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

저는 모든 종류의 호러 영화에 대해 약한 내성을 가지고 있어요.

시각적인 거야 왠만큼 고어한 게 아니면 그래도 비교적 참고 보아줄 만 한데, 청각적인 자극에 특히 취약거든요.

이를테면 뭔가 튀어나올 법한 분위기에 두근두근...한 상태로 경직되어 있다가 별 거 아닌 소리에 괜히 놀라고, '까꿍!'하고 그게 실제로 튀어나왔을 때 놀라고, 옆 사람 놀라는 소리 듣고 또 놀라고, 뭐 이런 식이지요.



1. 

그런고로 <크림슨 피크>의 국내 개봉 소식은 저에게는 그다지 고무적인 일이 아니었어요.

<퍼시픽 림>과 <헬보이>를 재미있게 보기는 했지만 '나는 델 토로 감독의 영화를 좋아해!' 라고 말할 정도는 아닌지라... 게다가 무섭다잖아요?

그렇게 자연스레 우선순위에서 밀려나나 했는데, 다행히 좋은 분들과 함께하는 좋은 기회가 있어 큰 맘 먹고 관람하고 왔습니다. :)



2.

저는 릭 오웬스나 다미르 도마같은 '새카맣고 치렁치렁하고 비싼데 활동성이나 내구성이 최악인' 고딕/다크웨어 브랜드를 좋아합니다.

완벽하게 같은 느낌은 아니지만, 우월한 기럭지로 딥 다크하게 차려입고 우울한 표정을 한 히들이 형아를 보는 것만으로도 크게 만족스러웠어요. 

게다가 I can't, I can't...하며 속삭이는 영국식 억양이란. 음, 몇 년 전에 둘째 동생이 <셜록>을 보고 꽂혀서 영국에 유학 간다고 난리치는 걸 만류하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어요. 영국 남자가 이렇게 위험한 겁니다 여러분(?)

영상미에 대해서는 굳이 저와 같은 취향이 아니더라도 많은 분들이 스틸컷이나 예고편 등을 통해 기대하는 바와 크게 다르지 않을 거에요.



3. 

저는 이 영화를 굉장히 몰입해서 봤어요. 거기에는 여러가지 이유가 있을 거에요.

 

첫째로, 극을 이끌어가는 배우들의 연기 자체가 나쁘지 않습니다. 그 시대를 살아본 것도, 또 그 시대를 다루는 작품들을 많이 접해본 것도 아니지만, 그래도 개연성의 영역에서 놓고 보면 충분히 있을 법한 캐릭터들이고 그걸 잘 살렸거든요.

둘째로, 음악을 포함한 음향효과가 '공포를 위한 공포'로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본연의 어둡고 음울한 분위기와 잘 맞아떨어지는 것도 좋았어요.

셋째로, 낮에는 조신하다가 밤에는 머리를 풀고 희대의 기타리스트와 빙의합체(...)하여 급격하게 늠름해지는 미아 와시코브스카의 모험활극도 빼놓을 수 없겠지요. 

내상이라는 핸디캡만 없다면 진작에 다 썰어버리고 자력으로 탈출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재미있다는 뜻입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유령이 나오잖아요! 언제 어떻게 튀어나올지 모르니까 영화가 제공하는 모든 종류의 자극에 민감하게 반응하게 되는 게 가장 주효했던 것 같아요.

단지 마지막 결말만을 위해 삽입한 소재는 아닐꺼라고 생각합니다.



4.

하지만 갈등이 최고조에 달하고, 이를 해소하는 방법이 그렇게 마음에 들지는 않았어요. 그래서 그런지 돌아오는 길에 기시 유스케의 <검은 집>이 생각났어요.

공간적 배경이라던지, 그 외에 몇 가지 점들이 의외로 일대일대응이 잘 되더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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