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로움에 적응하는 방법

2010.10.01 03:26

산체 조회 수:4034

아.. 내일까지 써야 하는 짧은 페이퍼도 하나 있는데 괜히 기분이 싱숭생숭해서 이러고 있습니다.

 

내일 일찍 일어나서 쓰면 되죠. 아 이제는 오늘인가? 일찍 일어날 수 있을까? 안쓰면 어때...

 

 

연애를 못한지 벌써 7년째에 접어드는거 같아요. 제가 예전 그 친구와 헤어질 무렵 태어난 아기가 있다면 그 녀석은 벌써 초딩이 되었을거라는...

처음에는 그랬죠. 금방 다른 사람 만나겠지. 조금만 더 기다리면 되겠지.

그러면서 일년 일년 지나온 것이 벌써 서른을 눈 앞에 두게 되었습니다. 나의 소중한 20대가 벌써 외로움으로 가득 차 버렸군요ㅠ

 

처음에는 그렇게 생각했어요.

아니 내가 뭐 어때서! 내가 뭐가 모자라서 여자를 못 만나? 지극히 평범한 애들도 다들 좋은 친구들 만나 잘 사귀더만.

맞아요. 평범한 친구들은 다른 사람 잘 만나요. 조금 서툴게 보이고 삐걱대는거 같아도 언젠가는 자신의 짝을 찾아가죠.

그냥 제가 평범함에 조금 못미치는거죠.

 

제가 좋아한 친구들은 몇 있었는데 그 친구들은 저를 안좋아했나봐요.

그럴 수 있잖아요. 사실 따지고 보면 그렇거든요. 조건보고 사람만나냐고 하는데, 넓게 보면 조건 빼고는 사람이란게 남지가 않잖아요.

생각해보면 저는 키가 큰 것도 아니고, 외모가 보기 것도 아니고, 돈이 많은 것도 아니고, 별다른 능력이나 특기가 있는 것도 아니고,

하다못해 좋아하는 이성에게 죽자고 매달리는 근성이나 용기가 있는 것도 아니거든요.

이런걸 다 종합해보면 별로 매력이랄게 없으니까, 나같아도 나같은 사람은 안만날거 같아요.

 

이렇게 이성적이고 합리적으로 내가 연애를 못하는 이유를 스스로에게 납득시킬 수는 있어요.

하지만 이성적으로 납득을 시킨다고 내 외로움이 사라지거나 다른 사람을 만나고픈 마음이 줄어드는건 아니더라고요.

그렇게 외로움에 빠져 허우적대다가 보면 어느새 감정은 극단을 향해 치닫는거죠.

 

그런데 이렇게 부정적인 감정에 휩싸여 시간을 보내는건 참 안좋은거 잖아요.

그래서 좀 더 나은 삶을 영위하고자 외로움에 적응하는 방법을 여럿 개발하게 되었어요.

 

뭐 가장 기본적인건 TV에서 예쁜 소녀들이 뛰어노는걸 구경하는거죠. 엊그제 듀게에도 그런 글이 올라왔잖아요.

아이돌은 보는 사람들에게 유사연애의 경험을 제공한다. 뭐 이런 주제로. 꼭 그게 연애감정인지는 몰라도 하여튼 그런걸 보고 있으면 나도 기분이 좋아져요.

 

그리고 취미, 저 같은 경우에는 음악에 몰두하는거에요. 그 음악이란게 틴에이지 팬클럽일 수도 있고 negative approach일 수도 있고 뭐 여러가지죠.

(얼마전 프렌지 공연에 다녀왔는데 참 좋더라고요. 프렌지 좋아요. 프렌지 들어보세요!)

여기서 중요한건 그 음악을 통해서 감정을 배출할 수 있다는거 같아요.  외로움에 빠져살다보면 가장 무서운 점이 감정 자체에 무뎌진다는거라고 생각하거든요.

기쁜 일이 찾아와도 기쁘지 않고, 슬픈 일을 당해도 슬프지 않고, 분노할 일을 보아도 분노하지 않고....

그런데 음악을 듣다보면 자연스레 그 음악에 해당하는 감정이 삐져나오게 되더라고요.

이건 약간 딴 얘기인데, 그런 의미에서 저는 우리 듀게의 ZORN님께 너무 감사드립니다. ZORN님이 전해주시는 인디모던록은 제 인생을 풍요롭게 해 주었어요.

ZORN님 사...사... 정말 좋아합니다ㅠ

 

생각해보면 야구도 저의 가장 중요한 취미 생활 중 하나인데, 안타깝게도 야구는 저를 더 외롭고 허전하게 만들었네요.

각각 다른 색깔의 줄무늬 유니폼을 입은 원삼이와 택근브이를 보면 이건 뭐.....

승락이가 아무리 공을 잘던지고 정호가 매섭게 빠따를 휘둘러도 가슴 한 켠이 아려온다죠.

 

 

그리고 사실 이건 정말 불쌍한 방법인데... 내가 가지지 못한 가지고 싶은 기억들을 상상하는 거에요.

왜 요새 개그 콘서트에 그런 코너가 있잖아요. 고아 형제가 상상을 하면서 몸개그를 보여주는...

그게 일단 개그 콩트니까 분명 웃기고 재미가 있는데, 고아 형제들을 구박하고 놀려먹는 아저씨가 나올 때마다 기분이 짠해요. 뭔가 서글프기도 하고.

그거 비슷한거죠. 비록 현실은 시궁창이어도 내가 되어보고 싶은 모습이나 이루고 싶은게 있으니까 그런 걸 떠올리면서 현실탈출, 정신승리를 시전하는거죠.

그래서 내가 가장 하고 싶은건.... 고양이를 키우는거에요.

아무래도 연애를 오래 안하다보니 연애에 대해서는 현실감이 없어요. 여자사람이라는게 주로 어떤 행동을 하는지도 잘 모르겠고.

그렇게 따져보면 고양이도 마찬가지네요. 아직 한 번도 고양이를 키워본 적이 없으니.

하지만 어쨌든 고양이랑 같이 살면 참 좋을거 같아요. 뭐 털도 많이 날리고, 예방 접종이다 사료다 해서 돈과 정성도 많이 쏟아야 하겠지만,

그 친구들은 내가 책을 보고 있을 때 몰래 와서 무릎에 앉는다든가, 내가 놀아달라고 손을 뻗으면 고개를 저으며 도도하게 외면한다든가, 어쩌다 손님이 오면 내 다리 뒤로 숨어 찾아온 손님을 빤히 쳐다 본다든가 할 거 같아요. 이 시간에 활발하게 거리를 돌아다니는 고양이 친구들을 보며 이런 생각을 하고 있노라면 조금 포근해져요.

 

사실 고양이는 언젠가는 꼭 키우고 싶어요. 지금은 여건이 안되서 엄두도 못내고 있지만, 인터넷에 올라온 고양이 분양글을 보며 침만 흘리고 있지만 언젠가 고양이와 함께 살 수 있다면 내가 지금 간신히 억누르고 있는 외로움으로부터 많이 자유로워질 수 있을거 같아요. 벌써 고양이들 이름도 다 지어놨어요. 두 마리를 키울거거든요. 크립키와 루이스. 이름하여 모달 캣츠!!

 

언니네 이발관 4집에 정순용씨가 부른 '키다리 아저씨'라는 노래 중에 이런 가사가 있잖아요.

예쁜 순간이 올꺼야.

사실 예쁜 순간은 아마 안오겠지만 그런 순간을 꿈꿔보는건 언제일지 모르는 그 미래 때문이 아니라 바로 이 순간에 품을 수 있는 희망 때문에 가치 있는 일 같아요.

 

 

 

그리고 외로움을 이기는 마지막 방법은...

이렇게 듀게에 와서 여러분들의 글과 댓글을 읽는 것이지요.

읽다보면 내가 그 글을 쓴 분이 된 것처럼 느껴지지도 하고, 가끔은 너무도 막막한 내용 때문에 내가 안고 살아가는 짐들이 하찮게 느껴지기도 해요.

아마 듀게가 없어지면 훨씬 더 외로워 질거에요. 오래도록 건강해줘요. 듀게쨔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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