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목장 (2012)

2012.11.06 23:34

DJUNA 조회 수:11312


올해 여름 MBN에서는 한국방송통신전파진흥원이 주관하는 2012년 방송프로그램제작지원사업 '경쟁력 강화 TV영화 부문 선정작'으로 뽑혔다는 (헥헥헥) 70분 분량의 납량특집 TV 영화 두 편을 방영했습니다. [수목장]과 [노크]요. 당연히 종편이라 아무도 안 봤죠. 아마 이 작품들을 만든 모든 사람들이 여기에 안심했을 겁니다. 하지만 방심은 금물. 이 두 편은 은근슬쩍 러닝타임을 늘려 극장용 영화로 변신해서 곧 개봉하게 됩니다.

누가 결정한 건지 몰라도, 참 나쁜 사람입니다.

오늘 시사회가 있었던 [수목장]은 어떤 영화냐. 말 그대로 수목장으로 시작합니다. 누군지는 모르겠는데 하여간 사람 하나가 죽어서 수목장을 했어요. 전 이게 사람의 남은 일부가 자연으로 돌아가는 아주 평화로운 의식이라고 생각했는데, 영화는 이를 호러 재료로 삼습니다. 어떻게요? 어떤 나무 도둑들이 수목장터에서 나무들을 훔쳐서 딴 데 팔았답니다. 그 나무들이 시들시들 죽어가서 주인공인 나무치료사 청아가 나서는데, 이 사람은 과거에 일어났던 교통사고를 기억 못하고 매일 약을 먹고 있습니다. 그러는 동안 정신병원에서 탈출한 한기라는 남자가 청아의 뒤를 맴돌죠. 이런 식으로 한 시간 동안 호러가 진행되다가 그 뒤부터는 과거회상과 진상 설명을 이유로 30분간 신파가 나오고 나머지 10분 동안 이야기를 마무리지으려다 마는 영화입니다. 

그나마 이 영화에 관대한 사람들은 왜 이 영화가 수목장 이야기를 소재로 삼았는지 궁금할 겁니다. 청아를 중심으로 한 귀신/사이코패스/스토커/사각관계 질투 멜로 스토리는 굳이 수목장을 통해 전달될 필요가 없기 때문입니다. 이 영화의 스토리는 순전히 제목이 먼저 정해져 있기 때문에 수목장과 연결되어 있을 뿐, 내용상 유기적 연결성은 거의 존재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정상적인 관객들은 이런 것 따위엔 신경도 쓰지 않을 겁니다. 그런 당연한 행동을 하기엔 영화가 너무 비정상적이기 때문이지요. 대사나 스타일, 이야기의 구조가 괴상해서 비정상적인 게 아니라, 이런 완성도의 영화가 극장에 걸리는 것이 너무나도 신기하기 때문입니다.

[수목장]은 열차충돌현장에 남은 잔해와 같은 영화입니다. 실제로 시사회에서 상영된 영화는 어느 정도 망가져 있었습니다. 왜 그랬는지 몰라도 믹싱에 실수가 있어서 사운드가 참 오묘했지요. 하지만 만든 사람들이 실수라고 인정한 기술적 문제가 해결되었다고 해도 영화는 여전히 열차충돌현장의 잔해처럼 보였을 겁니다. 영화는 그냥 엉터리입니다. 편집, 연기, 연기지도, 촬영, 특수효과, 각본, 음악 모두가 재난수준이에요. 여기엔 더 이상의 설명도 필요하지 않습니다. 그냥 못 만들었어요.

이건 당황스러운 일입니다. 이 영화의 감독 박광춘은 결코 아마추어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지금까지 아주 좋은 영화를 만든 적은 없지만 그래도 10년 넘는 세월 동안 경험을 쌓은 베테랑이죠. [퇴마록]으로 데뷔했으니 호러에도 어느 정도 경험이 있다고 할 수 있고요. 그런데 이런 영화가 나왔으니 온갖 생각이 다 드는 겁니다. 아마 그는 영화를 찍는 동안 몸이 아팠을 수도 있습니다. 제작비와 시간이 턱없이 부족해서 헉헉거리다 나온 결과일 수도 있고요. 엉터리 영화를 일부러 만들면서 종편 채널에 사보타지를 했을 수도 있습니다. 이 정권 일들이 대부분 그렇듯, 한국방송통신전파진흥원이 주관하는 2012년 방송프로그램제작지원사업 '경쟁력 강화 TV영화 부문 선정' (헥헥헥)은 이런 쓰레기밖에 생산해낼 수 없는 행사였는지도 모릅니다. 어느 쪽이 사실인지는 저도 모릅니다. 하지만 이 결과물은 이런 식으로 이야기를 만들어야 간신히 말이 됩니다. 

보통 제 리뷰는 제 취향과 기준을 아는 사람들에게 영화에 대한 기초적인 정보를 제공해주는 것 이상의 의미는 없습니다. 하지만 이 단계를 넘어 '이 영화가 상영되는 극장 안에는 실수로라도 들어가지 마세요'라고 경고를 하게 되는 영화들이 있습니다. [수목장]이 그렇습니다. 여러분이 이영아나 온주완의 열성팬이라도 해도 제 경고는 달라지지 않습니다. 제 말을 믿으세요. 그들도 여러분이 이 영화의 존재를 모르길 바랄 겁니다.  (12/11/06) 

BOMB

기타등등
이영아는 몇 년 전에 [귀신이야기]라는 영화를 찍은 적 있지요. 호러 코미디인 것으로 추정되지만, 그래도 이번이 첫 호러영화는 아닌 셈입니다. 이 영화는 포스터까지 극장에 걸렸지만 결국 개봉되지 못했습니다. 과연 이런 영화들에게 제2의 기회가 주어질 수 있을까요. 궁금합니다. [수목장] 같은 영화도 극장에 걸리는 세상인데 말입니다.

감독: 박광춘, 출연: 이영아, 온주완, 박수진, 연제욱, 다른 제목: Natural Burial

Hancinema http://www.hancinema.net/korean_movie_Natural_Burial_-_The_Movie.php
Naver http://movie.naver.com/movie/bi/mi/basic.nhn?code=872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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