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이야기'를 최대한 정확하게 정의내려야 생산적인 대화가 가능할 것 같습니다. 커뮤니티에서의 정치 이야기란 대다수가 특정 정치인과 정당에 대한 호불호입니다. 특정 언행이 현 시국에 적절한지, 혹은 지난 행보가 공익에 부합하는지를 놓고 그의 자격을 가리는 에토스 논쟁이 일어나곤 합니다. 그걸 제외하면 어느 정치인의 어느 언행이 전체적인 판세에 끼치는 영향이나 구도를 이야기하기도 하구요. 


요새 한동훈의 자녀 입시 문제가 핫합니다. 공정을 외치던 정치인이, 자신만의 사회적/ 경제적 특권을 이용해, 자식이 좋은 대학에 갈 수 있도록 특혜를 밀어준다는 점에서 이 이슈는 조국의 자녀 입시 문제와 완전히 판박이입니다. 심지어 윤 측의 인사 지명에서 정호영이 논란의 여지 없는 부정입학 의혹으로 장관 자리에서 낙마할 처지가 되었다는 것만으로도 한동훈의 문제는 가볍지 않습니다. 단 한명이어도 강한 반발감을 불러일으킬 수 밖에 없는 이 문제가 이제 윤석열 인사라인의 문제, 국힘당 쪽 인물들의 문제로 번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조국을 그렇게나 공격하던 국힘당 쪽 인사들이, 조국과 유사한 문제를 가진 후보들을 수면 위로 올려놨다는 건 오만에 가깝게 느껴집니다. 다른 비리가 있으면 몰라도 최소한 자녀 문제는 없는 후보를 올려놨어야 체면 치레라도 했겠죠.


이 문제를 과연 국힘당 / 윤석열 지지자들은 어떻게 보고 있을지 극우보수 성향 남초 커뮤니티를 둘러봤는데 놀랍게도 별 말이 없습니다. 글이 올라와도 조국을 비판하던 때만큼의 공격적 포지션은 전혀 아닙니다. 오히려 본인들끼리 별 문제아님~ 그러면서 심지어 조국건 때도 자긴 별로 욕은 안했으니 한동훈 건도 오케이라는 식으로 가더군요. 전반적인 사회 분위기도 그렇습니다. 조국 이슈를 두고 '사태'라고 표현하며 그렇게나 시위하던 대학생들은 지금 다 뭐하나요? 정호영 때도 조용해, 한동훈 때도 조용해... 저는 민주당 지지자가 전혀 아니지만 이런 식의 뻔한 반민주적 포지션들은 욕이 나올 지경입니다. 정의, 상식, 공정... 그 단어들이 국힘당 쪽 인사들이 위반하면 그냥 원래 그렇고 그런 문제가 되는 것인지? 


이런 불균형은 지난 대선 때부터 계속 느껴왔습니다. 윤석열의 별의별 기행 (기차 의자에 발 올리기, 상습적 지각, 유세 현장에 노쇼, 전두환 옹호 발언, 선제 타격 발언, 120시간 발언 등... 많기도 많네요) 을 아예 가치판단을 하지 않아버리는 것입니다. 이재명쪽의 이슈는 죽어라고 까대고 별의별 분석을 다 올립니다. 그러나 윤석열쪽의 이슈는 서로 쉬쉬하면서 말을 아끼고 일단 판단을 보류한 채로 본문을 올리고 댓글로는 잘 모르겠다거나 문제는 아니라고 해버립니다. 아주아주 극명한 잘못이나 비리가 아니면 그냥 말을 하지 않습니다. 양쪽 다 판단을 해보는 게 아니라 한 쪽은 아예 검증도 안하고 실망도 표현을 안합니다. 완전히 기울었어요. 


공론장에서 당파성을 완전히 제거할 순 없다지만 그래도 어느 정도는 균형이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이제는 그런 최소한의 균형도 다 무너졌다는 생각이 듭니다. 왜냐하면 글을 안올려버리거든요. 게이트키핑이 너무나 편파적으로 이뤄져서 어느 커뮤니티의 정파성을 측정하는 거 말고는 별 의미가 없을 정도입니다. 이 동네 사람들은 이렇게 반응하는구나 정도. 문제는 20대 (남자)입니다. 이번에도 1번남 2번남 이슈가 떠올랐지만 공개커뮤니티에서는 20대 남자들의 의견이 지독할 정도로 편향적인 것 같습니다. 


어쩌면 이 모든 게 단순한 세대나 성별의 문제라기보다는, 정치 이야기의 형태 자체에 그 문제점이 있다는 생각도 해봅니다. 어느 정치인이 좋아/나빠 로 팬과 안티의 대립 형태만 되어가니 내가 팬인 정치인에게는 비정상적인 관대함을, 내가 안티인 정치인에게는 광기에 가까운 분노를 뿜어내게 됩니다. 그러다보니 가치판단의 문제가 점점 취향의 영역으로 가버립니다. 여기에 계급적 욕망과 '위선자를 그냥 악인보다 미워하는' 군중심리가 결합되면 판은 극우보수들에게 극히 유리한 시소가 되는 거죠. 이번 조국 이슈를 두고 '큰 잘못은 없다고 생각하지만 깨끗한 척 하다가 뒤로 그런 비리 저지른 걸 걸린 게 역겹다'고 하는 의견들이 많이 보였습니다. 실망감은 선악의 온전한 기준이 될 수 없음에도 이것이 대단한 정의감처럼 포장됩니다. 이러면서 행위와 선택에 대한 문제가 아니라 인물 개개인에 대한 판단만이 이어집니다. 이런 판에서는 그냥 나쁜 놈이 착한 척 하는 나쁜 놈보다 점수를 더 따는 해괴한 현상이 일어납니다. 에토스의 양비론 전쟁만 일어나죠.


요새는 정치 이슈를 조금 더 사회적으로 돌려서 이야기를 해야겠다는 생각도 합니다. 저번에 정성일 평론가가 사회적인 것과 정치적인 것을 구분할 수 있어야 한다고 말을 했는데 그 말이 혹시 이런 말이었나 싶어서 좀 고민이 되는군요. ( 까이에 뒤 시네마에서 편집장이 기자들한테 했던 말이라고 했든가...) 아무튼 공개 커뮤니티의 정치 이야기는 별 의미가 없어보이고 어떻게 하면 사회 공익을 위해 소비할 수 있을지 시선 자체를 바꿔봐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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