엉망진창 영화번역(들)

2010.11.29 00:54

Ylice 조회 수:3832

영화 좋아하시는 분들이야, 번역된 자막으로 보는게 본래의 대사가 가진 맛을 얼마나 깎아먹는지

익히들 아시죠. 그 번역이란 것들이 얼마나 허술한지도.

 

어제 에이리언2의 블루레이를 보다가 마지막에 리플리가 파워로더로 에이리언퀸과 맞붙는 장면에

이르렀습니다. 그 순간 리플리가 유명한 대사를 내뱉죠. 'Get away from her, you bitch!'    근데 아니나다를까,

자막으론 걍 '그애 한테서 떨어져!'라고 온건화 되어서 나오더군요. 보신 분들은 아실테지만, 에이리언2편은

새끼를 데리고 있는 두 종족의 '암컷들'간의 대결이 큰 포인트인 영화입니다. 여기서 'bitch'라는 말은 단순히

욕으로 치부될 말이 아니라, 영화의 분위기에 따른 카타르시스를 팍 터뜨려주는 역할을 하는 단어죠. 그 때문에

3편의 트레일러에서 주요 카피문구 중 하나가 'The bitch is back' 이었던 거구요. 

 

블레이드러너 블루레이를 볼 때도, 이 점은 마찬가지 였습니다. 마지막에 로이배티가 데커드에게 SF영화사상

길이남을 명대사를 읊는 장면에서, 자막은 그 대사가 가지는 처연하고 폭넓은 뉘앙스를 다 까먹어버리고  제멋

대로 번역되었더군요. 차라리 인터넷에 도는 다운로드영상에 맞춘 아마춰들의 자막이 훨 낫습니다. 적어도 그들은,

그 대사에 애정을 가지고 자막을 만들었으니까요.  

 

국내 번역자들은 영화의 이런 분위기를 잡아내지 못하는 경우가 태반이에요. 최신영화 같으면 그나마 좀

이해를 하겠습니다. 하지만 이런 오래된, 명작의 반열에 오른 영화들에 대해서는 좀 그에 맞는 취급을 해주면

좋겠군요. 물론 자막번역자들 에게도 나름의 룰이란게 있어서, 폭넓은 대상의 감상을 고려해 대사당 3초안에

읽히도록 번역한다든지, 한 문장에서 다음문장으로 넘어갈때 가능한한 3,4초의 시간차를 둔다든지 하는건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많은 단어들이 부득이하게 걸러진다는 것도. 하지만 자신들이 만든 자막이, 대부분의

관객들에게 있어서 그 영화에 대한 평생의 인상을 좌우한다는 기본적인 사실을 망각하지 말아줬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그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있어선 그 자막이 평생의 소장물로 남는다는 사실도.

 

이건 뭐, 영어권 영화에만 국한된 문제는 아니죠. 일본영화나 아니메의 경우 디스크 출시 때엔 오덕들의 입김덕에

대사가 제법 다듬어지지만, 극장상영 시의 번역은 엉망입니다. 제가 영어는 까막눈이지만 일본어는 알아듣기 때문에

잘 알죠. 최근의 경우로, 썸머워즈의 한 장면에서 여주인공이 남주인공을 고향집에 데려가자 친척남자들이 '남친이랑

그거는 했냐'며 놀려대는 장면이 있었습니다만, 자막은 그 농담 자체를 아예 없었던걸로 무시하더군요. 영상의 가위질

만이 문제가 아니라는걸 번역자들 붙잡아놓고 설명이라도 해줘야하는건지. 

 

글고 보니 예전에 듀게분 중 한분이 이런 말을 한게 생각나는군요. 우리나라 대중문화의 질적발전이 더디고 한계에 부딪

히는 큰 이유중에 하나가 바로 번역의 부실이라고 했던. 영상물이든 출판물이든 다 포함해서 말입니다.

영어 배우는 사람들은 차고넘치는데 다들 뭐하나요 정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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