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역시 스포일러는 없어요.



1. 나의 마더


 - SF작가의 이름이 달린 게시판이라 그런지 넷플릭스 오리지널 영화들 중에 듀게에 후기가 가장 많이 올라와서 관심을 갖게 된 영화였습니다.

네 분이 소감을 적어 주셨는데 재밌는 건 그 중 둘은 악평, 하나는 호평 나머지 하나는 대략 호의적이에요. 반반. 그래서 더 관심이 갔죠.

결론부터 말하자면 저는 꽤 재밌게 봤습니다.



 - 악평을 하신 분들께서 지적하셨듯이 대체로 뻔한 이야기에요. 인류 멸망 후 인류를 부활시키려는 인공지능 로봇이라니 거의 무슨 고전의 향기(?)까지 풍길 지경이죠.

특이하게도 시작 부분에서 자체 스포일링을 하고 전개되는 이야기라서 시작시 조금만 집중해서 보면 5분 안에 결말 예측이 가능하고 정말 그대로 흘러갑니다.

이야기 속에서 인공지능을 다루는 관점이 또 아주 고전적이라서 이런 장르에 경험이 조금만 있는 분들이라면 좀 맥빠지는 기분이 들 수도 있구요.

세 캐릭터에게 상징적 의미를 부여하고 그 셋의 관계 맺음과 충돌을 통해 이야기를 전개하기 위해 잔가지를 다 쳐내버리다 보니 디테일에 구멍들이 눈에 띄기도 합니다.

그리고 결말은 뭐... 확실히 좀 김 새는 느낌이 있기도 하고 또 작정하고 따져보면 구멍도 있구요. ㅋㅋ 



 - 그런데 요즘들어 자주 하는 생각입니다만.

 세상엔 장르 숙련자만 있는 게 아니지 않습니까. 이런 장르에 경험이 별로 없는 사람들이 오히려 더 많을 겁니다.

 모든 하드 SF가 다 새로운 비전을 제시해야 하는 것도 아니구요. (물론 그렇게 해주면 더 좋지만) 흔히 반복되는 설정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 하는 이야기라 하더라도 그런 설정을 통해 나름의 이야기를 준수하게 전달하기만 한다면 그걸로 충분하지 않을까 싶고 제 기준에서 '나의 마더'는 이 정도면 충분히 합격점을 줄만한 이야기였습니다.



 -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이게 결국 세 여자(한 명은 사실 성별이 없지만요)의 이야기인데요. 이 중에서 딸 포지션의 주인공은 생각이나 감정이 그대로 드러나지만 나머지 둘은 자신의 본심과 의도를 거의 후반까지 쭉 숨기고 있습니다. 그 와중에 천진난만 해맑았던 주인공이 이 쪽을 의심하고 저 쪽을 의심하며 이리저리 흔들리며 혼란스러워하다가 마지막에 자신의 입장을 분명히 정하고 나아가게 되는 식의 전개인데, 비록 진상은 뻔할지라도 이 의심스런 둘의 행동을 잘 묘사해 놓아서 거의 후반까지 그럭저럭 긴장감이 유지가 됩니다.

 마지막에 주인공이 내리는 결단 역시 지독할 정도로 뻔하지만 주인공이 그런 결정을 내리게 되는 과정은 상당히 자연스럽고 또 설득력이 있어서 '그냥 공식대로 흘러가네'라는 느낌은 크게 안 들구요.

 또한 군더더기가 없고 딱딱 필요한 말만 하면서 전개되는 이야기라 지루하지도 않고. 결정적으로 세 배우의 연기가 모두 좋아요. 로즈 번의 로봇 목소리도 과잉도 모자람도 없이 딱 적절한 모습이고 (대사도 잘 썼다고 느꼈습니다.) 힐러리 스웽크의 피폐하고 거칠면서도 나약한 연기도 좋았고. 주인공 역할의 배우는 덴마크에서 가수 하던 분이라는 것 같은데 딱 역할에 어울리게 적당히 예쁘면서 적당히 똑똑하고 적당히 여린 느낌이라 좋았습니다.



 - 결론적으로.

 뭐 특별히 신선한 구석은 없고, 또 '서기 2019년에 새삼 이런 이야기?'라는 생각이 들법도 한 작품이지만 전체적으로 무난히 즐길만한 완성도의 SF였습니다.

 어차피 제작비 얼마 안 될 거라는 걸 생각하면 비주얼이나 기술적 측면에서 허술하고 저렴한 느낌 안 들게 잘 찍었구요.

 몇 시즌짜리 드라마라서 수십 시간을 투자한 것도 아니고 하니 전 이 정도면 만족했어요. ㅋㅋ



 - 근데 오프닝부터 몇 차례 반복해서 흘러나오던 테마 음악은 좀 노골적으로 '블레이드 런너'를 참고한 느낌이더군요. 동물 종이 접기도 등장하는 걸 보면 의도적인 듯.



 - 마지막에 짤막하게 보여지는 반전은 그 누군가의 '큰 그림'의 내용을 생각할 때 사실 확실한 오류가 있습니다. 뭐 전 그런 부분은 걍 관대하게 넘어가는 마음으로 봤기 때문에 크게 거슬리진 않았는데. 그래도 오류는 오류라서. ㅋㅋ



 - 번역 제목이 정말 구립니다. 원제 그대로 '아이 엠 마더'라고 쓰는 게 제니퍼 가너 영화 때문에 어려웠다면 그냥 '나는 엄마다'라고 하면 되잖아요. 영화 내용의 핵심을 되게 정확하게 짚고 있는 제목인데 이걸 '나의 마더'라고 해버리면 의미가 엇나가 버리거든요. 하다못해 '나의 엄마'도 아니고 '나의 마더'가 뭡니까 대체. 




2. 드라마월드


 - 공개 당시 한국에서도 소소하게 화제가 되었던 드라마였죠. 미국 사람이 만들었고 어쨌거나 (한중미 합작이긴 합니다) 미국 드라마로 분류가 되는 물건인데 소재가 '한국 드라마 속에 들어간 서양인 한국 드라마 덕후' 였으니까요. 그래서 당시부터 관심은 있었고 작년에 넷플릭스 첫 가입했을 때 목록에서 보고 언젠간 봐야지... 하고 까먹고 있다가 며칠 전 eltee님의 글을 보고서야 기억이 되살아나서 이제 다 봤습니다. 역시 결론부터 말하자면 나름 재밌게, 꽤 즐겁게 봤어요.



 - 예전에 한동안 '한국 드라마의 특징 정리' 같은 인터넷 유머 게시글들이 유행한 적이 있었죠. 그 때부터 개인적으로 그런 생각을 했었거든요. 아예 이런 장르 공식들을 놀려대는 한국 드라마가 나오면 재밌지 않을까. 그런데 그게 쌩뚱맞게도 미국인에 의해서 만들어졌네요. ㅋㅋ 지금이라도 한국에서 비슷한 아이디어로 드라마 하나 만들어내면 재밌을 것 같은데 말입니다.



 - 기본 설정이 이렇다 보니 자동으로 떠오르는 영화가 '스크림'이었습니다. 한 장르의 공식을 갖고 놀려대는 척하면서 사실은 애정을 표하고 찬사를 보내는 '그 장르'의 작품이잖아요. 이 드라마도 한국 드라마, 정확히는 한국 로맨틱 코미디 드라마의 공식을 이리저리 놀려대지만 기본적으로는 그 또한 한국식 로맨틱 코미디이고, '그런데 이게 재밌어! 좋아!! 계속 봐도 새로워!!' 와 같은 태도를 보여줍니다. 

 다만 절대로 '스크림'의 완성도에 미치지는 못 해요. 스크림이 호평 받을 수 있었던 건 이 영화가 슬래셔 무비의 공식을 갖고 줄기차게 농담을 하는 영화인 동시에 잘 만든 슬래셔 무비였기 때문이고. 또 그 장르의 공식을 그냥 놀려대기만 한 게 아니라 이야기 속에 잘 녹여내고 또 새로움을 보여줬기 때문이잖아요. (슬래셔 무비 속 복면 살인자의 괴이한 신출귀몰 능력을 합리적으로 설명한다든가...) 반면에 '드라마 월드'는 한국 드라마의 공식을 그냥 이야기의 배경과 농담거리로 활용할 뿐, 그걸 깊이 있게 분석한다든가 아님 새로운 방식으로 활용한다든가 하는 수준까지 나아가지는 못 합니다. 또 그렇게 완성도 높은 한국식 로맨틱 코미디도 아니구요. 그래서 '이게 이런 드라마다' 라고 기본 아이디어를 설명하고 나면 더 이상 얘기할만한 꺼리가 없어요. ㅋㅋ



 - 사실 이 드라마를 끝까지 재밌게 볼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는 짧은 길이였습니다. 편당 10분 남짓되는 에피소드 열 개로 끝. 한 번에 몰아서 다 봐도 두 시간이 안 걸리거든요. 한 회에 한국 드라마 공식 패러디 두어개 때려박고 그 중 한 두 개만 웃겨도 10분간 두 번은 웃는 꼴이니 지루하다 느낄 틈은 없겠고. 결국 10분 남짓 단위로 이야기가 끊어지는 식이니 전개가 되게 빠르다는 기분도 들고 또 전체적인 이야기 구성의 헐거움도 대충 덮이게 됩니다. 

 아마 이 드라마를 가장 재밌게 보는 방법은 출퇴근, 등하교길에 버스나 전철에서 한 편씩 보는 것 같아요. 짧게 짧게 시간 죽이는데 최적화 되어 있다고나 할까요.



 - 대체로 평가가 박해지는 중인데 실제로 완성도가 높다고 말할 수 있는 드라마는 아니라서... 하하.

 그럼에도 분명한 장점이 있다면... 한국 드라마를 소재로 삼은 드라마답게 한국 히트 드라마의 핵심 하나를 잘 따라가고 있습니다. 주인공들이 귀여워요. ㅋㅋㅋ

 제가 최근에 달렸던 '산타 클라리타 다이어트'에 드류 배리모어의 딸래미로 출연했던 배우인데. 평범한 듯한 인상이면서 귀엽고 사랑스러운 게 역할에 참 잘 어울립니다.

 남자 주인공 역할 배우는 외모가 어중간하고 연기도 좀 어색하지만 애초에 맡은 배역이 '한국 드라마 속 남자 주인공'이다 보니 살짝 어색한 연기가 오히려 역할에 잘 어울린다는 느낌을 줍니다. 심지어 보다보면 귀여워 보여요. ㅋㅋ

 그래서 이 둘이 툭탁대고 꽁냥거리는 거 구경하면서 한 회마다 두어개씩 터지는 한국 드라마 공식 보며 피식거리다 보면 어느새 끝입니다.

 가벼운 킬링타임용으로 꽤 적절한 물건이고 딱 그만큼 만족하며 잘 봤습니다.



 - 드라마 속 여주인공 역할 배우 외모가 나름 꽤 매력적인데 어디서 본 적이 없네... 하고 검색해보니 '해를 품은 달'에서 조연도 단역도 아닌 그 중간 정도 비중으로 출연했었더군요. 근데 전 그것도 안 봤습니다. ㅋㅋㅋ



 - 올해 시즌2가 공개될 예정입니다. 그래도 나름 화제를 끌었던 드라마라 그런지 시즌2는 편당 30분 내외로 (무려 3배!!! ㅋㅋ) 만들어질 거라고 하더군요. 기왕 또 만드는 김에 이번엔 정말로 한국 드라마 공식을 잘 활용한 이야기로 만들었으면 좋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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