꼭 이것 때문이라고는 볼 수 없지만 요즘 제 시절이 하수상해서 그러한 지, 그냥 다 거슬립니다.


  회사에서 나름 친하게 지내는 지인 중 한 명이, 올초에 상당히 늦은(?) 나이에 결혼을 했어요. 다 그런 건 아니겠지만 나이가 상당하다 보니 벌어둔 돈도 많고, 사치 안 하고 알뜰하고, 생활력도 강하고 몸에 해로운 기호나 식성은 갖고 있지 않고, 얼굴도 예쁘장하게 나이에 비해 동안이고... 어찌보면 결혼상대로 너무 좋은, 이미 준비된 신부감이었을 지도요. 그런데 가끔 제가 낯설던 것은 통상적인(?) 혼기가 지난 사람들이 다 그런 건지는 몰라도 결혼 전에 결혼에 대한 열망과 조바심이 너무 지나쳐 여자인 제가 봐도 정말 숨이 턱 막힐 정도로, 대부분이 다들 잘만하는 결혼 나는 왜 못하나 그걸 해야 나도 평범한 인생축에 끼는데 싶은 열등감을 여과없이 솔직하게 표출할 때면, 이 분이 사람들 처음보자마자 물어보는 혈액형이 뭐냐는 질문을 들을 때마다 제가 느꼈던, 무난하고 평범한 게 뭔지는 알겠는데 어딘가 막막한 느낌을 받았던 것처럼요.


  올초 결혼에 골인하기까지 지난 몇 년간 온갖 선과 소개팅으로 만났던 모든 남자들과의 연애사를 제가 다 알고 있을 만큼 털어놓았던 지라 지난한 시간을 보내고 1월의 신부가 되더니, 사실 뭐 이제 몇 달이 지나서 한창 신혼이니 그러려니 이해는 합니다만, 모든게 다 결혼 가치관으로 보이는 듯 합니다. 사실 결혼 확정되고부터 아이를 가질 몸을 만들겠다고 적극적일 때부터, 그래 나이도 있으니 그럴 수도 있겠다 싶었는데 결혼 후 부터는 대놓고 임신대작전에 매달립니다. 결혼 초 집들이니 뭐니 툭하면 병원이나 뭐다 반차니 휴가니 자리를 비운 때도 많은데 그것도 제 재량으로 하는 거 아니고 결혼해서 많이 바쁜가 그러려니 하겠는데, 일전의 회식 때 일입니다.


  그 전엔 이 분이 주당인데다 술도 약해서 전체회식이고 소그룹회식이고 제일 먼저 취해서 몸을 못가누고 그래서 저 또는 누군가가 집까지 데려다주거나 택시를 태워 보내기 부지기수였던 주인공이었는데 임신 준비한다고 몇달 전부터 술을 일절 입에 대지도 않더군요. 몸을 만들어야 한다고. 그것도 존중해서 술도 전혀 권하지 않고 그렇다 치려는데 이번 주 전체 회식 때 으레 그렇듯 사람들이 고기 좀 먹으면서 술 좀 편하게 마시고 불콰해서 업된 모습을 보며... 경멸하더군요. 물론 그 불콰해진 대상이 저는 아닙니다. 저는 그 날 낮에 PT갔다와서 컨디션이 많이 안 좋아 술을 거의 안 마셨고, 또 마셨다한들.... 회사에 저보다 술 센 사람이 없어서요. 그런데 그 모습을 목도한 저는 기분이 참 묘하게 뒤틀리더라는... 저도 술 좋아하고 술 좀 먹는, 그럼에도 안 취하는 사람이지만, 체질상이라며 또는 의식적으로 술을 먹지 않는 사람들과의 술자리에서 억지로 술을 권하지 않는 사람이지만, 사실 기분 별로일 때가 많거든요. 뭐랄까 안 마시는 사람은 하릴없이 마시는 사람 취해가는 꼴을 보게 될 것이고, 마시는 사람은 또 별 수 없이 안 마시는 사람 신경쓰이면서 서서히 무너져 갈 수도 있는 거지만... 그냥 다 떠나서 사람은 이래서 자기가 놓인 상황과 입장에서만 판단하는 것인가 라는 새삼스러운 꽁기함.


  소위 말해 주량도 약하면서 술욕심은 많은데 술버릇은 나빠서 술자리 파트너로서는 최악에 가까웠던 자신의 옛모습을 잊고 그 날 누가 과하게 취해 주정을 부린 사람도 없는데, 그냥 술마시는 누군가를 볼 때마다 "쟤 왜 저러니?" 라며 한심하다는 눈으로 보면서 저에게 흉을 보는데, 술도 거의 마시지 않던 저는 그냥 술맛밥맛이 떨어지더라구요. "불과 연말까지만 해도 자기는 더 했어요" 라는 말이 혀 끝까지 나왔다가 겨우 멈춤.


  취향과 기호, 성격이 너무 정반대라 제가 오히려 더 배울 게 많다고 장점을 먼저 보긴 했지만, 가끔 너무 강한 생활력이나 현실적인 욕망을 여과없이 드러낼 때마다, 이걸 뭐라 해야 하나 이 사람이 너무 평범하고 건강한 사람인가, 아니면 내가 비현실적이고 병적인 사람인가 헛갈리던 적이 있었는데 그것이 갑자기 싸하게 확 증폭되는 느낌.   

          

  물론 늦게 시작했지만 결혼 생활 행복하기 진심으로 바라고, 지금 신혼이니까 더더욱 어떤 면에선 편중될 수도 있겠다 라고 관대하게 이해하려고 애쓰며, 아이 원하는데 정말 임신 성공해서 잘 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하는데요, 친분에 너무 기대서 최소한의 객관성을 담보하지 않는 일련의 언행들에 저는 뭔가 자꾸 마음이 결빙되는 느낌적 느낌.  
       
  어디서 읽은 댓글대로, 남의 흥을 깰 것이 아니라 내 스스로 즐거운 사람이 되어야 할 텐데, 제가 요즘 매사에 몹시 지쳤나 봅니다.

괜찮은 척을 너무 오래했나 봐요. 그냥 다 피곤하고 거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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