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꾸 길어지는 이야기같지만 이 말은 안 할 수 없군요.


폭력이 폭력을 낳는다고들 이야기됩니다. 그런데 가정 폭력 문제에서 이 말은, 폭력적 관계를 조정하지 않고 용인했을 때, 폭력적 관계가 지속되고 재생산되면서, 피해자가 가해자로 변하게 되는 과정을 말하는 것입니다. 폭력적인 질서를 받아들이며 자기보다 약한 자에게 당연한 듯 폭력을 행사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런 불합리한 관계를 피해자가 스스로 저항하여 극복하는 것은 쉬운 선택이 아니고, 고통스러운 후유증을 남기기도 해요. 피해자가 감정적으로 더 이상 견딜 수 없을 때 우발적으로 저질러지면 더더욱 그렇습니다.

게다가 육체적인 힘이 떨어지는 여성들에게는 불가능한 선택지이기도 합니다. 저항할 수 없는 피해자가 선택하는 것은 도망치는 것입니다.


한 순간의 특별한 사건이 아니라 지속적으로 자행되는 폭력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가정 뿐만이 아니라, 폭력적 과정으로 관계를 유지하는 집단은 많아요. 군대, 학교의 강압적 선후배 관계, 특정 전문직종의 수련과정... 그럴수록 '가족적' '끈끈한 유대' 뭐 이런 말로 포장되곤 하고. 묘한 엘리트 의식이 추가되기도 하고.


성인이 되는 한국 남성 다수가 군대에 가서 수직적 폭력적 위계질서를 체화하고 돌아옵니다. 그들 중 다수는 직장과 가정에서 유사한 위계질서를 재생산하는 일종의 중간관리자가 됩니다. 사회의 최상층부 권력자는 이들 중간관리자를 통해 국민들의 질서를 유지합니다. 왜 남자만 군대 가는가? 한 가지 설명은, 군대는 가부장제와 연계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여성들의 집단이라고 해서 강압적 위계질서가 없는 것은 아닙니다. 나아가 야생동물 사회에서의 위계질서를 보면 어쩌면 저런 것은 포유동물들의 종족적 특성인가.. 싶기도 해요. 하지만 우리가 이성과 가치를 가진 인간이라면, 우리 속의 짐승에 스스로를 굴복시킬 수는 없는 일이죠.


가정이든, 직장이든, 어디이든, 폭력적 관계를 종식시키는 과정은 저항의 모습으로 나타날 수 밖에 없습니다. 가슴 속의 압력계가 레드 존을 칠 때까지 참다가 우발적으로, 감정적으로 터뜨려버리는 것은 안타까운 일입니다. 비극적인 결과를 낳으면 더욱 더. 왜 더 일찍 저항하지 않았던 걸까. 그것이 불가능했다면, 왜 다른 사람들에게 도움을 청하지 않았을까. 자기 혼자서 꽉 끌어안고 있다가 자폭하듯 터뜨려버리고 마는가. 말로도 대들고, 때리는 손을 붙잡고 하면서 자신이 만만한 새끼가 아님을 보였어야 하지 않았나.


자폭도 답이 아니고, 굴종도 답이 아닙니다. 저는 자폭해본 적도 있고, 굴종해본 적도 있습니다. 하지만 대학 시절 선배들의 강압적 요구를 단합해 거부했을 때의 기억이 가장 그나마 나았다고 생각됩니다. 폭력이 종식되지 않으면 다른 폭력을 낳습니다. 관계의 봉합은 그 후에 가능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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