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게 벌써 4년 전 영화에요 여러분! 런닝 타임은 1시간 55분. 어차피 저 빼고 다 보셨을 테니 스포일러 신경 안 쓰고 막 적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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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글 포스터를 넣을까... 했는데, 결국엔 이게 미국 영화 아니겠습니까.)



 - 좋게 말해 시골, 나쁘게 말해 허허벌판으로 이사를 가는 한국인 이민 가족의 모습으로 시작합니다. 아빠의 고집으로 결정한 이사 같은데 가서 보니 이제부터 살 집이라는 건 트레일러였구요. 게다가 '정원을 가꾸겠다'며 약을 팔던 남편의 속내는 거기에서 농사를 지어 그걸로 부자가 되겠다는 거네요. 가뜩이나 아들래미가 심장 질환이 있어서 언제 병원에 급히 가야할지 모르는데 이딴 곳으로, 기약도 없는 농사에 가족의 명운을 지 맘대로 걸면서 이사를 감행한 남편 때문에 엄마는 속 터지고 환장할 지경이지만 그래도 일단 참아줍니다. 우린 가족이니까! 함께 해 보자!!


 그런데 둘이 다 출퇴근하며 일하고, 다녀온 후에도 농사 일을 해야 하는 이 상황에 애 둘을 돌보기가 워낙 힘들어야 말이죠. 그래서 결국 애들 외할머니가 소환되는데... 뭔가 좀 범상치 않은 이 할머니는 기행을 벌이며 애들과 충돌을 일으키고. 이때 주인공 가정에 침투하는 수수께끼의 십자가 남자!! 게다가 이들이 선택한 지역은 남부의 아칸소주!!! 그 와중에 신자들이 한 명도 빠짐 없이 모두 백인인 교회에 다니기로 결심하는 주인공 가족!!!! 과연 이들의 미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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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80년대 벽두의 아칸소 외딴 마을에 겁도 없이 찾아온 동양인 가족이라니! 당연히 스릴러잖아요!!?)



 - 그래서 이 영화의 가장 놀라운 점은 이거였네요. 저런 수상하고 위험한, 매우 스릴러 무비스런 설정들이 덕지덕지 붙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결국 아무 격한 사건도 안 벌어지는 평화로운 이야기라는 거... ㅋㅋㅋ 초면에 인종차별 드립을 날리며 주인공 자식들에게 접근하던 어린이들은 다들 알고 보면 아무 악의 없는 좋은 친구들이 되고. 교회 가득 백인들도 결국 아무 해도 안 끼치구요. 시작부터 내내 수상하기 짝이 없는 동네 광인 아저씨는 끝까지 든든한 우리 편에다가... 뭐 그렇습니다. 결국 이 영화에 나오는 인물들 중 나쁜 놈이라곤 아빠 뒷통수를 날린 식료품 상인 한 명 뿐인데요. 그렇담 이 영화의 주제는 "미국 사는 한국인들은 믿으면 안 된다!" 라는 거였던... 크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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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니 왜 끝까지 도움만 되는 건데!!!?)



 - 결국 미국으로 이민 간 한국인들 이야기 세 편을 주루룩 봤는데요. 정말로 세 편의 이야기가 모두 판이하게 다른 게 재밌었네요.

 그리고 이 영화는 그 중에서도 가장 '원형적인 이야기'라고 생각하며 봤습니다. 정말 전형적인 이민 수난사이고, 가족 복원 드라마인데... 여기에서 '이민'이라는 키워드를 빼 버려도 그렇게 어색하지 않을 것 같은 이야기였어요. 말하자면 영화의 등장 인물들을 싹 다 백인들로 바꾸고 거기에 맞춰 디테일들 살짝 수정해 주면 그냥 그럴싸한 '힘들었던 시절을 함께 극복해낸 미쿡 소시민 가족의 이야기'가 되겠다는 느낌. 앞서 본 두 편은 그게 안 되거든요.


 아마 그래서 세 영화 중에 유독 '미나리'가 그렇게 뜨거운 호응을 받을 수 있었던 게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예전에 자기들이 자주 만들었던 이야기인데, 그걸 동양인들이 자기네 버전으로 업데이트해서 보여준 거죠. 그것도 세련되게, 감동적으로 만들어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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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니 왜 바로 절친이 되는 건데!!?)



 - 하지만 그렇다고해서 이 영화의 한국적인 코드들이 약하다는 건 또 전혀 아니구요. ㅋㅋ

 일단 윤여정 여사님의 할매 캐릭터가 참 압도적이니까요. 사실 어찌보면 이야기의 주인공은 윤여정을 뺀 나머지 네 가족이고, 할매는 거기에 얹히면서 사건을 일으키는 캐릭터... 에 가까운데요. 어쨌든 등장하는 그 순간부터 마지막까지 시선을 다 끌어가며 존재감을 과시하는데, 이 할매가 하는 짓들이 정말로 매우 격하게 '한국적'이란 말입니다.


 그리고 이들의 대화 속에도 계속해서 한국적인 코드가 자연스럽게 녹아들어가는데 그게... 영화를 보고 나서 이것저것 찾아보고서야 알았지만, 저도 제대로 캐치 못한 디테일들까지 있고 그렇더라구요. 미국에서 태어나 자란 감독이 직접 쓴 이야기인데, 뭐 당연히 일생 동안 보고 자란 부모님들 모습을 반영한 거겠지만 그래도 참 꼼꼼한 각본이구나. 하고 감탄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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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니 왜 안 괴롭히는... ㅋㅋㅋ 그만하겠습니다.)



 - 교회 얘기가 계속 나오는 것도 인상적이었는데요. 듣던대로 미국 간 한국인들에게 교회란 참 소중한 것이구나... 싶으면서 극중에서 '한국인들끼리 모인 교회'에 대한 디스가 나오는 걸 보고 웃었구요. (20세기에 주변 사람들에게서 실제로 그런 얘길 종종 들었습니다)

 그리고 다들 아시다시피 정말 기독교적인 영화잖아요. 물로 시작한 후에 불로 마무리하고 중간에 뱀도 출연해 주고요. 주요 등장 인물들 이름이 뭐 야고보에 다윗에 바울. 게다가 감독은 또 이삭이고!! 왜 다 남자들이냐! 싶기도 했지만 뭐 한예리와 윤여정, 그리고 딸까지 모든 여성 캐릭터들이 다 최소한 야고보씨보단 좋은 사람들로 묘사되는 것 같아서 그러려니 했습니다.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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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백인들 우루루 나오는 평범한(?) 미국 영화 속에 나올 때는 별로 안 그랬는데. 이 이야기 속에서 보니 정말 한국 남자처럼 보이는 게 신기했어요. 각본도 잘 썼고 배우도 그만큼 잘 했던 거겠죠.)



 - 근데 이게 은근히... 아빠 입장이 많이 강조되는 이야기라고 생각하면서 봤는데요. 그 아빠놈이 사실 보면 만악의 근원이잖아요. ㅋㅋㅋㅋ 70년대, 한국인, 근데 대책 없이 미국에 가서 가족 부양 부담까지 짊어짐. 등등 이 분에서 겹겹이 씌워진 옵션들을 따져가며 종합적으로 판단해 보면 전혀 나쁜 사람도 아니고 오히려 이해해 줄만한 괜찮은 사람이긴 한데요. 그래도 극중에서 활약(?)이 너무 심해요. ㅋㅋ


 반면에 등장하자마자 '응? 난 쿠키 구워주는 그런 할머니 아니야~' 라며 강렬한 포스를 풍겨주신 윤여정 할머니는 사실 겉보기만 그렇지 내내 가정에 해가 되는 게 없어요. 마지막에 그 화재 사고도 겉보기엔 사위 사업 찬스를 망친 것 같지만 사실은 그 몇시간 전에 해체가 결정됐던 가정을 한 방에 재결합해주는 역할을 하잖아요. 한예리의 엄마 캐릭터는 구구절절 공감가고 옳은 소리만 하는 멋진 사람이고. 애들은 뭐 그냥 애들이구요. 수상한 폴 아저씨는 그냥 행동거지만 수상한 스윗남이었고... 결국 아빠가 잘못한 겁니다. 아니 진작부터 300달러 내고 우물 팠어야죠. 뭐 그리 스마트한 한국인이라고... ㅋㅋㅋㅋ 네. 그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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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런 포스터도 있고. 또 애초에 감독님 자전적 요소가 많은 이야기이다 보니 아버지와 아들 이야기가 좀 부각되긴 하지만... 별로 티나지 않았고 조화롭게, 정말로 '가족'에 대한 이야기라서 좋았네요.)



 - 평소의 제 취향을 봐 오신 분들이라면 짐작하시겠지만, 그렇게 제 스타일의 영화는 아니었어요. 다시 말하지만 이게 무슨... 그러니까 마치 서부 개척 시대를 다룬 50년대 헐리웃 영화 보는 느낌으로 고전적인 스타일의 이야기라서요. 거기에 한국인 이민 가족의 역사를 이렇게 자연스럽게 녹여 넣은 건 참 대단한 솜씨라고 생각했지만 동시에 시작부터 끝까지 흘러 넘치는 압도적인 선량함(?)에 제 심신이 정화되어 녹아버리지 않도록 안간힘을 써야 했습니다... (쿨럭;;) 지금까지 본 세 편의 한국인 이민 영화들 중에 완성도는 확실히 가장 훌륭하다고 느꼈는데. 재미는 그 셋 중에서... (쿨럭쿨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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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도 계속되는 마운틴 듀 드립은 즐거웠습니다. 하하.)



 - 윤여정이 엄청 잘 했죠. 너무 잘 했지만 에... 뭐랄까. 윤여정은 아주 오래 전부터 잘 했고 그렇게 잘 하던 걸 좋은 작품에서 한 번 더 한 것 같은 느낌이랄까요. ㅋㅋ 하지만 아카데미 사람들에게 윤여정은 잘 모르는 사람이거나 아님 김기영 영화 속의 그 젊은이였을 테니 확 꽂혀서 상을 바친 것도 당연하겠다 싶었구요.

 제가 이 영화를 보면서 강한 인상을 받았던 건 한예리 쪽이었습니다. 아니 뭐 다들 잘 했는데요. 이 분이 맡은 캐릭터도 가장 납득, 이입되면서 연기도 정말 좋더라구요. 특히 남편과 헤어질 결심을 하고 그 이유를 전달하는 장면이 아주 대단했습니다. 너와 내가 노력해도 안 되는 게 돈으로는 된다는 거니. 우리가 지금은 괜찮을 거다. 하지만 결국엔 잘 안 될 거라는 걸 나는 너무 잘 알고 그래서 그걸 감당할 수 없다. 대충 이런 이야기들이었는데요. 감독님이 대사도 절묘하게 잘 썼고, 그걸 또 배우가 아주아주 잘 살렸더라구요. 근데 왜 이런 분이 이 작품 이후로 3년간 영화가 없나요. 왜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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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런데 정작 한예리 단독 짤을 하나도 안 다운 받았네요. 죄송합니다... ㅠㅜ)



 - 대충 마무리하겠습니다.

 이미 적었듯이 제겐 너무나 건전하고 경건하며 기독교적인... 이야기였습니다. ㅋㅋ 

 '아주아주 잘 만듦'이라는 게 내내 느껴지지만 역시 넘을 수 없는 취향의 벽이란 어쩔 수가 없구나... 했구요.

 쌩뚱맞은 얘기지만 어째서 감독님이 차기작으로 '너의 이름은' 실사판을 추진했었는지 이해가 가더라구요. 빛의 느낌이라고 해야 하나요. 자연을 비추고 풍광을 잡아내는 느낌이 그 영화랑 꽤 어울려 보였어요. 

 어쨌든, 한예리는 훌륭한 배우였던 것입니다. 윤여정은 말할 것도 없구요. 네. 그랬습니다. ㅋㅋㅋㅋㅋ




 + 윤여정 연기 디테일 중에 가장 인상적이었던 건 '데이비사'였습니다. ㅋㅋㅋ 그 시절 할매는 물론이고, 제가 어렸을 때 제게 데이빗이란 친구가 있었다면 저도 그렇게 불렀을 겁니다. 데이비사~ 밥 먹자~~



 ++ 우리 야고보씨의 농장은 다음 해엔 과연 어떻게 됐을까요. 다음 해에도 시도는 할 수 있었을까요. 해피엔딩인 이야기이긴 했지만 그게 꼭 농장도 성공할 거란 이야기는 아니니까요. 사실 영화를 보면서 전 당연히 농사 자체가 망할 줄 알았거든요. 솔직히 수호신 바울님 덕에 성공한 게 아닌가 싶습니다. ㅋㅋ



 +++ 보면서 외할머니 생각이 났어요. 저는 데이빗처럼 외로운 소년이 아니었고 외할머니도 윤여정처럼 튀는 캐릭터는 아니었습니다만. 그래도 옛날 한국 사람들이 '할머니'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 같은 게 있잖아요. 


 어렸을 때 종종 놀러와서 한참을 머물며 손주들 보다 가시곤 했는데. 쓸 데 없이 선명하게 기억나는 일이 있어요. 외할머니께서 뭘 먹고 싶냐시길래 떡볶이 얘길 했더니 흔쾌히 오케이 하셨거든요. 그래서 왕왕 기대하며 저녁 밥상에 앉았더니... 왠 허여멀건 떡에 잘게 자른 고기가 얹혀 있는 괴상한 음식이 있지 않겠습니까. 이게 뭐냐고 이게 뭔 떡볶이냐고 화내다가 아주 호되게 혼났죠. 평소엔 자상하시지만 성깔 있는 분이었거든요. ㅋㅋ 그것이 그냥 떡볶이보다 럭셔리한 음식이었던 궁중 떡볶이라는 물건이었다는 건 수년 후, 외할머니가 돌아가신 후에야 알았죠. 그래서 요즘도 궁중 떡볶이를 보면 외할머니 생각이 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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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도 몰래 보약 버린 적 있어요. ㅋㅋㅋ 물론 마운틴 듀 장난 같은 건 절대 치지 않았습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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