶은 건 없는데요. 중후반에 벌어지는 일들이 대체로 조금씩 길단 느낌이 들더라구요. 뭐 제가 맨날 호러만 보는 주제에 작정하고 불쾌감 유발하는 장면들에 쉽게 피로감을 느끼는 성격이라 그렇게 느꼈을 수도 있겠습니다만. ㅋㅋ 그래도 이게 두 시간을 거의 꽉 채울만한 이야기는 아니었던 것 같은 느낌적인 느낌이 있었구요.
클라이막스에도 좀 아쉬움이 남습니다. 뭐랄까... 일단 그동안 쌓인 울분을 그렇게 화끈하게, 충분히 풀어주고도 남는 그런 결전과 그런 엔딩은 좀 아니었구요. 개인적으론 주인공들이 빌런과 맞서 싸우는 와중에 결정적인 승기를 잡고도 확인 사살을 안 하고 우왕~ 하고 도망쳐 버리는 클리셰를 많이 싫어해서요. 특히나 주인공들이 그 놈에게 당한 일들을 생각하면 더더욱 이해가 안가서 말이죠. 그 자리에서 바로 오븐 통구이를 해버려도 전혀 놀랍지 않을 상황인데 말입니다. ㅋㅋㅋ
- 그래서 결론은요.
참으로 공익적인 메시지를 담은 여성주의 호러 영화가 되겠습니다. 특별히 참신한 메시지나 표현 같은 건 없지만 그래도 호러판에서 흔한 컨셉을 가져다가 상당히 자연스럽게 메시지와 결합시켰다는 면에선 호평을 해줄만 하겠구요.
식인이라는 센 소재를 상당히 노골적인 비주얼과 사운드(...)로 보여주는 영화이니만큼 이런 쪽으로 내성이 없으신 분들은 그냥 손을 대지 마셔야겠죠. 하지만 그게 극복 가능하시고, 또 호러를 좋아하는 분이라면야... 디즈니 플러스 수록 작품들 성향상 속는 셈치고라도 한 번 보시는 게 좋지 않을까 싶습니다. 아예 '호러' 카테고리가 존재하지 않는 서비스 아니겠습니까. 이런 류의 영화 많지 않아요. ㅋㅋㅋ
+ 한 가지 이 영화의 매우 특이한 부분을 언급 안 했군요. 매우 특이한 것 맞으면서 동시에 참 사소한 부분인데요. 오프닝 크레딧이 런닝타임 30분 경과 시점에서야 뜹니다. ㅋㅋ 이유는 잘 모르겠지만 도입부가 좀 길다 보니 관객들이 지루해할까봐 그런 게 아닌가 싶기도 하구요. 그게 딱 스티브가 본색을 드러내는 순간에 뜨거든요. '응, 이제부터 시작이얌' 이라는 메시지를 보내서 관객들의 집중력을 되돌리는 효과 같은 걸 노린 것 같았어요.
++ 근데 그 도입부를 보면서 이 감독님은 그냥 연애물을 만들어도 잘 만들겠다... 라는 생각을 많이 했습니다. 갓 만나서 서로 끌리면서도 어색함을 쉽게 떨치지 못하는 두 사람의 모습을 되게 자연스럽게 잘 보여주더라구요. 미묘하게 서로 엇나가는 드립들이라든가, 뻘소리 한 번 할 때마다 보이는 표정이나 몸짓들 같은 게 상당히 디테일하고 실감나서 그냥 얘들 이대로 사랑하면 안 되나...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ㅋㅋ
+++ 중요한 장면에서 라디오헤드의 '엑시트 뮤직'을 편곡한 음악이 한참 흘러 나와요. 애초에 영화용으로 만든 곡이라지만 그 영화 말고 다른 영화들에 이렇게 소환되어 쓰이는 걸 보니 좀 재밌더라구요. 근래에 제가 본 것 중엔 '웨스트월드'의 시즌 마무리 장면에도 장중하게 흘러나왔었죠.
++++ 역시 또 한국계 배우가 나름 비중 있는 역으로 나옵니다. '김씨네 편의점'에 나왔다는 안드레아 방씨인데, 전 그 드라마를 안 봐서 더 할 말은 없구요. 그냥 신기합니다. 한국계 배우들 왜 이렇게 많이 나오죠. 인구 다 해봐야 얼마나 된다고. 미국의 아시안들을 좀 과대표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까지 들고 그럽니다. ㅋㅋㅋ
2022.04.26 14:06
2022.04.26 14:14
저는 왜 PC에서도 폰에서도 잘 보일까요... orz
2022.04.26 14:21
폰에서도 확인해 보니 안 보여요. 세 번째 증인이 필요함.
2022.04.26 14:28
영문을 모르겠지만 글을 통째로 다시 쓸 의욕이 없어서... 포기합니다. ㅋㅋㅋ
아니 진짜 이유가 짐작도 안 가네요. 왜 제 컴퓨터랑 폰에선 나오는 걸까요. 허허...;
2022.04.26 16:57
저도 안 보입니다. 데스크탑에서도, 폰에서도. 크롬에서도, 엣지에서도. 그런데 "오늘도"라고 하셔서 여쭙는 건데 이전에도 계속 안 보이셨던 건가요? 저는 게시판에 있는 다른 글들의 첨부 이미지는 (로이배티 님의 지난 글들을 포함해) 모두 잘 보이는데 딱 이 글만 그렇거든요.
2022.04.26 18:53
음. 혹시 이 글의 사진은 보이시나요?
http://www.djuna.kr/xe/board/14094902
아마도 임시 저장 기능에 문제가 있는 게 맞는 것 같아요. 제가 원래 듀게 글 올릴 때 임시 저장을 이용해서 깨작깨작 조금씩 적다가 마지막에 그림 넣어서 올리거든요. 근데 언제부턴가 이런 식으로 올릴 때 그림이 제게만 보이게 되더라구요. 왜 그런진 모르겠지만 잘 쓰던 기능이 갑자기 이러니 난감하네요. ㅋㅋ
2022.04.26 19:14
이 글 제외하고 지금은 다 보입니다. 제 기억에 두세 번? 안 보였는데 로이배티 님이 뒤늦게 알고 수정하신(새로 써 올리신) 걸로 압니다.
2022.04.26 19:40
맞아요 다시 올리고 그랬었죠. ㅋㅋㅋ 결국 임시 저장 기능이 문제인 게 맞는 듯 하니 앞으론 한 번에 적어 올리든가, 텍스트를 다른 데다 적어서 옮겨 붙이든가 해야겠네요. 별 거 아닌데 하던 버릇대로 안 되니 귀찮음의 압박이... 하하. 답변 갑사합니다.
2022.04.26 14:24
우와 저보다 훨씬 알찬 리뷰 써주셨네요
보다가 저도 비슷하게 느낀 것 꽤 있는데 로이배티님 리뷰 보면서 되새기게 되네요ㅎ
특히 "확인 사살 안하는" 고구마 완전 공감이요ㅠ 저도 가족이랑 같이 보면서 도대체 왜!! 라는 탄성 여러번 질렀습니다ㅎ
아마도 스크림 시리즈를 학습하지 못한 사람들이겠죠!!
고어 장면들과 관련한 감상만 살짝 다른데요,
저는 생각했던 것보다는 직접적인 고어는 없네? 싶었긴 한데
그것도 다시 생각해보면... 요리 사진과 조합해서 볼 때 좀 불쾌하고 비위상할만 하긴 하고
애초에 "고어"에 대한 제 기준치가 높았던 것 같기도 합니다?ㅎㅎㅎ (비교 기준이 호스텔 등등등...끄어..ㅎㅎㅎ)
덧. 이미지는 저도 안보입니다! 증인 추가ㅎㅎ
2022.04.26 14:35
확인 사살 안 하고 도망가게 만들고 싶다면 이유라도 충분히 만들어 넣어줬으면 좋겠어요. 게다가 이 영화의 그 상황은 빨리 도망가는 것보단 그냥 그 양반을 확실하게 무력화하는 게 가장 중요한 상황이었는데 대체 왜 때문에... ㅋㅋ
맞아요 직접적인 고어는 정말 열심히 빼놨는데요. 재료 가공 장면을 너무 정성들여 보여주니 오히려 그게 더 거북스럽더라구요 전. 그 통다리 장면이라든가, 냉동 갈비 손질이라든가... 엄... ㅠㅜ
2022.04.26 16:00
보는 동안 눈이 간간이 돌아갔는데도 자주 실실 쪼개곤 했답니다....
2022.04.26 18:54
장면 자체가 잔혹하다기보단 뭔가 '비위 상하는' 장면들이 많았죠. 저는 눈을 돌리진 않았지만 기분이 계속 망측해져서... 하하.
그래도 유머가 적절히 들어 있어 다행이었네요.
2022.04.26 19:29
정말 초반 분위기로 쭉 이어갔어도 뭔가 꽤 재밌는 롬콤이 나올법한 느낌이었는데 본격적으로 엄청 늦은 오프닝 크레딧 이후(이런 작품들이 간간히 있더군요. 드라이브 마이 카도 그랬고) 호러파트도 재밌었어요. 보기 불편하면서도 즐기게 되는 묘한 밸런스를 잘 맞춘 것 같습니다. 마무리는 확인사살이야 뭐 장르 클리셰적인 거라서 넘어간다치고 왜 엔딩을 그렇게 어정쩡한 타이밍에 끊었느냐가 개인적으로 더 궁금하더군요. 설마 속편 떡밥은 아닐테고;; 저 무시살벌했던 여배우분 확실히 포스가 있었죠.
여주 데이지 에드가 존스는 제작년에 저도 참 좋게 봤었고 호평받았던 TV 시리즈 노멀 피플로 주목받게된 신인인데 최근에 그간 출연한 작품들이 쭉 공개를 기다리고 있더군요. 첫눈에 확 들어오진 않는데 점점 빨려들어가는 미모랄까 ㅋ 연기력은 데뷔 초부터 인증받았고 기대해볼만한 유망주죠. 세바스챤 스탠도 최근 엄청 열일하는 것 같아요. 사악하고 찌질한 역도 마다않고... 최근에 파멜라 앤더슨과 토미 리 존스의 섹스테이프 유출사건 다룬 시리즈에도 나왔죠. 이것도 디즈니 플러스에서 공개예정인 걸로
2022.04.26 19:47
그대로 로맨스로 갔으면 디즈니와 아주 어울리는 작품이 되었을 텐데요. ㅋㅋ 시작부터 디즈니 디스부터 하는 영화가 디즈니 플러스에서 서비스되는 상황이 웃기더라구요.
엔딩이 찜찜한 구석을 남기긴 했지만 속편을 이어가려면 아예 다른 분위기의 영화가 되어야할 테니 아마 그러진 않겠죠. 아마도 뭐 그냥 여성들간의 연대를 보여주는 장면으로 끝내고 싶었던 게 아닌가 싶기도 하구요.
관심이 생겨 검색해보니 처음부터 뭔가 정통 코스로 연기를 배우신 분인 것 같더라구요. 엄마는 북아일랜드, 아빠는 스코틀랜드 사람에다가 본인 고향은 런던이라니 뭔가 영국의 화개장터(...) 출생을 가지신 듯 한 것도 재밌구요. 전 세바스찬 스탠에 대해서 배우로서 관심을 갖게된 게 이 영화이니 나름 의미 깊은(?) 영화 같습니다. ㅋㅋ 사실은 루마니아 사람이고 그래서 이름이 스탠이 아니라 '스탄'으로 발음된다는 것도 처음 알았어요.
오늘도 사진은 안 보일 뿐이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