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선 오늘 이 글을 쓰게 된 계기는 강풀 작가가 다음에서 연재하고 있는 조명가게 (제목 클릭하면 이동) 라는 웹툰 때문입니다.


평소 강풀 작가의 작품을 좋아하던 저는 이번에 새로 연재하는 조명가게를 쭈욱 따라고 있는데, 어제 업데이트된 내용을 보니 간호사로서 글을 쓰지 않을 수가 없겠더라고요.


만화를 안 보신 분들을 위해서 간단하게 요약해보자면,


중환자실에서 혼자 근무하고 있는 간호사는 밤 근무를 하던 중, 졸음을 쫓으려고 CD 플레이어를 틀고 이어폰으로 음악을 들으려는데,

갑자기 나타난 어느 사람이 영안실 위치를 묻기에 위치를 가르쳐주려던 찰나 그 사람에게서 이상한 점을 발견합니다. 

미처 대답도 하기 전에 그 사람이 '저 쪽이군요'하면서 걸어가자, 간호사는 그가 병실에 있는 환자인 것을 깨닫고 그를 따라가며 소리칩니다. 

그는 의식을 잃은 환자의 영혼 정도의 존재 였고, 슬픈 사연이 있었습니다. 본인의 입원 일자가 길어질 수록 가족들의 부담이 커질까봐 그냥 죽기 위해 영안실을 찾던 거였고, 귀에 모래가 가득 차 간호사의 말을 듣지 못합니다.

간호사는 그를 달래기 위해 그의 귀를 파주고, 음악을 들려줍니다.

밤새 피곤한 간호사는 결국 졸음에 못 이겨 스테이션에서 잠이 들고 말고, 다른 간호사가 행복하게 잠 든 간호사를 바라보며 좋은 일이라도 있나 궁금해합니다.



이 만화가 업데이트 되자, 간호사들의, 아니 간호사 생활을 아는 사람들의 덧글이 달리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가장 큰 이슈였던 '하이힐 신은 간호사'에 대해 강풀 작가가 어쩔 수 없었다며 트위터에 글을 남깁니다.


http://twtkr.olleh.com/view.php?long_id=LjLc1


'(16화 간호사 하이힐) '또각 또각.' 소리를 듣지 못하는 사람이라는 캐릭터와 고요한 상황이라는 이유로 다른 소리의 이미지들이 더 많이 필요했습니다. 소리를 이미지화 할만한 것들이 마땅치 않았어요. 때로 만화에서 소리글은 이미지 이상의 도구이지요^^.'


 라고 강풀 작가가 이야기 하지만, 이것 하나만 문제라면 작품을 끌고 나가기 위한 부분이라고 넘어갈 수 있겠지만, 문제는 이것 하나만이 아닙니다.

 

1. 보통 중환자실이라면, 간호사가 혼자서 근무할 수가 없습니다. 왜 중환자실이겠습니까. 그만큼 중한 환자니까 중환자실에 있고, 그만큼 손이 많이 가는 환자입니다. 대형 병원 기준 중환자실에선 간호사가 한 명 당 두 명에서 세 명의 환자를 봅니다. 


2. 그러하기에 조명 가게 16화에서처럼 여럿의 환자가 한 방에 있는 경우는 많지 않습니다. 아니, 중환자실 자체가 병실 처럼 나뉜 경우는 거의 없습니다. 왜냐하면 중환자들에게 걸려있는 심박, 혈압 모니터 등이 잘 보이게 하기 위해 각각 나뉜 방 개념이 아니라 광장 개념의 병실이 운영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물론 그 광장에서도 벽을 사이 사이에 둘 수는 있습니다만, 흔한 병실 모양은 아니라는 거죠.


3. 간호사가 일을 하며 음악을 들을 수는 있습니다만 간호사가, 특히 중환자실 간호사가 일을 하며 이어폰을 귀에 꽂고 일하는 경우는 절대 없습니다. 중환자실은 언제든 상황이 변할 수 있는 급박한 곳입니다. 눈과 귀가 환자에게 항상 향해있어야 해요. 심박과 혈압이 흐트러지면 모니터에서부터 경고음이 흘러나오고, 잘못된 흐름이 모니터에서 그려지니까요. 그만큼 집중해야 하기에 한 명의 간호사당 맡는 환자의 수가 한정되어 있는 거죠. 

 아무리 환자가 안정적이더라도 이어폰을 귀에 꽂는다고요? 절대 상상할 수 없는 노릇입니다.


4. 하이힐을 신는 것도 말이 안 됩니다. 향수나, 귀걸이, 반지 등도 환자 안전에 방해될세라 금지하는 곳이 많은데, 하이힐도 마찬가지입니다. 시끄러운 건 둘째치고, 서서 일할 일이 많은 간호사가 하이힐 신고 일하면 우선 간호사의 발목 건강이 염려가 되네요. 간호사 신발..흔히들 효도신발이라 불리는 신발 신어도 퇴근 할 때면 다리가 퉁퉁 붓는데요. 

 하지만 이건 강풀 작가가 이야기적 과장법이라 양해를 구했으니 지금은 넘어가도록 하죠.


5. 밤 근무 하던 간호사가 잘 수는 있습니다. 병원마다 분위기가 다르거든요. 하지만 잠을 잔다 해도, 따로 휴게실에서 자는 것이지 환자와 마주 접하는 스테이션에서 잔다고요? 이것도 말이 안 됩니다. 그리고 스테이션에서 자는 간호사의 모습을 다른 간호사가 보고서 저렇게 평화롭게 반응할 리도 없고요. 



그러니까 제가 이야기하고 싶은 건 간단합니다. 

이 이야기는 중환자실 간호사를 만나거나, 아니 그 어떤 간호사라도 만나서 사전 조사를 했다면 이렇게 흘러갈 수 없는 이야기 흐름입니다.

어쩌다 몇 개의 모순이 있다면 그러려니 하고 넘어가겠지만, 이건 너무 과해요.



이건 현실의 병원이 아니고, 현실의 중환자실이 아니고, 현실의 환자가 아닙니다.


아무리 픽션이라지만, 현실에 바탕을 둔 배경을 가진 픽션이어야지, 이건 이야기 흐름을 위해 현실 배경을 완전히 무시한 거여요.


얼마만큼 사전 준비가 있었는지 모르겠지만, 이번 회를 보면 게으르게 보일 지경입니다. 


병원도, 중환자실도, 간호사도, 환자 병실도 잘 못 되었다면 그렇게 보일 수 있지요.




전 강풀 작가의 만화로 조금 실망을 했었는데, 아는 지인이 자기 페이스 북에 '영광의 재인'이란 드라마에 대한 분노를 털어놓더군요.

거기서도 간호사가, 아니 그냥 드라마에서의 이야기 흐름 자체가 너무나도 현실과 동떨어졌다고요.


뭐, 대중매체에서 보여지는 직업들에 왜곡이 없을 순 없겠습니다만, 간호사로서 몇 자 적어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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