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의 감정에 대한 집착

2011.06.28 16:43

가라 조회 수:2518

어제 글들을 보고 생각이 났는데, 딱히 그분들과 연관된건 아닙니다.


친구가 있어요. 외모도 나쁘지 않고, 성격도 나쁘진 않고 공부도 많이 했어요. 

사실 외모는 평범했는데, 이상하게 실제로 보면 외모를 넘는 매력이 있는 친구입니다. 사진을 보면 '사진이 참 안나온다' 라고들 했어요.

그런 매력이 있는 만큼 좋다는 남자들도 많았던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 연애를 잘 못했습니다.


제가 알고 있는 케이스만 생각해도..

나이어린 훈남이 쫒아 다녀도 연애감정이 들지 않는다면서 몇번 만나다 말았고, 잘사는 집에서 자란 구김없는 호남 스타일의 남자가 렉서스로 모시러 오면서 쫒아다녀도 시큰둥 했습니다.

회사에서도 좋다는 남자들이 몇명 있었는데도 귀찮다면서 회사에다가는 장거리 연애 하는 남자가 있다고 거짓말을 하고 다녔습니다.


그 친구가 어떤 남자를 만나도 연애 감정이 안 드는 것은 첫사랑 때문이었습니다.

대학교 1학년때 만나서 5~6년을 사귄 첫사랑 남자가 있었습니다. CC 였구요. 

제 친구는 굉장한 부자는 아니었지만 여유있는 집의 외동딸이었고, 그 첫사랑 남자는 혼자서 장학금 타면서 공부하고, 과외알바 하면서 집에 생활비 보태는 집의 장남이었습니다. 부모님뿐만 아니라 누나도, 동생도 남자가 케어하고 서포트를 해야 하는 상황이었어요. 이런 경우 생각보다 흔합니다. 사람은 괜찮은데, 그 사람의 '조건'이 괜찮지 않은 경우요. 그게 학력일수도 있고, 경제적 여건일수도 있고, 종교일수도 있고, 집안일수도 있어요.


하여튼 이때문에 친구의 부모님은 그 남자를 반기지는 않았어요. 집에 인사를 왔는데, 어머님이 대놓고 맘에 안든다는 표정을 지었다는것 같고, 자존심이 상한 남자는 헤어지자고 했답니다. 비록 남자가 헤어지자고 말은 했지만, 친구도 그 남자의 '조건'때문에 결혼이 망설여지고 있었으니.. 실질적으로 제 친구한테 이별의 원인이 있다고 본인은 생각하더군요.


그 뒤로 그 친구는 10년 가까이 연애를 못했어요. 어떤 남자를 만나도 첫사랑이랑 비교 되는 겁니다.

죄책감인지 후회인지는 모르겠지만, 하여튼 연애를 못했습니다.


그러다가 어찌어찌 우연히 아직 첫사랑과 연락을 하는 사람을 통해 첫사랑을 만났습니다. 

한달에 한두번 만나서 친구로 지내다가.. 데이트가 되고.. 다시 사랑을 나누는 사이가 되었습니다.

10년 가까이 지난후, 그 첫사랑은 행시 붙어 있었어요. 여전히 집안은 가난했고.. 행시 붙었다고 해도 공무원이니 경제적인 여유는 고만고만했지요.

하지만, 제 친구는 이번에는 헤어지지 않겠다고 생각을 했고, 그 부모님도 이미 30대중반이 되어버린 딸이 좋다는 남자를 강하게 반대하지 못했습니다.

제 친구는 어차피 자식 나 하나 밖에 없지 않냐면서 부모님에게 결혼할때 한재산 떼어달라고 요구를 할 정도로 그 첫사랑에게 푹 빠져있었습니다. 


1년정도 그렇게 만나다가, 어느날 친구는 첫사랑에게 '우리 이제 슬슬 결혼해야 하지 않을까?' 라고 이야기를 꺼냈습니다.

그런데 그 첫사랑 왈.. '음? 우리 친구사이잖아.. 나 너랑 결혼할 생각은 없어. '

두둥...

그 남자에게 제 친구는 그냥 예전에 사귀었던 여자였고, 자신이 가난하다고 해서 무시했던 집안의 딸이었고, 다시 만나서 친구처럼 지내면서 책임없는 섹스만 즐기는 상대였던 것이었습니다. 


제 친구는 충격 먹고 한 3개월 두문불출 하다가, 그 남자 싸이에 들어가봤더니 일촌은 끊겨있고, 대문사진에는 왠 젊은 여자랑 같이 찍은 사진이 올라와 있더래요. 알음알음 알아보니 몇달전 소개팅한 8살 연하 아가씨랑 사귀고 있답니다.  친구의 추측으로는 자기가 결혼얘기 할떄쯤 이미 그 여자를 만나서 양다리 걸치고 있었던것 같다고 하더군요. 


그리고서 제 친구는 깨달았대요.

자기가 집착한건 첫사랑이 아니라, 경제적 여건때문에 사랑을 포기했다는 걸.. 인정할 수 없었던 것 같다구요.


그렇게 자신의 집착을 깨달은 친구는.. 지금 그 첫사랑 보다 더 멋진 남자를 만나서 결혼해서 알콩달콩 잘 살고 있습니다.



미괄식으로 쓰려고 했는데, 정리가 잘 안되네요.

하여튼.. 때론 사랑하는 것 만으로는 안될 수도 있어요. 그게 자신의 사랑이 부족했던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마세요.

상대를 사랑하는데, 그것 때문에 괴롭다면 그건 사랑이 아니라 집착인거 아닐까요.

상대에 대한 집착이 아니라 사랑에 빠진 자기 자신에 대한 집착.. 사랑하니까 모든걸 다 수용해야 한다는 '이상'에 대한 집착.


드라마나 영화에 사랑에 모든걸 바치는 연인이 멋져 보이는건 그게 흔하지 않은 일이라 그런거에요. 그게 '이상적' 일수도 있지만 절대 그런 모습만이 정답은 아닌것 같습니다.

현실에서도 드라마같은 사랑을 찍기는 힘들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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