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돈나랑 네이든 봤어요.

2015.07.16 16:04

BreakingGood 조회 수:1549

저야 뭐, 현 상황의 불공정함을 끌고 가자는 생각 밖에는 못하는 사람이니 게시판 존속이 어느 방향으로든 잘 흘러갔으면 좋겠다고 생각해요. 게시판이 날아갈지도 모르는데 규칙이고 뭐고 접어두고 미뤄두었던 잡담이나 해야겠어요.


마돈나와 네이든은 극장에서 연달아 봤어요. 날이 너무 더웠는데 극장을 식혀주기에는 에어콘이 너무 힘들어보이더군요. 사람이 별로 없어서 분위기는 넉넉했지만 땀을 흘리지 않으려고 되도록이면 움직이지 않았던 것 같아요. 4시간 정도를 그러고 있으니... 영화만 재밌죠, 뭐.


사실 마돈나와 네이든은 아주아주 다른 영화지만, 이어서 봤기 때문인지 비교를 하지 않을 수 없더군요. 두 영화 모두 사회에 섞이기 힘든 인물을 다루고 있어요. 하지만 그 해당 인물들의 성향도 판이하게 다르고 그들을 받아주는 사회의 모습도 판이하게 달라요.


마돈나는 인정 욕구에 시달리는 여자애를 사람들이 이용하고 쇠락시키는 과정을 그리고 있어요. 심지어 영화의 화자도 다른 간호사라서, 영화는 타인의 눈으로 그 여자애의 굴레를 바라보고 있죠. 학대가 사회와 권력이라는 탈을 쓰고 여자애를 쇠락시키는 건 여자애가 자초한 면도 있어요. 그물을 빠져나와야 한다는 생각도 못하고, 어떨 땐 앵기기까지 하고, 물리적/정서적 폭력에 끌려다니기만 하고. 근데 피해자가 악을 잘 인지하고 빠져나오려고 하고 악이 그걸 막아버리는 상황이라면, 그런 악은 알아보기 쉽고 오히려 없애기도 쉽겠죠. 여자애를 이용하는 사람들의 행태는 사자나 돌고래처럼 진군하며 착취하는 모습이라기 보다는 하이에나처럼 여자애 주위를 모욕적인 태도와 시선으로 빙빙 돌면서 여자애가 지치길 기다리다가 쓰러지면 뜯어먹는 것에 가까워요. 여자애는 자기 스스로도 감당하기 어려워하는 사람이고 타인의 행동에 대해서도 어떻게 반응해야할지 모르죠. 인간이 인간에게 행하는 착취는 욕망보다는 무관심의 결과이기 십상이지만, 성폭력은 흔하지 않은 예외인가 봐요. 자본주의에서는 원하는 대상을 거의 원 없이 소비할 수 있지만 인공지능이 나오기 전에는 명예욕와 성욕을 정복하지는 못하겠죠. 여자애는 나름 다양한 환경들 속을 수직 낙하하는데, 그 다양한 계층에 속하는 남자들이 여자애에게 수작... 아니 폭력을 거는 모습이 클리셰라서, 세번째 정도 나올때는 토하기 직전의 음주자를 앞에 두고 억지로 한번 더, 한번 더 하고 응원하는 기분이 들 정도였어요. 성추행의 축제 같은 영화였다고 할까요.


한번 (플롯은 아니고 분위기상으로는...) 반전이 일어나고 여자애와 주인공 간호사는 서로를 구원하고 그런 다음 영화가 끝나는데, 그 분위기가 '어디서든 어떻게든 살고 있겠지...' 싶은 분위기고, 이게 또 네이든과 비슷하면서도 참으로 대조가 되는구나 싶어서 가엾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암튼 보는 내내 '사회 안전망은? 사회 안전망은? 아 근데 덥네.' 하면서 봤네요.


마돈나가 정에 굶주려 휘둘리는 여자애 이야기면 네이든은 정이 뭔지 모르는 남자애 이야기에요. 주인공 네이든은 약한 자폐증이 있는데, 부모가 증상을 알자마자 병원에 가서 편안하고 세련된 환경에서 친절한 의사 선생님에게 상담을 받고 아버지는 네이든과 성격이 잘 맞고 아버지가 죽은 후에는 교장인지 사회복지사인지 모를 사람이 수학 교사와의 1:1 지도를 주선해주기도 하고요. 마돈나도 네이든도 이 두 영화는 당연하다는 듯 이 애들을 대하지만 그 뒤로 생각이 드는 복지와 관련된 인력과 지원금이나 사람들의 성의 같은 게 자꾸 떠오르더라고요. 이 애들의 불행과 행복은 사실 영화 뒤편 어딘가에서 비롯되었다는 생각을 하면서... 자폐증 아이로부터 나오는 감정적인 불협화음과 부당함을 이해해주고 받아주고 삶을 살 수 있도록 준비해주는 모습이 배려자의 관점에서 서술되는 시혜가 아니고, 수학에 빠진 아이 마음 속에서 그 아이의 마음과 기대와 함께 서술되는 장면에서 울컥했던 것 같아요. 거기서 나오는 수학 문제들을 이해하는 건 아니었지만... 아침 식사로 나온 팬케잌을 먹지도 않고 잘라서 가지고 놀고 있으면 본인이 아닌 이상에야 '얘가 왜 이럴까' 하거나 '먹을거로 장난치지 마라' 하고 꾸짖을 수도 있겠죠. 영화는 그런 측면이 나올 틈도 없이 삶과 미래에 대한 네이든의 기분을 공감시켜서, 네이든의 관점을 따라가면 그 팬케잌들은 진짜 먹을 것이 아니고 영감의 도구로서 보여요.


'문제'라는 게 해소되어야 할 외적 조건, 이라고 한다면 불행 없는 삶은 행복이겠죠. 네이든에서 생활 유지로 힘들어하는 사람은 없지만 그렇다고 문제가 없는 건 아니에요. 얼룩을 지우기 위해 양동이를 비우고 닦고 하다 보니 얼룩이 양동이의 일부였다는 사실을 깨닫는 것 처럼, 없어져야 한다고 생각했던 불행들을 치워버리면 삶이라는 틀이 고통의 근원이었다는 사실을 알죠. 하지만 우리가 어떻게 하든 고통에서 벗어날 수 없다고 해도 <마돈나>에서 나오는 고통은 그냥 배제되어야 한다면 <네이든>에서의 고통은 안고 가야하는 거겠죠. (뭔 소리야?)


'나는 혼자라고. 의사 선생님도 부모님도 그건 재능의 댓가라고 말했지만, 재능이 없으면? 그냥 혼자 아냐?'


상대의 마음이라는 걸 어떻게 알겠어요? 중국인 여자애는 네이든과 잘 친해지고 둘이 잘 맞아요. 여자애가 진실하고 영민하기에 그랬는지, 그냥 열쇠를 끼웠는데 딱 들어맞은 것 처럼 운이 좋은 건지, 아무튼 빠르지도 느리지도 않게 애정의 합이랄까, 그런게 착착 맞는 듯 해서, 참 보기 좋았죠. 반면 네이든의 엄마는 영화 마지막에 가서야 네이든의 마음에 접근할 단서를 손에 넣게되는데, 그 단서라는 게 어떻게 보면 참 부조리해요. 인간 관계의 예의나 성의에 대한 보은 같은 거하고는 전혀 상관이 없죠. 저야 그냥 상대와 가까워지길 원한다면 상대의 부조리까지 품어야 하겠지, 그게 이해라는 거겠지, 하고 생각할 수 밖에요.


네이든의 결말도 '어디서든 어떻게든 살고 있다...'는 식으로 끝나는데, 자막이 붙거든요. 보통 실화 바탕으로 해서 자막으로 끝나는 영화는 위대한 업적(앨런 튜링이 남긴 연구들은 사후 컴퓨터라는 개념을 창조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이 되었다...)을 이야기 하거나 아니면 어떻게 죽거나 종신형을 받고 무슨무슨 감옥에 수감되어 있다(조디악이라던가).. 이런 식이던데, '구글에 취직했다 나와서 회사를 차리고 여자친구와 결혼해서 행복하게 살고 있다'라는 자막을 보니 이 무슨 평이한... 현실적인 해피엔딩인가. 싶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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