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조안 첸 Joan Chen

주연
위노나 라이더....샬롯
Winona Ryder....Charlotte
리처드 기어....윌
Richard Gere....Will
안소니 라파글리아....존
Anthony LaPaglia....John
일레인 스트리치....돌리
Elaine Stritch....Dolly
베라 파미가....리자
Vera Farmiga....Lisa
셰리 스트링필드....사라
Sherry Stringfield....Sarah
질 헤네시....린
Jill Hennessy....Lynn
메리 베스 허트....시블리 박사
Mary Beth Hurt....Dr. Sibley
J.K. 시몬즈....그랜디 박사
J.K. Simmons....Dr. Grandy
샘 트래멜....사이먼
Sam Trammell....Simon
칼리 로샤....섀넌
Kali Rocha....Shannon
스티븐 란다조....알베르토
Steven Randazzo....Alberto

보통 언론용 시사회를 가지지 않는 영화들의 속셈은 뻔합니다. 한마디로 영화에 자신이 없어서 사전에 평론가들의 입을 막으려는 것입니다. 이런 영화들 중 결과가 좋은 작품은 많지 않지요. [어벤저]나 [고질라]와 같은 영화들을 보세요.

[뉴욕의 가을] 역시 시사회 없이 개봉된 영화입니다. 영화사에서는 결말이나 내용을 노출하지 않기 위해서라고 변명했지만 그걸 믿는 사람들은 아무도 없었죠. 테스트 시사회 때 관객 평들이 부정적이었다는 소문도 돌았고요. 하여간 이런 결정은 영화사가 영화를 포기했다는 말과도 연결되기 때문에 영화를 만든 당사자들의 분노를 일으켰습니다. 특히 MGM 사의 이 결정 때문에 잔뜩 화가 난 주연배우 리처드 기어와 위노나 라이더는 매스컴을 통해 자기네들의 불만을 쏟아붓기도 했습니다.

결과는 어떻게 되었을까요? 평이 그렇게까지 좋은 편은 아니었지만 시사회를 가졌던 다른 영화들에 비해 특별히 더 못하지는 않았습니다. 오히려 용감하게 밀어붙였다면 '시사회 없는 영화'라는 딱지가 만들어내는 부정적 선입견을 없앴을 수도 있었을텐데 말입니다.

도대체 무슨 이야기이길래 MGM이 그렇게 자신 없어 했던 걸까요? 한마디로 시한부 인생 이야기입니다. 리처드 기어는 바람둥이 중년 남자입니다. 위노나 라이더는 치명적인 심장병 때문에 살 날이 며칠 남지 않은 22살의 젊은 여자고요. 둘은 사랑하게 되고 갈등하고 싸우고 다시 화해하고 사랑하다가... 나머지는 말해주지 않아도 알죠? 당연히 위노나 라이더 캐릭터는 끝에 가서 죽습니다. 리처드 기어는 남아서 닭똥같은 눈물을 뚝뚝 떨구고요. 이런 게 스포일러라고 말하지는 마시길.

여러분은 징그러울 정도로 진부한 영화라고 말하겠지만 사실 이 작품은 진부하다기 보다는 용감한 영화입니다. 현대를 사는 냉소적인 관객들은 클래식 할리우드 관객들과는 달리 이런 이야기를 진지하게 받아들일 수 없거든요. 이런 이야기에 질릴 정도로 익숙해진 그들은 이야기가 시작되자 마자 잽싸게 진부함과 클리셰의 냄새를 맡고 그걸 농담으로 비틀어버립니다. 따라서 이런 영화를 만들어 내세우는 것은 전투와 같습니다. 얌전히 이야기만 해서는 안됩니다. 방어와 선제 공격이 필수적이지요.

하지만 [뉴욕의 가을]은 불쌍할 정도로 이런 공격에 무방비로 노출되어 있습니다. 영화는 아무런 방패없이 마치 지금이 1940년대라도 되는 척하면서 눈물짜는 시한부 인생 이야기를 밀어붙입니다.

이 페이지에 자주 들르시는 분들이라면 잘 아시겠지만, 전 이런 관습적인 멜로드라마에 대해 결코 매정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전 이런 식의 낡을 대로 낡은 스토리와 트릭을 사랑합니다.

그러나 [뉴욕의 가을]은 훌륭한 공식 영화가 아닙니다. 그런 영화가 되기 위해 필수적으로 갖추어야 할 진지함이 모자라기 때문이지요.

[러브 스토리]를 예로 들어보죠. 이 영화는 시작부터 끝까지 뻔한 통속물이지만 당시 관객들은 두 연인들의 이야기에 별 무리 없이 몰두했습니다. 그 감상주의에도 불구하고 영화는 그들과 스토리에 성실했으니까요. [러브 스토리]는 낡은 이야기를 마치 새 이야기를 하듯 진지하게 끌어갔습니다.

하지만 [뉴욕의 가을]은 그냥 공식을 따라가기만 합니다. 스토리는 리처드 기어의 캐릭터 윌이 끝도 없이 써먹는 여자 꼬시기 공식처럼 오래 전에 신선함을 잃었습니다. 이 영화는 윌과 샬롯이라는 두 캐릭터에 스토리를 의지하는 대신 그냥 생각없이 공식을 따릅니다. '슬슬 분위기가 굳어가니 이쯤해서 작은 싸움을 하나 넣자, 슬슬 시간이 되어가니 주인공을 쓰러뜨리는 게 어떨까?'하고 작가가 생각하는 게 다 보일 지경이에요. 제가 간절히 바랐던 '진부하고 감상적이지만 충만된 감정'이 충분히 나오지 않았던 건 당연하지요. 진부한 건 큰 문제가 안됩니다. 문제는 감정이지요.

배우는? 배우 탓이라고 하고 싶지는 않아요. 리처드 기어나 위노나 라이더는 모두 맘에 드는 연기를 보여줍니다. 특히 라이더는 효과적입니다. 늘 약간 복잡하고 비틀려진 영화에서만 보다 이처럼 단도직입적이고 단순한 멜로드라마에 나오는 걸 보니 꽤 재미있네요. 하지만 리처드 기어에게는 약간의 문제가 있습니다. 잘하긴 하지만 너무 적역이에요. 기어가 연기하는 또다른 로맨틱한 중년 남자는 너무나도 예측이 쉬워서 영화의 모든 갈등을 약화시키는 듯 합니다.

이야기를 맺기 전에 장점들을 언급하죠. [뉴욕의 가을]은 때깔이 참 좋은 영화입니다. 장웨이 구가 찍은 뉴욕의 가을은 좀 관광 엽서 사진처럼 보이긴 해도 예쁩니다. 의상과 미술의 선택에 완전히 동감하지는 않습니다만, 그래도 꽤 보기 즐거운 것은 사실이에요. 라이더나 기어 모두 화면에서 예쁘고 근사하게 나오고요. 문제는 제가 그 이상을 바랐다는 것이겠죠. (00/09/18)

DJUNA

기타등등

1. [E.R] 팬들은 셰리 스프링필드의 모습을 보고 반가웠겠지요. 격무에서 해방된 탓인지 몸이 좀 불었더군요. :-)

2. 중국세가 강한 영화지요. 감독, 촬영 감독, 편집자가 모두 중국인이니 중요한 건 다 한 셈입니다.

3. 나중에 이 영화를 [리턴 투 미]와 비교해도 좋을 듯 합니다. 모두 배우 출신 감독이 만든 MGM 구식 러브 스토리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