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01.13 18:07
어제 잠을 네 시간 밖에 자지 못한 채로 조조로 보러 간 지라 좀 졸긴 했습니다만, 영화는 참 좋았어요.
현재까지 발견된 것들 중 가장 오래 되었다는, 32000여 년 전 구석기 시대의 예술을 품고 있는 쇼베 동굴을 3D 화면 안에 담아낸 작품이에요.
헤어조크는 크게 두 단계로 나누어 쇼베 동굴을 담아내요.
처음에는 여러 학자들과 동행하며 그들이 쇼베 동굴 안과 밖에서 연구를 진행하는 과정을 담습니다. 이때 영화는 동굴의 모습 못지않게 학자 개개인의 면면을 담아내는 데 집중하는 동시에, 그들과의 인터뷰를 통해 당대 인류의 삶을 어렴풋하게나마 조망하는 시도를 해요. 여러 가지 설명들을 듣는 것도 좋습니다만, 그 첫 단계에서 진정 빛나는 순간은 따로 있습니다. 한 고고학자가 그림 속 동물들의 모습에서 자신의 서커스단원으로서의 과거를 떠올리게 되는 순간, 또다른 학자가 당대의 악기를 구현해 직접 미국 국가를 연주하는 순간, 또 어느 학자가 당대 사냥 방법을 직접 시행에 옮겨 보다 헤어조크에게 놀림받는 순간, 또 조향사 출신 학자가 직접 향을 맡아가며 동굴의 흔적을 쫓는 순간 등이 그렇습니다. 모두가 현재의 개개인이 그 과거의 흔적들과 나름의 방식으로 소통하는 모습들이 카메라 안에 담기는 순간들이죠. 이는 헤어조크의 언급처럼 현재의 개개인이 과거의 흔적과 맞닿으며 나름의 방식으로 '과거의 잊혀진 꿈들'을 되물어가는 과정일 테지요.
첫 단계가 '잊혀진 꿈들을 추적하는 소통'을 위한 나름의 가이드라인을 여러 정보와 학자들의 모습으로 보여주는 단계였다면, 학자들이 연구를 마치고 쇼베 동굴을 떠난 뒤 헤어조크의 촬영팀이 홀로 남아 쇼베 동굴을 비로소 제대로 보여주는 두 번째 단계는 이제 관객 스스로 동굴 속 벽화들을 통해 과거와 소통할 것을 종용하는 단계예요. 동굴의 굴곡과 횃불의 일렁임을 적극적으로 활용해 동물의 움직임을 탁월하게 구현하는가 하면 그림마다 명암을 살려놓는 등 1단계에서 들었던 설명들을 바탕으로 그림들을 보다 보면 어느샌가 커다란 감동에 이르게 됩니다. 게다가 이 영화의 매우 빼어난 3D 효과 덕에 관객은 마치 그 그림들과 직접 마주하며 과거와 직접 소통하는 듯한 감흥에 젖게 되죠. 그림 한 점 한 점에 감탄하는 와중에 조심스레 심장 고동소리가 끼어들 때의 기분은 정말... 극장에서 3D로 직접 본 사람만이 공유할 수 있을 그런 기분이에요ㅠㅠㅠ
영화 끄트머리에 삽입된 후기도 인상적입니다. 영화가 쇼베 동굴을 잡아내는 그 과정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는 후기였어요.
상영하는 극장이 많지 않던데, 굳이 얼마 안 되는 상영관을 찾아가서라도 볼 가치가 있는 영화였어요. 꼭 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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