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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
주연
이번주 서니데일에서는...
'Seeing Red'
버피와 기크 트리오 워렌은 진짜 남자가 되고 싶어하는 덜 자란 소년입니다. 그가 초반에 보여주는 행동들은 "나중에 내가 자라 훌륭한 사람이 되면 널 혼내줄거야!"라고 꽁알거리는 어린 소년에게나 어울립니다. 그가 초능력을 얻게 된 뒤 처음에 한 일이 뭔지 기억나세요? 학교에서 자길 괴롭히던 동창을 혼내주는 것이었습니다. 물론 이 모든 것들은 거의 관습화되다시피한 남성성의 과시를 통해 이루어집니다. 초능력을 잃은 워렌이 버피의 집에서 벌이는 끔찍한 소동 역시 성인의 책임감 결여에서 비롯됩니다. 그는 장난감을 빼앗긴 어린 아이처럼 굴고 있어요. 물론 여기서 그가 가장 짜증을 내는 이유는 버피가 '여자 아이'라는 것입니다. 뭐, 그가 휘두르는 총에서 뻔한 정신분석학적 의미를 읽을 수도 있겠지요. 워렌의 남성우월주의는 6시즌에서 제대로 다루어지지 못한 수많은 주제들 중 하나입니다. 너무 직설적이어서일 수도 있고, 충분히 타이밍을 잡지 못했기 때문일 수도 있지만, 진짜 이유는 [버피]라는 쇼에서 정확한 위치를 찾지 못했기 때문이 아닌가 싶어요. 이번 시즌의 다른 주제들처럼 말입니다.
버피와 스파이크 이 장면이 존재하는 이유는 명명백백합니다 (하긴 6시즌의 모든 주제들이 명명백백합니다.) 질질 끄는 버피와 스파이크 이야기를 끝맺고 스파이크에게 죄의식을 심어주기 위해서였죠. 그래야 얘를 아프리카로 보내 영혼을 심어줄 수 있으니까요. 강간 미수는 남성들의 폭력 또는 역습으로 이해될 수 있는 'Seeing Red'의 주제와도 맞습니다. 시청자들에게 주는 충격도 크고요. 문제는 이게 [버피]라는 시리즈에 충분히 녹아들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메시지와 아이디어가 기본 설정이나 캐릭터에 맞지 않아 당위성을 잃은 것이지요. 조금만 생각해봐도 버피가 이 이야기에 어울리지 않는 캐릭터라는 걸 알 수 있죠. 덕택에 온갖 무리수가 동원되게 됩니다. 버피를 일시적으로 무력화시키기 위해 이 에피소드가 동원하는 믿음직하지 못한 우연의 일치를 보세요. 더 큰 문제는 이 장면의 부작용입니다. 특히 수많은 스퍼피 Spuffy 팬들에게는요. 한마디로 그들은 스파이크의 잘못을 인정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스파이크의 행동에 대해 에피소드가 어정쩡한 태도를 유지한 것도 그런 반응을 불러일으키는 이유인 것 같아요. 결과는 참담합니다. 사실 [버피] 게시판에서 강간 미수 변명이 줄줄이 쌓여가는 걸 보는 것처럼 기분나쁜 일은 없습니다. 전체적으로 볼 때 이 장면은 시청자들에게 잘못된 메시지를 전할 가능성이 굉장히 큽니다. 아니, 실제로 그러는 중인 것 같고요. 스파이크의 이야기는 아직 진행 중입니다. 하지만 앞으로 일이 어떻게 진행되건, 전 버피/스파이크의 관계가 쌍방으로 이어지기를 바라지는 않습니다. 그렇게 되면 뭔가 심각하게 잘못된 것이겠죠.
타라 우선 타라의 존재 이유가 무엇인지 따져보죠. 많은 분들이 지적했던 것처럼, 타라는 셰익스피어식 무구한 희생자입니다. 오필리아, 코딜리아, 데스데모나와 같은 캐릭터들을 떠올려보세요. 타라의 죽음은 시청자들에게 분노와 슬픔을 끌어내고 윌로우를 DMW (Dark Magic Willow)로 추락시키는 역할을 합니다. 윌로우가 게이가 된 것도 어떻게 보면 이 스토리 라인 때문인 것 같아요. 여기서 윌로우는 전형적인 '비극적 남자 주인공'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만약에 윌로우가 스트레이트로 남고 오즈나 잰더가 희생자가 되었다면 같은 효과가 났을까요? 그렇지는 않았을 겁니다. 남자 희생자들한테는 여자 희생자들만큼 결백한 느낌이 들지 않거든요. 문제는 우리가 이 이야기를 순수한 비극으로 받아들일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건 타라가 소수자이기 때문이죠. 제가 전에도 이야기한 적 있었죠? 소수자 캐릭터에 대한 부정적인 묘사는 아무리 백지 상태에서 출발한다고 해도 그 자체로 정치적인 발언이 된다고요. 물론 여러분은 타라가 부정적으로 다루어지지 않았다고 대답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게 그렇게 단순하지가 않습니다. 타라의 죽음과 관련된 여러 온라인 토론에 참가했던 분들은 '레즈비언 클리셰'라는 말을 굉장히 자주 들었을 겁니다. 저 역시 장르 클리셰에 대한 관심이 꽤 깊은 편이라 전에 여기서 이와 비슷한 주제를 다룬 적 있었죠. 한마디로 '레즈비언 클리셰'는 주류 영화계가 레즈비언 캐릭터들을 다루는 관습적인 방식을 가리킵니다. (남자 동성애자들도 예외라고 할 수는 없지만 이번 논점과는 상관 없으니 그들은 잠시 뒤로 미루어놓죠.) 최근까지 레즈비언 캐릭터들이 끝까지 살아남거나 해피 엔딩에 동참하는 경우는 극히 드물었습니다. 많은 수가 자살하거나 살해당하거나 사고로 죽으면서 끝이 났으니까요. 정신질환자나 악당으로 떨어지는 경우도 그만큼 많았고요. 바로 그렇기 때문에 [데저트 하츠]의 관습적 해피 엔딩이 당시에 오히려 혁명적으로 비추어졌던 것입니다. 레즈비언 클리셰의 고약한 점은 이런 이야기들이 성적 소수자에 대한 처벌로 기능하면서도 많은 수가 그 의도를 감추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건 액션 영화에서 흑인 캐릭터들이 먼저 죽어나가는 것과 같았죠. 개별 영화들만 따진다면 모두 그럴싸한 이유가 있었겠지만, 전체적인 면에서 보면 사정이 다르단 말입니다. 그러다보니 클리셰는 개별 작품들의 이유가 무엇이건 어쩔 수 없이 작품 위에 달라붙어 기존의 의미를 추가하게 됩니다. 현대 할리우드 액션 영화에서 흑인 악당이나 희생자들은 클리셰의 영향에서 어느 정도 벗어난 편입니다. 하지만 그건 지금까지 할리우드의 흑인 영화인들이 자신의 존엄성을 쟁취하기 위해 필사적으로 노력한 결과입니다. 댄젤 워싱턴이 [트레이닝 데이]에서 악역을 하면서도 클리셰의 영향에서 벗어날 수 있었던 건 그가 이전에 꾸준히 긍정적인 흑인 캐릭터들을 연기해서 어느 정도 균형이 잡혔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과연 주류 영화계/텔레비전의 성적 소수자 캐릭터들에 대해서도 같은 말을 할 수 있을까요? 다시 타라 이야기로 돌아가면, 이 이야기를 순수하게 받아들이는 건 처음부터 불가능했습니다. 물론 [버피] 작가진은 순수한 의도였다고 주장하겠지만, 이들이 만들어낸 줄거리는 지극히 관습에 충실했습니다. 타라의 죽음은 윌로우와 섹스 직후에 발생합니다. (노골적인 처벌 공식이지요.) 타라의 죽음 이후 DMW로 변하는 윌로우의 변신 과정도 전형적인 사악한/미친 레즈비언의 이미지를 따르고 있지요. 윌로우와 타라가 미국 주류 텔레비전 프로그램 최초의 게이 커플 주인공이었다는 걸 생각하면 팬들이 느꼈을 배반감이 얼마나 컸을지 짐작하실 수 있을 겁니다. [버피] 작가진이 뭐라고 변명하건, 클리셰에 익숙하고 그 의미를 알고 있는 시청자들에게 그건 악몽의 재현이었습니다. 충분히 각성되지 못한 시청자들이나 호모포브들에게 그건 당연한 처벌이었고요. (이 에피소드가 방영되자 '딩! 동! 마녀가 죽었다!'라고 떠들어댔던 게시물이 얼마나 되었는지 아시는지요?) 타라가 그 결백한 아름다움에도 불구하고 순전히 게이라는 이유 때문에 선호도가 일정치 않았던 캐릭터라는 점을 생각해보면 죽음은 더욱 더 처벌의 기능을 하게 됩니다. 그 때문에 [버피] 작가진들은 온갖 매체에 나와 그 스토리 라인을 '설명'해야 했는데, 작품 뒤에 작가 자신의 설명이 따라야 한다면 그건 결코 성공한 것이 아닙니다. 결국 작품의 결과만 따져도 '예술적으로' 그렇게 성공적인 시도는 아니었던 셈이죠. 그런 면에서 비극적인 게이 로맨스를 다룬 다른 작품들에 비해서도 버피 6시즌이 그렇게 성공적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천상의 피조물] 역시 비극적인 게이 로맨스를 다루고 있지만 게이 팬들이 이렇게 심한 반발을 일으키지는 않았잖아요? 타라의 죽음에 대해서도 아직 단정적으로 이야기할 수는 없습니다. 7시즌이 곧 시작될 예정이고, 앰버 벤슨이 '타라가 아닌' 다른 캐릭터로 출연한다는 소식이 계속 들리고 있으니까요. 전체적인 평가는 7시즌이 끝나야 가능할 겁니다. 하지만 지금만으로도 6시즌이 [버피] 시리즈에 남긴 상흔은 상당히 큽니다. 이게 온전히 극복될 수 있다고 생각되지는 않아요.
기타등등
2. 도대체 워렌은 총을 어떻게 쐈길래, 이층에 있던 타라가 총에 맞을 수 있는 걸까요? (02/09/11) ( * 여기에 약간의 새 정보를 추가해야겠군요. 스티븐 디나이트는 얼마 전에 'Seeing Red' 방영 직후 스쿠버스 인터뷰에서 했던 무례한 발언들에 대해 정식으로 사과했습니다. 여전히 사람들은 늦은 사과에 대해 투덜거렸지만, 그 뒤로 디나이트에 대한 욕설은 곧 사라지더라고요. 사과의 힘이라는 게 대단하다는 걸 여기서 느꼈답니다. [03/0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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