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실에 대한 잡설

2019.08.22 06:28

어디로갈까 조회 수:850

0. 조국 후보자. 황우석 이후 떠오른 가장 '뜨거운 감자'네요. 황우석 사태 때처럼 윤리와 진실 여부를 두고 언론과 지식인, 네티즌이 뒤엉켜 격돌하고 있습니다. 근데 게시판마다 비판의 초점이 으깨진 토마토처럼 중구난방 흩어져 있어, 뭘 중심으로 힘을 모아야 할지 사람들이 더 헷갈려 하는 것 같아요.

1. 진실은 알몸이지만 얼굴을 가리고 있다죠. 그 얼굴을 본 사람은 과연 누구인가? 라는 탐색으로 어떤 문제/인물의 배면이 드러날 때마다 세상이 시끄럽습니다. '얼굴을 가린 신부新婦여, 너의 모습이 내 삶의 중요한 조건이니 베일을 벗어다오,'라는 은유가 생각나는 며칠입니다.
가린 것도 그 자체로써는 하나의 드러남이기에, 형형한 진실의 빛을 쬐지 못한 채 민주사회의 시민은 불투명한 사안들 속에서 먼지를 일으키며 쇠잔해가고 있군요. 격렬하게, 혹은 서서히.

그러나 한편 생각하면 '얼굴 가린 신부'란 그가 포함된 우리이기도 합니다. 삶의 기본 형식이 기다림인 이유는 우리가 자신의 얼굴을 보지 못함에 있죠. 자신의 진실을 스스로 가리고 짐짓 '모른다'고 하는 일이, 우리 삶의 방식이고 표정이며 심지어는 지혜이기까지 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2. '시간은 진실을 드러내 보인다.' 소포클레스의 <오이디푸스 왕>에 나오는 문장입니다. 소포클레스에게 진실이란 오이디푸스가 기억/인지하지 못한 과거 행위들 총합이 보여준다는 의미였어요. 
정치계의 검증이 이뤄질 때마다 한 인물의 정체성이 둘로 쪼개지는 것, 조사하는 자가 실은 조사받아야 할 자라는 걸 목도하는 게 참 적지 않은 스트레스입니다. 

3. postfaktisch.  3년 전 독일 언어협회가 올해의 언어로 뽑은 단어입니다. 영어로 post-truth 정도의 뜻이에요. (옥스포드 사전이 올해의 단어로 뽑기도 했음.)
Fakt는 fact에 해당하는 단어고 truth는 바로 fact를 뜻합니다. 즉 사실을 '벗어난' 또는 사실과 '상관없는'이라는 의미의  단어조합.
기묘한 말입니다. Post-truth라는 조합 자체가 기묘하죠. '탈 진실' -  감정에 호소하기 위해서라면 진실이든 사실이든 모두 무시하고 말 자체의 놀이로 바꾸는 행위가 이 말에 담겨 있어요. 실제와 상관없는 말장난.

4. 청문회를 기다리며, 저는 조국 후보가 Post-truth라는 아무말 대잔치를 보여주시지 않기만을 바랄 뿐입니다. 그의 설명/해명이 안타까울지 경멸스러울지 조마조마합니다. 이 사회가 어떤 거짓과 위선을 통하지 않고서는 바라보기조차 어려운 세계라는 걸 부디 그가 새삼 입증하지는 말기를...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공지 제 트위터 부계입니다. [3] DJUNA 2023.04.01 25479
공지 [공지] 게시판 관리 원칙. 엔시블 2019.12.31 44022
공지 [공지] 게시판 규칙, FAQ, 기타등등 DJUNA 2013.01.31 352681
109401 학문과 앙가주망의 변증법 [1] 휴먼명조 2019.08.22 929
109400 뛰어, 쓰기 [1] Sonny 2019.08.22 928
109399 재미있는 돌발영상이에요. [4] 왜냐하면 2019.08.22 877
109398 조국 법무부장관 관련 국민청원, 강남좌파 왜냐하면 2019.08.22 601
109397 한일군사정보보호협정 종료 결정 [11] skelington 2019.08.22 1245
109396 공정과 공평의 문제 [7] skelington 2019.08.22 894
109395 조국이 그나마 반발없이 법무장관이 되기 위한 한가지 방법 [6] 모스리 2019.08.22 1249
109394 조국 - 양파 같은 사람 [40] ssoboo 2019.08.22 2017
109393 오늘의 가필드 엽서 (스압) [4] 파워오브스누피커피 2019.08.22 417
109392 조국 교수의 청문회를 기다리며 [35] Isolde 2019.08.22 1633
109391 듀게 오픈카톡방 [3] 물휴지 2019.08.22 365
109390 휴대폰을 바꾸면 기존의 게임은 어떻게 되나요? [10] 산호초2010 2019.08.22 2285
109389 스파이더맨은 다른 사정이 있다는 소문이 있네요. [6] 가라 2019.08.22 1068
» 진실에 대한 잡설 [9] 어디로갈까 2019.08.22 850
109387 이런저런 정치판 잡담...(칩, 10시간) [4] 안유미 2019.08.22 786
109386 [오늘의 발명품] 자동차 알림판 [5] underground 2019.08.22 492
109385 이공계 전공자 입장에서 본 문제의 논문 [28] 슈리 2019.08.21 2025
109384 이것저것 아이돌MV들. [2] 메피스토 2019.08.21 524
109383 10년 만에, 나이 들고 같은 책을 다시 읽기 [2] Sonny 2019.08.21 651
109382 한일군사정보보호협정(지소미아) 연장 여부 22일 발표..靑, 끝까지 '전략적 모호성' 유지 [22] eltee 2019.08.21 977
XE Log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