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Emma (1997)

케이트 베킨세일 로는 1973년 6월 26일 런던에서 태어났습니다. 어머니 주디 로는 배우이고 아버지 리처드 베킨세일은 코미디언이지요.

이 친구가 처음으로 재능을 보이기 시작한 것은 연기가 아니라 문학이었습니다. 십대 때 British bookseller W. H. Smith Young Writers' competition에서 두 번인가 수상했다나 봐요. 하지만 집안 분위기에 기울어졌는지, 아니면 몸 속의 배우 유전자가 꿈틀거렸는지 슬슬 연기로 자리를 옮겼어요.

베킨세일의 공식적 데뷰작은 P.D. 제임스의 소설을 각색한 텔레비전 시리즈 [Devices and Desires (92)]였지만 그건 아주 작은 역이었고요, 진짜 데뷰작이라고 할 수 있는 작품은 주디 데이비스 주연의 제2차 세계대전 텔레비전 영화 [바람에 대항한 여인 One Against the Wind (91)]이었습니다. 이 영화에서 베킨세일은 주디 데이비스의 딸을 연기했습니다.

옥스포드에서 프랑스와 러시아 문학을 전공하던 중, 두번째 기회가 찾아왔습니다. 케네스 브래너가 [헛소동 Much Ado About Nothing (92)]의 히어로 역으로 베킨세일을 캐스팅했던 것이죠. 그 뒤로 잠시 고민하다가 3학년 때 학교를 때려치우고 본격적인 연기 인생을 시작했습니다.

그 뒤부터 꽤 알찬 전문 배우의 경력이 시작됩니다. [Cold Comfort Farm (94)], [Shooting Fish (96)], [The Last Days of Disco (97)]... 요새는 클레어 데인즈와 공연한 [Brokedown Palace (98)]를 끝내고 개봉을 기다리고 있는 중이죠.

2.

Cold Comfort Farm (1994)

베킨세일을 보고 있노라면 자꾸 기네스 팰트로와 비교하고 싶어집니다. 외모 때문이 아닙니다. '패셔너블한 말라깽이'라는 것만 빼면 둘은 그렇게 닮지도 않았으니까요. 팰트로가 그레이스 켈리 풍의 성숙한 블론드라면 베킨세일은 덜 자란 더벅머리 소년 같지요.

하지만 둘은 꽤 유사점이 많습니다. 둘 다 쇼비즈 가문 출생이고, 엠마(베킨세일의 [엠마]는 영국 텔레비전 물이었습니다)를 연기했으며, 미국 악센트와 영국 악센트를 능란하게 오가는 연기 생활을 하고 있고, 결정적으로 고생 안하고 곱게 자란 상류 계급 딸들이 종종 장기처럼 내세우는 얄미운 매력을 지니고 있지요.

하지만 노골적으로 자신의 속물성을 드러내는 팰트로와는 달리, 베킨세일은 아주 결백한 척 할 수 있습니다. 그 사람의 장난꾸러기 소년 같은 깨끗한 동안 때문에 실제보다 훨씬 어리고 순진해보이거든요.

그래서인지 그 사람은 어울리지 않게 '청순가련형'역을 꽤 많이 했습니다. [헛소동]의 히어로나 [바람에 대항한 여인]의 바르베와 같은 캐릭터들이 그래요. 모두 꽤 그럴싸해 보입니다. 참 사람 속이기 쉽죠.

그러나 베킨세일이 진짜 베킨세일처럼 보일 때는 캐릭터가 자신의 속물성과 뻔뻔스러움을 노골적으로 드러낼 때입니다. 아직까지 베킨세일의 대표작이라고 할 수 있는 [Cold Comfort Farm (94)]은 그런 장기가 가장 잘 드러난 작품이지요. 시골에 있는 친척 농장을 방문해서 멋대로 그들의 인생을 바꾸어 놓는 이 못돼먹은 고아 소녀 역에 베킨세일 만큼 어울리는 배우는 없는 것 같아요. [에드브룩의 비밀 Haunted (95)]의 되바라진 크리스티나 매리얼도 아주 그 사람다운 역이었고요.

3.

The Last Days of Disco (1997)

베킨세일은 꽤 많은 흥미진진한 캐릭터들을 연기해왔지만 아직까지 화끈한 연기를 보여준 작품은 없습니다. 그건 아직까지 그 사람의 이미지가 나비처럼 가볍기 때문이지요. 베킨세일은 묵직하고 진지한 캐릭터를 연기하기엔 너무 어리고 '청순가련'해보입니다. 애까지 하나 있는 유부녀인데도 말이에요.

그래도 베킨세일은 자신의 마스터피스 시어터 이미지를 슬슬 걷어가고 있는 중입니다. [Shooting Fish (96)]나 [The Last Days of Disco (97)]는 모두 현대물이었고 베킨세일의 캐릭터도 지극히 현대적이었지요.

곧 개봉할 조나단 카플란 감독의 [Brokedown Palace]는 베킨세일에게 꽤 중요한 작품이 될 지 모릅니다. 사실 이 영화를 그렇게까지 기대하지는 않습니다만 (순진한 미국인 관광객이 동양 어느 나라에서 마약 때문에 고생한다는 이야기입니다! 헐리웃 사람들은 [미드나잇 익스프레스] 감기에라도 걸린 걸까요?) 베킨세일의 역은 그 어느 때보다 격렬하고 현실적일 수 있는 가능성을 안고 있습니다. 베킨세일 최초의 헐리웃 주류 영화이기도 하고요. 걸린다면 6살이나 어린 클레어 데인즈와 동갑내기 역을 한다는 것쯤일까요? 어려 보이는 게 죄지. (99/08/06)

D&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