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소설은 1924년에 출간되었고 굉장히 독립적인 여자 주인공이 아프리카에서 모험을 벌이는 얘기죠. 해문 출판사에서 나온 빨간 책으로 처음 읽었는데 로맨스도 영국의 계급 시스템이나 식민지-제국주의도 정확히 이해할 수 없는 나이에 읽었지만 아마 그래서 더 재미있었던 것 같아요. 무엇보다 주인공이 여자고 이국적인 곳에서 벌이는 신나는 모험 얘기였기 때문이었나봐요. 그 때 처음 단두, 장두, 그리고 평편두라는 단어를 접했습니다. 책 맨 끝 구절에서 아이의 머리가 장두(dolichocephalic) 냐 단두(brachycephalic) 냐 묻는 전보에 대해 주인공은 단 한 단어로 답을 하죠. 평편두(platycephalic).


Suzanne sent me a cable when he was born: "congratulations and love to the latest arrival on Lunatics' Island. Is his head dolichocephalic or brachycephalic?"

I wasn't going to stand that from Suzanne. I sent her a reply of one word, economical and to the point: "Platycephalic."


나중에 커서 이 책을 읽으면 얌전하게 영국 상류층으로 살았던 크리스티 여사님도 실은 맘속으로 원시인같은 섹시한 건장한 미남이 자기를 번쩍 안아다 아프리카 섬에서 동거 생활을 하기를 꿈꾼게 아닌가 싶어요. 본인의 현실도 그렇게까지 격하진 않지만 어쨌든 런던에서 쇼핑이나 하기 보다는 중동의 발굴 현장을 쫓아다녔지요.  남편 바람 때문에 이혼했지만 재혼한 연하남 맥스 말로원에게도 공공연히 바람을 피워댔고 지속적인 애인이 있었죠. 크여사 돌아가시자 마자 그 여자랑 재혼했더군요. 맬로원도 금방 돌아가셨지마는.


주인공은 앤 베딩필드는 토미와 터펜스 시리즈의 터펜스를 연상하게 하는 기지와 무모함을 갖췄지만 토미 터펜스 커플의 찰떡 궁합에 못 미치는지 이 커플은 다시는 등장하지 않네요. 일단 구석기 시대 사냥꾼같은 단두개골의 남자 주인공이 20세기 초 런던에 살기에는 무리인 사람이라...


앤의 1인칭 시점으로 서술도 되었다가 악당인 유스터스 페들러의 시치미를 뚝 뗀 1인칭 서술도 등장하는 트릭을 써서 다소 불공정한 느낌을 주지만 여러모로 허술한 모험 소설임에도 불구하고 (아니 어떻게 그렇게 여장 남자를 못 알아 볼 수가...) 매력적인 데가 있는 것 같습니다. 여자 주인공이 유머가 넘치고 로맨스에다 다이아몬드까지 등장하니까요. 살짝 허술한데다 아프리카를 쏘다니고 빅토리아 폭포에서 떨어지고 난리인 액션이 많은데다 폭동이 일어나는 등 스케일이 몹시 크다보니 티비 시리즈물에서는 늘 제외되는 것 같아요. 미국에서 옛날에 한 번은 만들어졌나 본데 본 적은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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