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한 나날의 문화

2016.01.09 02:16

겨자 조회 수:2125

여러분은 어떤 문화생활을 할 때 가장 행복하시나요? 그 문화생활은 많은 돈을 써야 가능한 것인가요?


장모종님이 올리신 아래 포스팅을 읽다가 잠깐 궁금해졌습니다. 그 포스팅에는 이런 구절이 있어요. 


무슨 가능성이 소위 "금수저"가 아닌 사람에게 나이가 젊더라도 해당이 되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이미 문화 선택의 폭 부터가 다르지 않나요? 


제가 현재 즐기는 문화는 

  1. 영상문화 (영화, 넷플릭스)
  2. 활자문화 (책)
  3. 음악 
  4. 그림


이 네가지예요. 넷플릭스는 한달에 1만원 꼴로 나가고, 영화관에 가끔 가요. 하지만 영화평론가 정성일씨가 말했듯이 영화관이야말로 가장 적은 돈으로 두시간을 보낼 수 있는 방법에 속한단 말이죠. 책은 도서관이나 구텐베르그 프로젝트, 고전을 정리해둔 pdf, 킨들북이나 종이책도 사요. 종이책과 킨들북에 돈을 꽤 들이는 편이긴 해요. 음악은 유튜브로 듣고, 음반은 거의 사지 않아요. 심장이 저리도록 못견디게 사고 싶은 음반이 있을 때 밥값을 아껴서 산 적이 있는데, 그것은 요요마의 탱고였습니다. 오래전의 이야기죠. 그림은 인터넷으로 보고, 가끔 캘린더나 잡지에 예쁜 그림이 실리면 잡지를 벽에 붙여놓기도 해요. 보통은 그 주의 데스크탑 월페이퍼로 써먹죠.  


돈을 많이 써야만 가능한 문화생활을 생각해봤어요. 오페라, 뮤지컬, 발레, 관현악, 콘서트 현지 감상. 미술품 구입이나 전시회 관람도 있을 것 같네요. 악기를 구입하거나 새로운 악기를 배우는 것도 있구요. 하긴 지난 크리스마스에는 헨델의 "메시아"를 꼭 관람하고 싶었더랬죠. 분명 그런 문화생활에서 오는 즐거움도 있겠죠.


하지만 공짜로 주어진 고전을 읽을 때, 유튜브에서 샤키라를 들을 때, 나에게 일어나는 그 엄청난 즐거움은 가짜이거나 싸구려일까요?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요. 문화생활의 목적은 결국 내가 더 즐겁자고 하는 것인데, 돈을 많이 쓰든 적게 쓰든 내가 즐거우면 되는 것 아닌가요? 기준은 돈에 있지 않고 나에게 있으니 말이에요.


예전에 알던 분들 중에 이런 분들이 있었어요. 한 분은 바둑이 취미이고 한 분은 수학 정석을 푸는 게 취미이죠. 바둑을 취미로 둔 이유가 뭐냐고 물었더니 "우리 시절에는 돈이 없어서 앉아서 오래 생각할 수 있는 것을 취미로 했다"고 하더군요. 하지만 그 사람의 그 취미생활에는 자부심이 있었어요. 돈이 없어서 시작한 취미이지만 나는 이 취미에 자족한다고 하는. 또 한 사람은 수학을 싫어하던 사람인데, 돈이 없어 남편과 떨어져 다른 도시에 살아야했고, 밤에는 외롭고 심심하기에 수학의 정석을 붙들고 푸는 걸 취미로 삼았다고 하더군요. 이 분의 말이 저에게는 그럼 나도 수학의 정석을 즐겁게 풀어볼까 하고 생각하게 된 계기가 되었어요. 제가 수학을 싫어했던 이유는 시간에 쫓기면서 정해진 시간 안에 풀어야 한다는 것인데, 이 분은 한 문제를 붙들고 몇시간이 흐르든지 그냥 스스로 푸는 것을 즐거움으로 삼았거든요. 이 분들의 즐거움은 가난을 계기로 시작했기 때문에 그 즐거움이 덜한가요?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공지 제 트위터 부계입니다. [3] DJUNA 2023.04.01 25378
공지 [공지] 게시판 관리 원칙. 엔시블 2019.12.31 43934
공지 [공지] 게시판 규칙, FAQ, 기타등등 DJUNA 2013.01.31 352473
107930 Science Fiction PathFinder [3] ahin 2010.10.02 3665
107929 서른 살이란 무엇일까... [12] 차가운 달 2011.02.10 3665
107928 토이 스토리3의 그 장면. (가급적이면 이미 보신 분들만) [16] nishi 2010.08.25 3665
107927 <치즈인더트랩> 2부 24화 이면(2) [13] 환상 2011.12.01 3665
107926 미국에서 느꼈던 문화충격 두가지. [20] S.S.S. 2018.05.06 3664
107925 (속보) 청와대 문건 유출 혐의 최모 경위 사망 - 냉무 [15] soboo 2014.12.13 3664
107924 아침드라마의 막장 설정이 실제로 존재함을 보여준 사건. 내연남을 양자로 삼고 질투해서 살해. [8] chobo 2012.11.21 3664
107923 바퀴벌레 때문에 울어보기는 처음이에요 ㅠ.ㅠ [14] 길찾기 2012.06.26 3664
107922 저는 하루키의 통찰력과 낙관적인 태도 [34] loving_rabbit 2012.04.04 3664
107921 박재범이 잘생겼군요 [16] 가끔영화 2012.04.02 3664
107920 듀게에서 자주 볼 수 있는 멘트 중 하나. [20] 자본주의의돼지 2011.02.09 3664
107919 인터내셔널가랑 한총련 진군가를 듣다가 이런 종류의 노래가 더 듣고싶어졌어요'ㅇ' [55] loving_rabbit 2010.12.24 3664
107918 최근 가요 제목 중에 가장 도발적이네요.jpg [2] 자본주의의돼지 2010.12.14 3664
107917 장재인 팬으로서(슈스케 스포일러) [13] 오토리버스 2010.10.16 3664
107916 나홍진의 '황해' 티져 예고편. [10] 매카트니 2010.09.10 3664
107915 파수꾼 다운 받아 보세요 [4] lamp 2011.06.06 3664
107914 그림처럼 생긴 한글 [12] 프루비던스 2010.09.29 3664
107913 포화속으로 악플러 초청 시사회를 했다는데.. [7] fan 2010.06.13 3664
107912 한국의 국가수준이 어쩌다가 이 지경까지; [7] soboo 2015.02.04 3663
107911 [바낭] 이 주의 아이돌 잡담 [21] 로이배티 2013.02.17 3663
XE Log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