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일러)

(정말 스포일러. 이 영화 반전 있어요.)




영화 보고 술자리 갔다가 지금 들어왔습니다.

사실 이 영화에 대해 길기 쓰기는 힘들 거 같고…
아, 이 영화에 감상은 정말 "ㅋㅋㅋ"라고 할 수 밖에…

진짜 낭만적인 로드무비처럼 시작하다가 
중간중간 유쾌한 조역들이 한명한명 들어왔다 빠졌다를 반복하더니,
영화 결말은 결국… 아… 택시기사 아저씨(이영하), 거기서 그렇게 넘어가면 안되지! 도망쳐!
여주인공이 전화를 받는 장면에서 반전을 한 번 터뜨리더니,
남주인공이 택시를 타고 떠나는 장면의 라디오 방송으로 확인 사살.

하지만 오늘 상영에서 정말 압권은 본영화 끝난 직후 송길한 선생님의 발언.
관객과의 대화 시작부터 여주인공을 x쌍x이라 칭하시며
영화 마지막에 x쌍x이라는 대사를 넣으려고 했다는 발언을 미소와 함께 날리시는데
오늘 영상자료원에서 영화를 본 관객들은 다같이 빵 터지고야 말았습니다.
아아 개xx이라니… 분명 다른 사람이 다른 영화를 보고 관객과의 대화 시간에 그런 발언을 했다면
"아니 아무리 작가라지만 저건 너무 차별적인 막말 아닌가?"라며 수근수근했을텐데,
이 영화의 여주인공을 보고 이 영화의 작가께서 그렇게 말씀하시는데
관객들은 도대체가 수긍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 
아 그래요. 꽃을 꽃이라 불러야 하고 나비를 나비라 불러야 하는 것처럼
'나비 품에서 울었다'의 나영희는 x쌍x이라고 부를 수 밖에 없다는 거죠.
하지만 xxx라고 해도 도저히 미워할 수가 없는 xxx이라.
중반에 예전 연인을 생각하며 길 한복판에서 상상하는 장면이나
막판에 전화 받고 당황해하는 모습을 보면
아무리봐도 상습법이 아닌 초범(또는 아직도 순진한 상습범)으로 의심되더라는.

김홍준 선생님은 빔벤더스를 언급하셨고 
저도 저번에 빔벤더스의 로드무비 같은 면이 있을 거라고 이 영화를 소개했습니다만,
다시 제대로 영화를 보니 빔벤더스보다는 "가볍지만 유치하지 않은 선댄스표 소품들"이 생각나기도 하고요.
(그러고보면 최근 조지 클루니가 나왔던 모 영화에서 비슷한 반전을 다루기도 했군요.)
확실히 실력있는 각본가와 실력있는 감독은 다르다고 느낀 것이,
클라이막스 이영하가 나영희 때문에 조바심만 내는 장면을 보면
남자 주인공의 바싹바싹 타들어가는 마음이 그대로 느껴지는데
그게 착착착 쌓여나가다가 "노르웨이 자전하는 소리" 드립에서 빵 터지는데 그냥… ㅋㅋㅋ.
(아니 핀란드였던가요? 그게 무슨 상관이람. 어차피 작업 멘트인 걸요.)

아, 하여간 이 영화 유쾌하고 좋았어요.
관객과의 대화 시간에도 언급된 것 처럼
좀 더 깊이있는 주제를 고민하고 만들었다면 더 좋은 작품이었을 것이고,
쿼터 채우려고 급하게 만든 영화 티가 조금씩 나기는 했지만,
그걸 굳이 감안하지 않더라도 유쾌하고 재미있는 영화였습니다.
아니, "유쾌하고 재미있다"는 건 너무 주관적인 감상이라 좀 왜곡이 있는 것 같고,
"소박하지만 의외로 좋은 장면들이 많고, 보고 나면 즐거운" 영화랄까요.

실제로 오늘 상영관에 관객들이 너무 많이 왔길래 좀 걱정(?)했는데
의외로 관객분들이 즐겁게들 보신 것 같아 기분 좋더라구요.
사람이 많으면 오히려 걱정할 수 밖에 없었던 것이,
전 자료 조사 때문에 이 영화의 몇몇 장면을 미리 봤기 때문에,
"이게 사람들이 생각하는 그런 영화"(그게 뭐든간에. -_-;)는 절대 아니란 것을 알고 있었거든요. 흐흐흐.

이제까지 프린트도 없었고 영상자료원 vod로도 없어서
자료실에 있는 낡은 vhs로만 볼 수 있던 영화인데,
이제부터 슬슬 재발견(?!) 되는 건 아닐지 즐겁기도 하고 걱정(?)도 됩니다. :-)



p.s.
한지일씨도 나오는데, 
이 영화에서는 당시 예명인 "한소룡"으로 크레딧에 올라가 있습니다.


p.p.s.
위에서 적을듯 말듯 영화 내용을 숨겨놔서
괜히 너무 대단한 반전을 기대하실까봐 영화 라스트를 그냥 까발리자면,
미국에서 7년만에 첫사랑을 찾으러 왔다는 여주인공의 말은 다 뻥이고
실제로는 남편 출장 간 사이에 첫사랑도 찾을 겸 여행왔다가
이영하 총각을 싱숭생숭 설레게 만들더니만
쪽지 한 장으로(요즘으로 치면 포스트잇 이별. -_-;) 이별통보하는 이야기 되겠습니다.
송길한 선생님은 전체 스토리를 "묻지마 관광"이라는 두 단어로 압축.
뭔가 다르긴 하지만 나름 적절한 요약이로군요.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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