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일절에 비행기를 탔습니다. 두시간 정도 거리였는데, 옆에 일본인이 앉았습니다.

비행기를 타다보면 일본인이든, 중국인이든 동양 사람 옆에 타는 일이 자주있지는 않지만, 그리 흔한 일은 아니였거든요.

그런데 그 조합이 하필 삼일절이였고, 그 동양인이 일본인이였다는 사실이 좀 묘하기는 했습니다.

그런데 괜히 심술 비슷한 감정이 올라오더라고요. 오늘이 삼일절이라는 사실은 너는 알고 있느냐.

괜히 한마디 하고 싶은 감정이 스믈스믈하고 올라오는데, 비행기에서 아무것도 모르는 외국인한테 뭐라고 하는 것은 참 상진상 짓 같아서

그냥 입을 다물고 책보고 그러고 앉아있었습니다.

 

그런데... 이 분 여행가시나 봅니다. 막 들떠 있는 모양이 눈에 훤히 보입니다. 그러면서 저한테 자꾸 말을 거는겁니다.

제가 처음에 어느 나라 사람이냐고 물어봤을 때

분명히 코리안이라고 상당히 나름 무뚝뚝하고 짧막하게 "나는 당신하고 말을 섞고 싶지 않으니 앞으로 쭉 말을 걸지 말아라"

라는 늬앙스를 전한 것 같은데, 이 분은 5분에 한번씩,

어디 사느냐, 얼마나 있었냐, 여기는 가봤냐, 다른 곳은 가봤냐, 어디가 좋더냐, 어디를 가면 안되느냐

자꾸 말 걸어서 미안하다, 여행은 처음이다, 여기까지 오는데 너무 기대된다.

 

아마 이 분은 오늘이 한국에서 삼일절이라는 기념일이라는 사실을 전혀 모르고 있었을 겁니다.

아니, 한국인이 일본인한테 어떤 감정이 있는지 모르고 있을 가능성이 큽니다.

다른 일도 그렇지만 당한 사람의 기억이 오래남지, 저지른 사람은 금새 잊어버리는 경우가 다반사거든요.

 

그 일본인의 태도를 보면서

어떻게 보면 쿨한 것 같기도 하고,

어떻게 보면, 참 글로벌한 것 같은데,

왠지 저 혼자만 쫌생이처럼 처음부터 마음을 궃게 걸어 잠근 것 같아서 쪽팔린 느낌도 들었습니다.

 

그리고 비행기 내리면서, 좋은 여행 되라고 얘기해주었습니다.

 

아, 물론 그 분이 좀 이뻤던 것도 있었네요.

역시 외모는 모든 것을 용서하게 만들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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