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시판의 요즘 상황을 보니 갑자기 저란 인간이 듀나게시판 속에서 겪었던 지리하고도 기묘한 일들이 주마등처럼 지나갑니다. 아마 어떤 분들은 얘는 왜 이 시국에 갑자기 감성놀이야 싶으실 수도 있겠습니다만, 열두세살부터 약 십년간 계속 인연의 끈을 이어왔던, 어린 나에게 지독히도 많은 영향을 주었던 이 공간에 격세지감을 느끼는 것은 아마 인간으로서 당연한 일 아닐까 싶습니다. 글을 거의 안 올리기 시작한 지금에도 아무리 안 봐도 몇일에 한 번씩은 들어와서 게시판 제목들이라도 훑어보긴 했으니까요. 


사실 게시판 분위기에 적응하지 못하고 글을 언젠가부터 잘 쓰지 않게 된 데에는 저 자신의 생각도 변하고, 이곳의 분위기도 변한 탓이 있습니다. 사실 가장 큰 이유는 바빠서이지만요. 하던 이야기로 돌아가서, 저는 사실 조금 어렸을 때는 이곳의 글들을 보며 세상을 학습하는 경향이 컸었어요. 쓴 것처럼 워낙 어린 나이에 가장 많이 글로 접하는 곳이 이곳이었으니까, 이곳의 지배적인 생각들, 예를 들어 정치의 문제, 종교의 문제, 성정체성의 문제 같은 것들을 많이 따라갔었습니다. 당시에 저는 굉장히 비판적으로 받아들인다고 나름 생각했던 것 같은데, 성인이 되고나서 직접적인 체험으로 많은 것들을 겪기 시작하면서 듀나게시판은 그저 온라인 게시판에 불과할 뿐이라는 사실을 그제야 깨달았습니다. 어떤 분들은 제가 그랬다는 사실에 우스꽝스럽다고 생각하실 수 있겠네요, 하지만 그만큼 어린 나이에 세상을 배우는 통로가 듀나게시판 하나였었던 때에는, 저에게 이곳은 온라인 게시판 그 이상이었습니다.


그러나 말씀드린 것처럼, 이제는 그렇지는 않습니다. 세상에 대한 통로가 여러 군데 뚫리고, 빛이 들어오니, 단 하나의 장소에만 천착할 이유도 없었고요. 또한 이삼년 전부터 이곳의 분위기가 굉장히 이질적으로 변했다는 것을 느끼고서부터는 더욱 적극적인, 특히 사적인 소통을 할 필요가 없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사실 어떤 순간에는, 저도 나는 누구누구가 싫다!!! 그 인간들 때문에 더 이상 여기 안 들어온다!!! 이런 거 배변하듯 써놓고 탈퇴 퍼포먼스라도 해볼까 싶은 때들이 종종 있었습니다. 그렇지만, 제 의견이 대체 어디에 쓸모가 있단 말입니까? 이곳은 무수한 흐름이 만나는 조류이지, 내가 수도꼭지로 틀 수 있는 욕조가 아닌데 말입니다.


이젠 질 때가 된 것인지, 아니면 이러한 상황으로라도 계속 갈런지 모르겠습니다. 저는 더 이상 이곳의 구성원이 아니라 방문객에 불과하다는 느낌을 받습니다. 아니, 원래부터 사실 방문객이었겠지요. 객이 10년을 드나들었다고 해서 그 집주인이 되는 건 아니지 않습니까. 하지만 방문객으로서 저는 이곳이 없어지지 않기를 바라지만, 진정한 주인장이 결국 모든 것이 경멸스러워져 이곳을 닫아버린다고 해도 원망할 생각은 없습니다. 규칙 없는 진정한 혼란만이 이곳을 찾아오면 저도 자연스럽게 발길을 끊겠지요. 그러나 그런 일들이 모두 생기기 전에, 저는 이곳에 영화 이야기를 올리고 싶습니다. 제게 이곳은 더 이상 정말 대체불가능한 장소, 없어서는 안 될 장소는 아닙니다만, 여전히 영화 이야기 하기엔 가장 좋은 공간이니까요. :) 사실 영화 일기 쓰던 게 있는데, 그걸 여기다 올려야겠습니다. 제가 원래는 페이스북이나 이런 데서 친구들 보여주려고 썼는데 영화 관심 있는 친구가 그닥 많지 않네요, 아쉽게도. ㅎㅎ 


특정유저와 관련된 사안은, 사실 딱히 할 말이 없습니다. 갑작스럽게 생긴 일이 아니라, 퇴적된 일이니 당연한 수순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그 일 때문에 게시판 존재 자체가 흔들거리는 일은 예상하지 못했네요. 


결론적으로 드리고 싶은 말씀은, 저질이라도 영화 이야기를 꾸준히 생산하는 한 명의 사용자로 계속 활동하고 싶단 소박한 바람이었습니다. ㅎㅎ 주위 사람들이 다 게시판 망할 일이다고 이야기하는데 물론 그럴 수도 있습니다만... 그래도 왜인지 제 느낌에는 이 모든 일조차 지나고 나면 그 때 남는 것은 영화, 영화, 영화일 뿐일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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