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카들 선물로 "파워레인저 정글포스 Vol.2: 정글 엘리펀트를 찾아라"를 지르는 김에 덤으로(?) 질러 두었던 놈을 어제 꺼내 봤습니다. 비가 와장창창 쏟아지고 바람이 쌩쌩 불길래 꺼내 봤는데 참 좋더군요. 화면 속과 바깥이 일치되는 느낌이...;;


그냥 DVD로 지를까 고민하다가 스콜세지의 화면빨을 믿고 블루레이로 선택했는데. 잘 한 것 같습니다. 보는 내내 눈이 즐거웠어요. 게다가 다 보고 나니 최소한 한 번 이상은 얼른 더 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으니 본전은 뽑은 셈 치렵니다.


좀 쓸 데 없는 얘기지만 현역으로 활동하는 전설의 레전드 감독들 중에서 전 스콜세지에게 가장 정이 갑니다. (스코시즈 저리 가라능! 난 그런 사람 모른다능!) 가장 큰 이유는 코폴라 옹처럼 맛이 가 버리지도 않고 여전히 현역으로 활동하면서도 무작정 무게 잡는 작품만 하지 않고 마치 젊은 감독마냥 다양한 스타일을 건드려본다는 것. 흔한 표현으로 '아직도 현재 진행형' 이라는 느낌을 줘서 편한 마음으로 영화를 즐길 수 있어서 좋아요. 그리고 젊을 때부터 워낙 화면빨 날려 주시던 분이라 그 나이를 먹고 만드는 요즘 영화들마저도 낡았다는 느낌이 전혀 들지 않는다는 것도 개인적으론 참 좋아하는 부분입니다. 그래서 전 '비상근무' 마저도 아주 재밌게 봤었죠. (근데 듀게에선 이런 얘길 하면 꼭 '그 영화 나도 좋아하는데, 그런 사람 많지 않소?' 라는 리플이 달려서 적으면서 좀 무섭;)


암튼 영화는 뭐.


 - 수많은 리뷰들에서 지적하듯이 진상은 참 쉽더군요. 섬에 상륙하고 5분 정도 지나니까 '아, 디카프리오가 미친 놈이군' 이라는 건 이미 확신 수준이었고. 죽어도 해피 엔딩이 될 수 없는 영화이며 아마도 부인은 자기가 죽였겠지 등등등 수많은 생각들이 스쳐가는 것이;


 - 보안관들의 '조사' 과정이 참 별 거 없고 싱겁긴 했지만 애초에 그럴 수밖에 없는 내용이니까요. 쉴 새 없이 몰아치는 주인공의 환상 장면들만으로도 눈이 호강했고 또 그런 환상들로 엮여진 섬과 병원의 분위기와 이미지들이 너무 좋아서 그냥 즐거웠습니다. 아. 그렇다고해서 비주얼로 허술한 얘길 견뎠다느니 하는 얘긴 전혀 아니구요. 이야기도 지루할 틈 없이 잘 짜여져 있더군요. 특히나 '그토록 뻔히 보이는 진상'에도 불구하고 흥미를 계속 유지시켰다는 점은 감안하면 시나리오는 대단히 훌륭했던 듯 싶습니다. 원작 소설은 안 읽어봤는데 당연히 원작에 큰 빚을 지고 있을 테니 한 번 시도해볼까... 하는 생각도 들구요.


 - 역시 수 없이 반복된 얘기들이겠지만 디카프리오는 비주얼도 연기도 참 잘 어울렸습니다. 인셉션에서의 역할과 겹쳐서 재밌기도 했고... 암튼 절정의 꽃미남으로 '지구 여자들을 후리기 위해 외계인이 보낸 자'라는 음모론-_-의 주인공까지 되던 시절 야심차게 출연했던 '비치' 같은 영화가 망하고 한동안 슬럼프에 빠진 채 턱만 두 개가 되었던 세월을 생각하면 망가지지 않고서 참 잘 극복해내고 정착한 경우가 아닌가 싶습니다. 심지어 이젠 그 아저씨tic 비주얼마저도 매력으로 느껴지니 말입니다.


 - 음... 근데 뭔가 참 할 말이 없네요; 음악도 좋고 연기도 좋고 비주얼도 좋고 시나리오도 좋고 다 다 다 좋았는데 뭐라고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 5분만에 눈치챘던 진상을 두 시간 후 모두 확인시켜 주고 나서도 느릿한 템포로 계속 얘기가 진행되길래 사실 좀 당황하면서 실망할 준비도 했었습니다만. 정말 중요한 부분이 그 뒤에 있어서 그랬구나... 라는 걸 깨달으면서 결국 영화에 대한 인상은 끝까지 좋게 남았습니다. 근데 그냥 봤을 땐 '주인공은 치료 되었지만 고통스런 기억과 죄책감에서 벗어나기 위해 수술을 택했다' 는 걸로 별 의심의 여지 없이 받아들였는데. 생각해보니 정 반대로도 해석이 되는 묘한 대사였더군요.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생각하나 궁금해서 네이버를 찾았더니 검색어 자동 완성 리스트에 '셔터 아일랜드 마지막 대사'도 있고 뭐...;

 근데 원작에서야 어쨌든 간에 스콜세지의 영화 버전에서는 그냥 제가 처음 받아들였던 의미가 맞을 것 같습니다. 흐름상 그 상황에서 '알고보니 그냥 미친 놈이었던 거시다!' 가 되어 버리면 억지 반전에 목을 매는 이상한 영화가 되어 버린다는 느낌이라. -_-; 흠.


 - 암튼 연휴 동안 설거지, 화장실 청소하고 늘어져서 함께 보지 못 한 그 분을 꼬셔서 얼른 한 번 더 봐야겠습니다. 원래 이런 류의 반전이 있는 영화는 최소한 한 번은 더 봐도 재밌잖아요. (물론 처음 볼 때 재밌었을 경우에 말입니다) 느긋하게 비주얼에 푹 빠져서 섬 구경이나 한 번 더 하고 싶기도 하구요.

 일단 그 전에 함께 질러 놓은 12몽키즈랑 퀵 앤 데드도 봐야하니 언제가 될런진 모르겠지만 그래도 보긴 꼭 볼 겁니다. 꼭.



 + 근데 그 거대한 상처를 이기지 못 해 현실에서 도망쳐 버리는 와중에 자신의 새로운 인격의 이름을 지어 보겠다며 원래 이름 갖고 철자 놀이하며 궁리하고 있는 모습을 상상하면 왠지 웃깁니다;


 ++ 마크 러팔로는 살이 쪘을 때와 빠졌을 때 인상이 너무 달라요. 대략 10분 동안 누군지 고민했다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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