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저런 잡담...(콘트라스트)

2017.01.15 16:12

여은성 조회 수:679


 #.빌어먹을 일요일이네요. 요즘 느끼는 게 있어요. 좋은 인생을 산다는 건 어떤 인생을 사는지의 문제가 아니라는 거요. 내가 어떤 사람인지가 문제인 거죠. 기억을 다 지우고 레벨1부터 인생 게임을 다시 시작하면 지금보다는 재밌을 것 같기도 해요. 하지만 나는 나의 연속성을 끊어낼 수 없으니...생겨먹은 대로 살아야죠.



 1.뭔가 새로운 곳이 없을까 생각중이예요. 그야 서울 안에 있어야 하고, 내게 건방지게 굴지 말아야 하는 사람들이 있는-즉 일하는-곳이어야 하지만요. 이건 모두를 위한 윈윈이거든요.


 누군가가 내게 건방지게 굴면 나는 기분이 박살날 거고 내게 건방지게 군 녀석은 얼굴이 박살날 거니까요. 아무도, 아무것도 박살나지 않고 새벽까지 시간을 때울 수 있는 새로운 곳이 어디 없을까...고민중이예요. 이제는 잘 알거든요. 무작정 나가서 그런 곳을 찾아내려 해봐야 하루를 공칠 뿐이라는 거요. 공치는 걸로 끝내도 괜찮은 날도 있었지만 요즘은 공치고 싶지가 않아서요.



 2.백수로 산다는 건 정말 돈이 많이 들어요. 이유는 간단해요. 백수의 하루는 24시간이거든요.


 '모든 사람의 하루는 24시간 아닌가?'라고 되물을 수도 있겠지만 아니예요. 직장에 다닌다면 실제로 그 사람의 하루 중 근무 시간은 최소 8시간, 왕복에 적게 잡아도 1시간. 직장에 가기 전에 매무새를 다듬는 시간 15분, 직장에서 졸다가 욕먹지 않기 위해 반드시 자야 하는 시간 최소 6시간으로 잡으면 백수가 아닌 사람의 하루는 9시간 이하인거예요. 그들에게 있어 하루에 15시간가량은 '자비를 들여서 시간을 보낼 필요가 없는 시간'인거죠. 뭘 해야 할지 궁리할 필요도 없는 시간이고요.



 3.하지만 백수는 24시간 자비를 들여서 해결해내야 해요. 교통비 지원도 안 나오고 식비 지원도 안 나오죠. 게다가 뭔가가 되기 위해, 뭔가를 더 잘 하기 위해 사는 게 아니라면 하루 24시간의 시간이라는 건 자원이 아니라 무거운 짐인 거예요. 


 뭘 잘 하고 싶거나 아무것도 되고 싶은 게 없는 사람이 아무것도 안 하고 가만히 있으면 그 사람은 돌아버리거든요. 돌아버리지 않기 위해 무언가를 해야 하는데 자본주의 사회라서 뭔가를 할 때마다 돈이 들어요. 백수의 시간이라는 건 자원이 아니라 돈을 미친듯이 빨아먹는 짐인 거죠. 


 잘 하고 싶거나 되고 싶은 게 있던 시절엔 마음속에 작은 오아시스를 그려낼 수 있어요. 그 오아시스에 앉아서 언젠가 무언가를 잘 하게 된 나...되고 싶은 무언가가 된 나를 상상해보면 시간이 꽤 잘 갔어요. 이젠 그런 것도 없죠.


 어쨌든 하루 24시간이 누구의 것도 아닌 다 내 것이라면 완전 짜증나는 거예요. 물론 다른 누구의 것이라도 짜증나긴 하지만요. 사실, 사람에게 자유라는 개념은 없는 것 같아요. 중요한 건 사이클 안에 존재하는 콘트라스트거든요. 흰색은 검은색과, 검은색은 흰색과 같이 있어야 서로의 존재감이 확실해지는 것처럼 이완을 위한 긴장-긴장을 위한 이완이 있어야 자유시간이 의미가 있는 거예요. 



 4.휴.



 5.요즘 느끼는 건데 인간은 스스로만을 위해 살면 그렇게 열심히 살 수 없는 것 같아요. 누군가를 위해 살 때 더 최선을 다할 수 있고 더 많은 잠재력을 끌어내며 살 수 있는 거죠. 아마 가정을 책임지는 남자는 자신의 잠재력을 더 많이 끌어낼 수 있을거예요.


 하지만 전에 썼듯이 충성심으로 보답받지 못할 것 같으니, 가정은 됐어요. 내 잠재력은 끌어내질 일이 없겠죠.



 6.매일 뉴스룸이 끝날 때까지는 어느 지역으로 갈지를 정해야 해요. 왜 새로운 곳에 가는가...평소에 가던 곳의 사람들이 싫어진 거냐고 하면 그건 아니예요. 


 하지만 모든 건 양면이니까요. 보러 간다는 걸 뒤집으면 보여지러 간다는 거잖아요. 그리고 보러 가는 것보다 보여지러 가는 게 더 재미도가 높거든요. 이미 나를 잘 아는 녀석들에게 보여지러 가는 건 별로 재미가 없어요. 그들은 내가 다음 순간에 뭘 할지 전부 다 알고 나도 그들이 다음 순간에 뭘 할지 전부 다 아니까요. 어차피 같은 돈을 쓸 거라면 새로운 녀석들에게 나를 보여주러 가는 게 더 낫죠.



 7.새로운 녀석들을 마주했을 때 그들이 뻔하지 않음을 연기해내는 방법을 보면 여섯 시간이 정말 쏜살같이 가요. 물론 그들을 깊게 알고 싶지는 않아요. 왜냐면 사람은 사람이니까요. 사람은 친해지면 뻔하지 않음을 연기하는 걸 그만두거든요. 연기하는 걸 그만두면 뻔한 사람만 남는 거죠. 그야 인간은 모두가 각자의 특별함을 가지고 있겠지만...그런 건 보려고 하는 사람에게나 보이겠죠.


  어쨌든 그들에게서 배울 점은 분명히 있어요. 새로운 녀석을 볼 때나 새로운 녀석에게 보여질 때의 퍼스트 컨택에서 얼마나, 어떻게, 어떤식으로 연기력을 발휘해야 하는지에 대해서 말이죠. 첫인상은 오래 가거나 끝까지 가는 거니까요.



 8.왜냐면 이 안전한 세상에선 그렇거든요. 야만의 세상에서 살았다면 총이라는 건 쏘기 위한 도구겠지만 문명 세계에 살고 있으니 총은 오직 겨누기 위해서만 있는 도구예요. 그리고 모두가 알죠. 문명 세계에서 총이란 건 쏴버리면 쏜 놈이 지는 거라는 거요. 결국 이 세상엔 총을 쏘는 놈은 없고 총을 쏘겠다고 말만 하는 놈들만 잔뜩 있게 된 거죠. 


 그래서 연기력과 연출력은 중요해요. 총을 쏠 일 없는 세상에서는 실제로 얼마나 강하냐보다 얼마나 강해 보이냐가 중요하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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