먹을 것 이야기

2012.02.13 02:04

살아 움직이는 조회 수:796

여행갔다가 돌아왔어요. 하루 종일 잤습니다. 너무 피곤해서 였을까요. 베개가 눈물로 젖어서 깼다가(침) 축축해진 부분을 피해 다시 


잠들기를 몇 번 했어요. 입만 가도 됐을텐데 괜히 다 가서 온 몸이 피곤하네요. 가서 먹기만 먹었거든요. 


너무나 시끄러운 도시였어요. 돌아온 서울이 조용하다고 느낄 정도였으니, 말 다했죠 뭐. 


내적으로 뭘 얻을 수 없는 여행이었기에 별 기대는 안 했는데, 참 써먹을만한 것 없는 여행이었네요. 


사람들이 바쁘게 지나가는 거리에서 유리된 채로 한가하게 지내야지. 라는 모토가 무색해질만큼 쓸려다녔어요. 




옆에 앉았던 일본여자는 왜 혼자서 이 트램을 타고 있을까? 밖을 잘 보지도 않고, 그냥 언덕을 올라가는 기차에 앉아있었어요. 


그 여자도 그 도시가 너무 지긋지긋했거든요. 사람으로 가득 찬 거리에서 벗어나고 싶었습니다. 


트램을 타는 것은 그 도시의 방법이었어요. 그 여자는 그 때 깨달았어야 해요. 


산 꼭대기에는 밑 보다 비싼 맥도날드의 튀김냄새와 크록스 매장에서 나는 고무냄새가 가득하다는 걸요. 


그녀는 포인트를 찾아 각자의 기억을 간직하는 인파들을 피해 산을 내려왔습니다. 


똑똑똑 


하더니 비가 새차게 내리기 시작했어요. 처음에는 다들 익숙한 일인냥 비를 맞다가, 쉽게 그치지 않자 하나둘씩 


건물안으로 사라지기 시작합니다. 


그 자리에 남은 건 동남아 여자들입니다. 오늘이 주말이었거든요. 그녀들은 가정부입니다.  


주말의 집은 가족애로 가득차니, 그들이 나올 이유는 충분해요. 집안 일을 하는 사람들답게, 다들 맛있는 도시락을 싸와서 길거리에 앉아있네요. 


비를 피해 들어온 그녀는 까페의 쇼파에 앉았습니다. 그 때 기차의 옆자리에 앉았던 저를 봤어요. 


자신과 똑같은 표정을 하고 있었어요. 사람들이 질린다는 표정. 알고보니 저 뿐만이 아니네요. 그 옆에 앉아 떠들고 있는 멋진 수트를 입은 남자도.


그릇을 치우는 점원도 마찬가지였어요. 


즐거워 보이는 것은 도시락을 싸온 그녀들뿐이네요. 쉬지 않고 걸어야 한다고 말하는 거리를 점령한 그녀들만 편해보였습니다.  


지긋지긋한 도시는 네가 아니라는 것을요. 스쳐가는 어깨가 네 것이 아니고. 


웅성웅성 거리는 소음이 네 목소리가 아니라는 것을요. 그녀는 이제 깨달았습니다. 


타자가 되고 싶어서 간 그녀의 여행은 실패했어요. 


돌아가는 비행기 안에서 비로소 그녀는 편안한 감정을 느낍니다. 어깨를 부딪히길 극도로 조심하는 자기나라 사람들을 보면서, 눈을 감아요. 


멀리서 가정부의 도시락, 빗물이 튄 남자의 구두, 좁은 이코노미석의 기내식, 방향을 가늠할 수 없는 도시의 빌딩, 고개를 끝까지 들어야 보이는 하늘이 


보여요. 


음료 더 드시겠습니까


하는 소리에 촛점을 맞춥니다. 미소를 머금은 스튜어디스 뒤로 


도시락과 구두, 빌딩, 하늘이 흐리게 보여요. 


홍콩은 따뜻해서 다행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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