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동재생입니다.




[발해를 꿈꾸며(instrumental)]
8th track of "SEOTAIJI AND BOYS III"


* 저작권에 관하여 : 서태지는 자신의 창작물에 관련하여 굉장히 관리를 꼼꼼히 하는 것으로도 유명합니다. 이재수의 패러디 '컴배콤' 사건에서 보듯
어설프게 상업적 이용을 했다가 소송사태 맞은 치들이 한둘이 아닌데 - 그런데 팬들이 비상업적 용도로 단지 즐기기 위해 자신의 블로그에 올리는 건,
이와 상관없이 자유롭게 이용하라고 밝혔지요. 이는 서태지 자신이 저작권협회에 업무를 위탁하지 않고 직접 관리하기 때문에 가능한 일입니다.
(한때 마구 블로거들을 상대로 고소를 남발하던 S 법무법인은 저작권협회측의 위탁을 받는 것으로 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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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도 서태지의 디스코그래피 중에서 가장 빼어난 트랙을 꼽으라면 저는 주저없이 이 트랙을 들겠습니다.

제 옛날 블로그 쪽에서는 몇 번 언급한 적 있지만 1994년 당시 대한민국에서 이만한 사운드를 뽑아낸 음반은 거의 없었겠지요.
팀 피어스의 유려한 어쿠스틱 기타와 케빈 스코트의 기타 테크니션이 어우러진 일렉트릭 기타사운드는 정말 정신을 쏙 빼놓습니다.
LA의 콘웨이 레코딩 스튜디오에서 첫 녹음을 따고 또 그것을 믹싱하기 위해 밴쿠버까지 날아가는 등 서태지는 이 앨범을 위해
정말로 시간과 노력을 아끼지 않았죠. 물론 서태지 자신이 뮤지션이면서도 - '교실 이데아'등의 곡에서 베이스 및 키보드는 서태지가
직접 세션을 담당했습니다 - 동시에 실력파 엔지니어이기도 했고 말입니다. 저 개인적으로도 서태지의 재능은 하드코어보다는
일렉트로니카, 연주력보다는 사운드 만지는 실력에 있다고 봅니다. (*주 : 예전에 7집 즈음해서 쓴 글이라 이렇게 기술해 놓았는데
이후 8집에서 네이처파운드라는 사운드 레고놀이-_-a를 하면서 저는 제 생각에 대한 어느 정도의 확신을 얻고 있습니다.
네이쳐 파운드는 자연계에 존재하는 소리를 인공재로 대체하여 재구성한다는 면에서, 방법론은 과거 일렉트로니카 1세대들이 하던
방식 - 아날로그 악기를 인공음으로 재구성 - 과 비슷하지만 그 사운드 뽑는 스타일은 가히 세부 장르 하나를 이루었다 할 만합니다.)

어쨌거나 그것은 매우 지독하리만치 고통스러운 노력과 근성의 결실이겠지요.

- 서태지를 흔히 천재라고 일컫지만 사실 서태지의 본질은 거의 외곬에 가까운 노력형 수재 스타일이라는 게 서빠질 15년동안 내린 결론입니다.(....)
분식집 식당 개 노릇 3년이면 라면을 끓인다고, 그 긴 시간동안 서태지에 대해 계속 알아가면서 몇 가지 알게 된 사실이 있습니다.
그 중에 하나가 서태지는 타고난 천재가 아니며, 인간 이상의 노력을 하는 수재가 마침내 '레베루'의 경지에 오른 인물이다, 라는 것.
서태지와 아이들을 해체하고 은퇴 기자회견을 하면서 "창작의 고통" 운운했음을 떠올려봅시다. 아무리 좋아서 하는 일이래지만, 그는
일종의 한계를 느끼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이는 나중에 발간된 이주노의 회고록에서도 내용을 확인할 수 있죠.)

즉 서태지는 덕후 중에서도 본좌급 덕후란 것. 그리고 서태지의 정신세계 - 단, 그가 외부로 내보인 저작물들과 행동에 의한 것이라는 한계는 있음 - 와
그의 음악세계는 마니아, 오타쿠의 경지마저 벗어나서 무슨 '구도'의 길을 걷는 것처럼 보이며, 그 중압감은 가끔 사이키델릭한 느낌으로 나타나는데
이런 기괴함을 즐기는 모습은 이너비리스너비부터 시작해서 그의 디스코그래피 곳곳에 잘 숨어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주로 공연실황 같은 곳에서 많이 나오지만(예컨대 1995년의 솔로 파트), 정규 앨범에서도 ㄱ나니 같은 경우는 아예 대놓고 그런 얘기를 하고 있고...

그러니 서태지가 상업적이고 음악성이 없네 어쩌네 하는 건, 정말 말이 안 되는 소리라고 생각합니다. 천재성이야 모르겠지만 적어도 자기가 하는 음악
하나에 있어서만큼은 그만큼 진지한 사람이 없을 거라 감히 말합니다. 단지 그에게 영향을 준 다른 것들이 클리셰로 나타나는 경우는 있겠지요.
그렇다고 세상 모든 샌드위치가 전부 다 샌드위치 백작의 표절일까요? 모든 냉면은 전부 옥류관을 따라 했으니 가치가 없는 것입니까? 그건 아니죠.


- 중간에 잠깐 샜는데, 다시 발해를 꿈꾸며 연주 버전 얘기로 돌아와서.

서태지에게는 그 대단한 경지의 기괴한 결과물을 사람들이 좀 알아 주었으면, 하는 일종의 외로움이나 자기과시욕구도 은근히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뭐 사람이라면 당연히 느낄 만한 감정이라고 생각하지만...) 3집 앨범에 실린 이 '발해를 꿈꾸며' 연주 버전 트랙은 그런 의미에서 실린 게 아닐까 합니다.
한국 노래방은 싱글CD 들고가서 MR 끼워넣는 거 지원하는 시스템도 아닌데, 뭐하려고 MR트랙을 또 집어넣었을까... 생각건대 당시의 열악하던
한국의 사운드 사정에서 벌어놓은 돈 거의 다 까먹다시피하며 사운드에 투자했으니까, 그 결과물을 즐길 놈들은 즐겨봐라, 그리고 나 좀 알아주라.
내가 좀 고생 좀 했거든? 앙? .... 뭐 이런 메시지를 던지고 있는 게 아닌지...

실제로 이 트랙은 원곡에 비해 믹싱상태가 좀 다른데, 단지 원곡에서 보컬채널만 제거한 것이 아니라 아예 각 기타의 사운드 자체가 제각각 따로
튜닝되어져있는 게 느껴집니다. 제가 막귀라서 뭐 어떻게 프리퀀시 갖고 장난질을 했나 그런 건 잘 모르겠지만 일단 볼륨은 확실히 구분이 됩니다.
원곡에 비해 어쿠스틱도, 리프도, 애드립도 모두 훌륭하게 제 목소리를 내고 있지요.

생각건대, 그가 가진 생각은 '내 노래를 좋아해주는 팬들 중에서라면 내 세계에 한층 교감해줄 수 있는 사람도 분명 있을 거야' 라는 희망이 아니었을까 합니다.
서태지 7집 당시 KBS의 77주년 콘서트 이름이 '교감'이었던 것은 우연이 아닐 겁니다. 그리고 다른 디스코그라피 중에서도 이러한 교감과 소통을 노래하는 곡은
꾸준히 발견할 수 있습니다.

6집 발매 이후에는 서태지가 객관적 완성도보다는 일단 기본적으로는 '자기가 하고 싶은 걸 자유롭게 한다'는 방침이 느껴지는데, 저같은 서태지빠는 오히려
'이 인간의 음향적 정체성은 대체 뭐냐?'라는 마음으로, 그의 정신세계를 알 수 있는 코드들이 안 가려지고 많이 튀어나와서 좋습니다.
(물론 까탈스럽게 저작물의 완성도에 목숨거는 예전과 같은 케이스가 없는 건 아닙니다. 6집은 처음 발매했던 서태지 자가 버전(....) 말고
'리레코딩'이란 버전이 아예 따로 있을 정도인데, 6집 활동 하면서 구성했던 밴드 - 답십리안, 최창록, 드러머 헤프, 멍키 - 데리고 새로 녹음해서
콘서트 앨범 남는 트랙에 끼워가지고 몽땅 새로 내놨죠.)

그런데 두뇌게임같은 면이 줄어드니 예전보다 좀 심심한 것도 사실입니다. 옛날에는 '대체 이자식은 뭘 생각하는 거야' 수준이었다면 이제는 그나마
좀 코드를 맞춰서 알아갈 수 있겠는데? 싶으니.... 예컨대 전세계적으로 일부 덕후들을 열광시킨-_- David Lowe와 BBC의 일렉트로니카 카운트다운 코드는
서태지 7집 활동시절 신보인 watch out에서도 살짝 나타나며, 철도나 양철장난감 등과 같은 이미지의 사용은 일본 음악계의 영향과 관계있는 서태지가
충분히 쓸 법한 코드들이고... 휴먼 드림에서 쫄핑크 댄스 들고 나온 거 보면 아, 이 인간 열광하는 코드란 역시 오덕스럽구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여튼 요약하자면 서태지의 음악세계는 지금은 여유와 관록, 그리고 자유가 느껴지고 아이들 시절에는 도전정신과 에너지, 치열함이 느껴졌지요.
그 강철같은 담금질 속에서도 가장 빛나는 사운드를 내는 트랙이 바로 이 3집의 8번트랙이 아닐까 싶네요.
(서태지의 정체성을 나타내는 대표적 트랙을 꼽으라면 하여가와 Heffy end, 그리고 ㄱ나니를 꼽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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