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로리타'를 보고 나니 제레미 아이언스 작품이 땡겨서, 그래서 '데드링거'를 보고 나니 크로넨버그 영화가 땡겨서 봤습니다. 사실 둘 다 예전에 봤던 영화들이지만 그냥 봤어요. 어차피 본지 20년이 넘었으니 뭐 안 본 거나 다름 없... (쿨럭;) 늘 그렇듯 결말 스포일러는 피해보겠습니다.



1. 데드 링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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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잘 나가던 쌍둥이 의사가 ...했던 실제 사건에서 아이디어를 얻었다고 하죠. 뭐 기본 설정만 살짝 가져오고 나머진 죄다 만들어낸 이야기이겠습니다만.

 어쨌든 그래서 일란성 쌍둥이죠. 대체로 외향적이고 자신감 넘치는 놈과 내향적이면서 섬세하지만 꼼꼼하고 성실한 놈... 이라는 조합인데도 신기할 정도로 사이가 좋아서 나이 먹을만큼 먹고도 결혼도 안 하고 단 둘이 함께 삽니다. 어떻게보면 이상적인 관계에요. 서로에게 부족한 점을 채워주며 완전체가 되어 '함께라면, 우린 두려울 게 없었다!!!' 모드로 살고 있으니까요. 다만 이런 이상적 관계는 '모든 걸 함께 나눠야한다'는 현실에선 불가능한 룰을 기반으로 하고 있고, 그래서 연애 상대도 (상대방 모르게) 공유한다... 는 성범죄에 가까운 짓을 저지르며 살고 있으니 그게 좀 별로이긴 합니다.


 암튼 그러다 둘 중 섬세한 쪽이 한 여성에게 단단히 꽂히면서 일이 꼬이기 시작합니다. 약에 쩔어 사는 영화배우인 것도 문제이고 외향적인 쪽이 볼 땐 영 별로이고 위험한 여자인 것도 문제구요. 그래서 일생동안 완벽했던 형제의 관계에 균열이 생기기 시작하면서...



 - 이 영화를 첨 접했던 건 대학 시절이었습니다. 90년대에 유행이었던 아마추어 영화 연구회에서 여는 '무삭제판 영화 상영회'에 가서 봤죠. 그때 거기서 본 영화가 '헨리: 연쇄살인자의 초상', '록키 호러 픽쳐 쇼', 그리고 이거였어요.

 근데 좀 희한한 게... 영화의 내용이 전혀 기억에 남지 않았어요. 뭔가 괴상하고 기이하며 불쾌하다는 느낌은 확실히 기억에 남는데 디테일은 다 날아가버리고 그냥 마지막 장면만 뇌리에 새겨져 있었단 말이죠. 그래서 이번에 다시 보면서도 처음 보는 기분으로 즐겁게 봤네요. 망각이란 때로는 참 좋은 것(...)



 - 그래서 사실상 처음 보는 기분으로 이 영화를 보는데, 가장 의외였던 건 기억만큼 그렇게 괴상하지 않았다는 겁니다?

 네 뭐 막판 가서 결국 괴상망측해지긴 하죠. 하지만 두 시간 여의 런닝 타임 중 거의 2/3에 가까운 시간 동안은 그냥 드라마에요. 그것도 멜로 드라마. ㅋㅋ

 심지어 감정 이입도 됩니다!! 그 문제의 여성 공유-_-문제만 빼고 보면 이 형제는 상당히 좋은 사람들이거든요. 성실하고 유능하며 매너 좋고 자기들끼리도 정말 진심으로 아껴주죠. 보다보면 행복해지라고 응원해주고 싶은 기분이 들 정도? ㅋㅋㅋ 그 공유질의 피해자인 영화 배우가 그냥 이 사람들 앞에서 사라져줬음... 하는 생각도 보는 중에 진짜로 해 보고 그랬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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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느 쪽 제레미 아이언스가 취향이신가요... 라고 적으면서 사진을 다시 보니 세심 소심 버전 쪽은 사진이 꼭 조재현처럼 나왔네요;)



 - 물론 이제 파국이 다가오면서 이야기는 급격히 괴상해지죠. 형제가 정신적으로 무너져내리는 과정도 나름 기괴하지만 특히 그 맞춤형 주문 제작 도구가 등장하는 장면, 그리고 이어지는 시뻘건 수술씬 장면까지 가면 대략 정신이 아득해지는 느낌이. ㅋㅋㅋ 

 영화판에 변태 취향 예술가들은 많지만 크로넨버그의 변태스러움엔 뭔가 그런 느낌이 있어요. 그 변태스런 느낌이나 장면들이 '어때? 이거 충격적이지?'라고 작정하고 꾸며져서 보여지는 게 아니라 굉장히 자연스럽게 슥 튀어나와서 그냥 자연스럽게 흘러가는 거죠. 그래서 만든 사람이 이걸 크게 괴상한 상태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는 생각이 드니 그걸 보는 입장에선 그게 몇 배로 변태스럽게 느껴지는 게 아닐까. 뭐 그런 생각을 했습니다.



 - 제레미 아이언스의 연기야 뭐 제가 더 설명을 덧붙일 필요가 없겠죠. 워낙 명연기로 유명하니까요. 각각 다른 사람이긴 하되 닮은 구석도 많은, 구분이 안 되는 건 아닌데 그렇게 확 다르지도 않은 애매모호함을 잘 표현한 것 같았어요. 많은 사람들 앞에서 여유롭게 농담 해가며 연설하는 간지남부터 자기 의자 위에 아기처럼 쪼그리고 앉아 덜덜 떠는 폐인남까지 굉장히 폭이 넓은 연기를 보여줘야 하는데 그냥 다 잘 하더군요. 허허.



 - 결론적으로... 저는 잘 만든 비극적인 멜로 드라마로 재밌게 봤습니다.

 이제 와서 보기에 막 충격적이고 그런 느낌은 별로 없었구요. (없진 않습니다!!! ㅋㅋ)

 역시 크로넨버그 할배는 변태적이고 충격적인 설정이나 비주얼을 빼고 봐도 기본적으로 이야기를 참 잘 만들어 보여주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네요.

 하긴 비교적 근래 작품들인 '폭력의 역사'나 '이스턴 프라미스' 같은 영화들을 봐도 그렇죠. 참 새삼스러운 얘기네요.



 + 생각해보면 이 영화가 나올 당시엔 저 주인공 놈들의 '여성 공유' 설정이 그냥 충격적, 변태적... 이 정도로 받아들여지고 말았을 것 같은데. 요즘 시국 기준으로 생각해보면 그냥 파렴치한 성범죄죠. 그래서 요즘 관객들이 보기에 오히려 더 불편한 이야기가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2. 데드존 (국내 비디오 출시명 '초인지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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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찬란하게 빛나고 있는 킹본좌의 이름!!)


 - 순박하고 순수하며 촌스러운(...) 시골 학교 국어 선생이 여자 친구와 행복한 데이트를 마치고 집에 가다가 교통 사고를 당합니다. 5년간의 코마 상태 끝에 기적적으로 의식이 돌아왔지만 그러는 동안에 사랑했던 여자 친구는 다른 남자랑 결혼해서 애까지 키우는 중. 그리고 곧 엄마도 세상을 떠나구요. 열심히 재활 운동을 해봤지만 결국 다리 한쪽엔 장애가 생겼어요. 본인 입장에선 하룻밤 좀 길게 자고 일어났을 뿐인데 이게 뭔 난리인지 참 세상 억울하고 슬픈 가운데 본인에게 초능력이 생겼다는 걸 알게 됩니다. 간단히 말해 싸이코 메트리 능력인데 굉장히 강력하고 폭이 넓어요. 자신이 만진 물건/사람의 인생 과거 특정 장면에 본인이 들어가 있는 것처럼 구경할 수도 있고, 현재 벌어지는 안 좋은 사건을 감지할 수도 있으며, 심지어 미래까지 보입니다. 허허. 

 하지만 순박 순수하며 천성이 시골 서생인 주인공님은 이런 능력이 달갑지 않아요. 어쩔 수 없는 상황에서 몇 번 티를 냈더니 전국적 유명 인사가 되어버렸고, 사람들의 관심이 넘나 부담스럽고, 게다가 이 능력을 쓰면 쓸 때마다 뭔가 수명이 단축되는 기분까지 들거든요.



 - 원작은 스티븐 킹이고 감독은 데이빗 크로넨버그... 이긴 하지만 이 영화에 대해 이야기할 땐 이 두 거장은 제껴놓고 결국 이 분 얘기를 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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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잘 생겼다!!!)


 주연을 맡은 크리스토퍼 워큰 할배요.

 스티븐 킹의 이야기는 좋지만 뭔가 영화 한 편 분량에 잘 안 맞게 헐거운 느낌이고. 크로넨버그의 연출은 누가 말 안 해주면 아무도 눈치 못 챌 정도로 특유의 개성 없이 무난하거든요. 그 와중에 보는 사람의 눈을 확 잡아 끌면서 이야기에 집중하게 만들어주는 게 이 양반입니다.

 처음에 잠깐 나오는 사고 전의 순박 풋풋한 모습도 어이 없을 정도로 잘 어울리지만 능력 개화 후의 슬프면서도 뭔가 음침하고 기이한 느낌을 그냥 외모 하나만으로 해결해버리는 대단하신 분. ㅋㅋㅋ 아, 물론 연기력을 폄하하는 게 아닙니다. 연기도 잘 하시지만... 다들 아시잖아요. 아무도 흉내낼 수 없는 이 분의 비주얼!! ㅋㅋ



 - 슬픈 이야기에요. 어쩌다 원치도 않은 능력을 얻으면서 그 대가로 자신의 인생을 잃어버린 남자가 운명에게 등 떠밀려서 남들을 위해 헌신하고 희생하게 되는 이야기죠. 그래서 이 양반이 겪게 되는 사건들도 대부분 그 사건 자체가 아니라 자신의 능력에 대한 주인공의 심리와 태도 변화에 초점이 맞춰져 있구요. 막 기괴하고 환타스틱한 이야기를 기대하시면 안 됩니다. ㅋㅋ



 - 방금 위에서 말 했지만, 영화에 대해서 평하자면 좀 아쉬운 부분이 있습니다. 능력을 획득한 후 소소한 에피소드 몇 개가 나오다가 마지막에 나름 스케일 큰 에피소드 하나로 마무리되는 형식인데, 그게 아무래도 좀 이야기가 띄엄띄엄이라는 기분이 들어요. 티비 시리즈의 요약판을 보는 기분이랄까. 다행히도 이야기 하나하나가 다 괜찮아서 재미있긴 한데요. 보면서 계속 영화 보단 티비 시리즈가 좋겠다... 는 생각을 했었고 다 보고 나서 찾아보니 이미 옛날에 여섯시즌이나 나오고 끝난 티비 시리즈가 있었군요. 그것도 보고 싶어졌지만 현재로선 국내에서 합법적으로 볼 길은 없는 듯.



 - 그래도 어쨌거나 이야기들은 재미가 있고. 대미를 장식하는 마지막 에피소드도 옛날 스티븐 킹 단편스러운 느낌이 물씬 나서 괜찮구요.

 뭣보다 크리스토퍼 워큰 할배의 주인공 캐릭터가 의외로 사람을 이입하게 만드는 좋은 캐릭터라서 결말까지 집중해서 보게 만들더군요.

 워낙 옛날 영화지만 혹시 안 보신 있으면 보세요. 괴담류 영화를 좋아하는 분들이라면 대부분 적당히 재밌게 보실 수 있을 겁니다.



 + 자막 수준이 진짜 개판입니다. 옛날 옛적 비디오 테잎 출시판 자막을 그대로 쓴 게 아닌가 싶어요. 그 시절엔 그런 저퀄 번역이 일상적이었죠.


 ++ 호기심에 드라마 버전 정보를 좀 찾아보니 거기서 주인공 맡은 분이 '조찬클럽'에서 덩치 작은 학생 역을 맡았던 분이군요. 근데 비주얼이 완전 확 달라져버려서 못알아볼 뻔.


 +++ 제목의 '데드존'이 정확하게 뭘 뜻하는 제목인지 궁금하더라구요. 드라마 버전에선 '인간이 사용하지 않는 뇌의 부분'을 뜻한다고 주장하는 것 같은데 이 영화에선 전혀 다른 의미로 딱 한 번 언급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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