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떠나고 남아 있는 것

2015.09.15 22:37

Kaffesaurus 조회 수:1512

사람과 헤어지면, 헤어진채로 시간이 지나가면, 나는 먼저 그가 어떤 냄새를 가졌었는 지 잊어 버린다. 내가 냄새에 대해서는 articulate 하지 못하는 사람이기 때문인지, 누군가의 채취는 언제나 내 기억속에서 가장 잡기 어려운 흔적이다. 그 다음은 목소리. 잊지 않을 것 같지만, 혹은 기억하지만 사람의 생김새도 다르게 기억된다. 어쩌면 내가 경험한 그 생김새로 남아 있는 건지도 모르겠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얼마 안되어서 채취는 완전히 사라졌다. 그나마 남아 있던 것도 옷들과 함께 사라졌고, 기억이 얼마나 약한지 생각지 않았던 그때, 채취를 기억하려 노력하지도 않았다. 지금도 누군가와 있으면 이 사람이 떠나면 이렇게 좋아하는 냄새도 다시 떠오르기 힘들겠구나 한다. 

그 다음은 목소리, 언젠가 아빠가 살아계셨을 때 직장과 관련된 일로 무슨 프로그램에 나오신걸 녹화한 걸 한참 뒤에 봤는데, 그걸 보면서 내가 아빠 목소리를 잃어버렸구나 란걸 깨달았다. 잡을 수가 없다. 잡기가 어렵다. 

아빠의 얼굴은 물론 잘 기억하지만 가끔 아빠는 내가 기억하는 것 보다 훨씬 작은 키의 사람이었다는 걸 잊어버린다. 나한테 아빠는 퇴근하면 어른 딸들을 안고 집에 돌아오신 분이니 그때 우리 아빠는 아주 큰 사람이었다. 

그렇지만 변하지 않고 남아 있는 게 있다. 내가 아빠와 함께 있을 때 느꼇던 감정들. 난 아빠랑 있으면 모든게 해결된다고 믿었다. 어렸을 때 병가로 집에 계셨을 때, 어린 나는 참 좋았다. 그런 상황이 경제적으로 어떤 영향을 미치는 가 전혀 모르게 한 엄마 아빠의 힘이기도 했고, 아빠가 집에 계시니까 든든하고, 아빠가 놀아주니까 좋았다. 아빠랑 가까워져서 더 좋았다. 난 좀 무슨 일이 생기면, 엄마가 몇번 말씀하셨듯이 안절부절 못하는 사람이다. 어른이 되면서 어렸을 때는 아빠가 내 아빠란 이유만으로 내가 모든지 다 잘해낼 수 있다고 확신하고 담대했는데란 생각을 자주한다. 


어제 아빠 생각을 했더니 오랫만에 꿈에 나타나셨다. 어느 스웨덴 오래된 과수원 정원 같은 곳에 누가 있는데 옆에 가 앉으니, 눈가의 아름답게 주름을 만드며 웃으시는 나의 아빠. 햇살 환한 날 그렇게 있으면서 행복하게 깨었다. 이제는 나보다 어린 아빠는 여전히 나의 아빠이구나. 

....

거북이는 다시 병원에 들어갔다. 아빠가 그립다고 종이에 그림을 그리고 우리집에 있는 제일 예쁜 공주 봉투에 집어 넣고 아빠 줄거야 했던 선물이 한테 다음주에 아빠 만나면 줘 했는데 그 다음주는 오지 않는다. 선물이 아빠가 선물이한테도 평안과 따스함과 바위같이 든든한, 그럼 기분을 느끼게 하는 사람이 되었으면, 남아 있었으면. 슬픈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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