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원의 쿠데타

2015.07.26 23:45

말하는작은개 조회 수:1014

우리 원장님은 지역사회에서 이름난 분으로, 부친에게 물려받은 어린이병원을 30년간 운영하며 가꾸어 오신 분이셨어요. 그분은 아이들에게 병원이 무서운 고통의 장소라기보다는 편안한 회복의 공간이었으면 하셨어요. 그것을 위해서 원장님은 병원에 간식으로 먹을 수 있는 달콤한 외국산과자와 세계의 이야기를 담은 동화책, 알록달록하게 색칠할 수 있고 손에 묻지 않는 크레파스와 스케치북을 곳곳에 마련하여 두셨지요. 그중에서도 원장님이 가장 마음에 들어하신 것은 공룡피규어들이었습니다. 병원 복도의 유리전시장에 서있는 공룡들은 원장님이 일곱살때부터 모아오신 것인데, 천가지가 넘었고 개중에는 크기가 사람만한 공룡도 있었는데 해외에서 배를 타고 날아온, 재현도가 높은 값진 물건이었어요. 원장님은 그들을 사랑했어요. 매일저녁 집에 돌아가기 전에 장식장에서 꺼내 애정어린 손길로 어루만지시면서 놀으셨지요. 저는 그런 원장님을 존경했습니다. 의사로서 열심일 뿐만 아니라 그는 어떤 경지에 이른 것처럼 보였어요. 수레전차의 양바퀴가 거세게 굴러가듯이, 직업과 취미가 서로를 균형있게 지탱하면서, 언덕아래의 행복을 향해 무한대의 속도로 돌진하고 있는 분이셨으니까요. 저는 그분을 딸처럼 따랐습니다.


저는 병원정보부에서 일했습니다. 병원안에서 핵심적인 부서라고나 할까요. 표면적으로는 보통 회사의 인사과의 역할이었지만, 원장님의 친위대같은 성격의 부서였다는게 정확할 거에요. 커다란 병원이었기 때문에 병원안에서는 알력다툼을 하는 세력들이 있었는데, 그뒤에서 어떤 공작이 벌어지고 있는지 틈틈이 감시하고 원장님에게 보고하는 임무를 맡은 게 저희들이었습니다. 가십거리들은 밝은 색의 인테리어인 어린이병원안에서 공업도시의 스모그처럼 둥둥 떠돌아다녔습니다. 원장님의 자리를 노리는 사람들이 있었지요. 원장님은 나이도 많았고 슬하에 자식도 없었으니까요.


그러다 어느날 덜컥 돌아가시고 말았습니다. 병원은 뒤집어졌습니다. 기존의 원장님을 따르던 파와 그의 빈자리에 자신들이 지지하는 새로운 원장을 세우려는 급진개혁파가 나뉘어졌는데, 급진개혁파는 병원정보부와 몇몇 부서를 저격하며 목덜미를 잡아 끌어냈어요. 새하얀 가운을 입은 두 세력이 병원 로비에 나란히 섰어요. 그 광경은 위엄있고 멋져보이기도 했지요. 상대편은 병원 장부를 들고 오더니 트집을 잡았습니다. "죽은 원장의 지시를 받아 돈을 빼돌렸을거야, 분명히!" 반대편에 서있던 저는 비웃으며 가운에 손을 꽂은 채로 배를 내밀어 뽐내보였어요. "아하! 제가 횡령을 했다구요?" 한 남자의사가 눈을 빨갛게 부라리며 적극적으로 나서더니 입에 침을 발라 장부를 넘기면서 펜으로 동그라미를 치기 시작했습니다. 우리 병원과 단체계약한 근처 유치원들 중 백여개의 유치원에 빨간 동그라미가 귀엽게 그려졌습니다. 또 제 일기장을 훔쳐와서는 단상에 올라가 소리내어 치부를 읽었습니다. 저의 명예에 흠집을 내려는 거죠. 세상에, 그만하세요! 화가 나서 부들부들 떨자 그들은 우리들을 밧줄로 묶어서 로비에 꿇려앉히고, 원장님의 공룡피규어들에 도색스프레이를 뿌려 훼손시킨 다음 청소도구를 넣어놓는 구석 창고에 처박아버렸어요. 저는 혼자 몰래 도망쳤습니다. 증인으로 유치원장들을 불러왔어요. 유치원장들은 제가 횡령한게 아니라고 증언해주려 달려갔습니다. 그사이에 간호사와 합세하여 창고로 쳐들어가 행주로 공룡들의 얼굴을 말끔하게 닦아내었죠. 그러자 공룡들이 살아났어요! 공룡들은 복수해주자며 장난감이빨을 딱딱거리며 우르르 몰려갔어요! 급진개혁파들은 난리도 아니었습니다. 의사들은 병동으로 실려가서 줄줄이 누워있는 환자신분이 되었습니다! 쿠데타는 이렇게 끝이 났어요. 우리는 마땅한 새 원장님을 찾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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